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그렇게 안목 타령을 하더니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고 고미술품에 대해 대단한 안목이라도 지닌 듯이 '안목'이란 책까지 냈던 분의 밑천이 만천하에 드러났네요.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 특벼전 '우리들의 밥상'에서 독립운동가의 유묵으로 소개된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한 그릇의 밥도 나라의 은혜)’이 친일파 중에서도 악질로 손꼽히는 박중양의 글씨로 밝혀져 개망신을 산 적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그 작품이 국박관장의 개인 소장 글씨였음이 들통 났습니다. 국박의 공식 전시를 자기 소장품을 진품명품으로 둔갑시키기는데 사용했다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게다가 친일파 작품으로 드러나자 자신이 관여한 바는 쏙 빼놓고 국박 학계사들의 검증이 철저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오리발을 내밀었기에 더욱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저는 2004년 4월 고고미술사.. 더보기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을 해야하는 직업 "나는 딱 하나, 나쁜 말을 좋게 하는지 보고 싶었어요.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좋은 말 좋게 하고, 나쁜 말 나쁘게 하는 거잖아요. 나쁜 말을 좋게하는 건 너무 어렵죠. 그런데 홍성 직원분, 그거 하던데요?" 드라마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 9화에서 나오는 대사지요. 주인공 공은태(이준혁 분)의 회사 홍성의 명운을 쥔 이탈리아 대기업 만토바의 MD총괄이사 마르티나(윤세아 분)가 홍성의 막내 계약직 사원 이지혜(하율리 분)에게 일부러 갑질한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 나옵니다. 이건 비단 비즈니스 상대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닙니다. 외교와 정치에선 더욱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상대와 전쟁을 할 게 아닌 이상, 설사 전쟁 중이더라도 상대가 모멸감이 드는 표현을 삼가는 것이 기본이어야 합니다. 요즘 정치인의 발언.. 더보기
제임스 딘 주연 '에덴의 동쪽' 3대 의문을 풀다 요즘 친구들에겐 다소 낯선 존재이겠지만 저희 세대 청춘의 아이콘은 제임스 딘이었습니다. 1955년 딱 3편의 영화를 찍고 교통사고로 스물넷에 요절한 천재 배우죠. 그의 아우라는 그가 죽고 15년 뒤에 태어난 저 역시 빗겨갈 수 없었으니 학창시절 그가 출연한 세 편의 영화는 필견작이었습니다. 그중 최고의 작품은 웅변을 능가하는 침묵의 눈빛 연기를 펼친 '이유 없는 반항'이었습니다.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한 대작 '자이언트'에선 치명적 매력을 지닌 옴 파탈 역의 연기가 인상적이었지만 영화적 완성도는 떨어졌습니다. 내러티브가 가장 뛰어난 작품의 오히려 그의 데뷔작인 엘리아 카잔 감독의 '에덴의 동쪽'이었습니다. 공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유 없는 반항'은 제임스 딘이란 배우에 대한 흥취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 더보기
타의 모범이 되기 충분한 노벨상 수상자 학창시절 우민은 외형적으론 모범생이었다. 그렇다고 전교 1등을 휩쓸 정도는 아니었지만 성적우수상 뿐 아니라 백일장, 미술, 과학상을 골고루 다 받았다. 심지어 초등학교 졸업할 때 개근상까진 아니었어도 정근상을 받을 정도로 성실한 학생이기도 했다. 당시 그런 상장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문구가 있었다. '타의 모범이 되기에...'. 상장을 받을 때마다 겉만 모범생이고 속으론 불량하기 짝이 없는 우민 같은 녀석이 받아도 되나라는 자책감을 불러일으키는 표현이었다. 학업을 마친 우민은 국가나 사회에서 주는 상을 받는 사람들 보면서 시간이 갈수록 '타의 모범이 되는' 이들을 찾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냥 아버지 잘 만나 돈 많이 벌거나, 출세하거나, 고위직에 올랐다고 '자랑스러운 동문상'입네 언론사.. 더보기
‘철학을 노래하는 소녀‘에게 응답함 SBS 예능 '우리들의 발라드' 시즌2 홍보영상으로 얼굴을 가린 이 친구가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부르는 걸 들었습니다. 열여섯 소녀가 어쩜 저렇게 처연하게 노래할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본방을 보고 그 이유를 알아버렸습니다. 벌스(도입부)만 듣고 바로 웅성웅성하던 관객들이 노래가 끝난 뒤 박수가 나오기까지 한동안 정적이 감돌 정도였습니다. 그 가창자의 이름이 김소연이란 것을 듣고 싱어게인의 얼음공주 김소연이 떠올랐습니다. 싱어게인이 배출한 가수 중 제 최애가수. 무심하 듯 노래하다가 꼭 패자부활전을 거쳐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 거야'를 여실히 보여준 강철 멘탈의 가수였죠. ‘우발의 김소연’도 ‘싱어게인의 김소연’ 못지 않게 단단한 내공의 소유자 아닐까 합니다. '춘향전' 속 춘향이와 .. 더보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공화주의자 공자' 여러분들이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제 책이 출간됐습니다. 은행나무출판사에서 낸 '공화주의자 공자'입니다.한국의 문묘를 비롯한 대부분의 공자사당에는 은행나무가 작은 숲을 이룰 정도로 심어져있습니다. 이는 공자가 행단(杏壇) 위에서 가르침을 펼쳤다는 '장자' 구절의 행을 은행나무 또는 살구나무로 풀이한 전통에 따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공자의 사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제 책이 은행나무에서 출간된 것도 하늘의 뜻 아닐까합니다.책은 포켓사이즈로 210쪽입니다. 요즘 휴대전화 폴더폰이 유행이던데 폴더폰 펼친 정도의 크기여서 들고 다니면서 읽기 딱입니다. 원래는 재독철학자 한병철의 에스프리 가득한 책을 염두에 두고 압축적으로 써봤는데 은행나무 주연선 대표가 좀 더 길고 친절하게 써달라고 부탁하셔서 분량이 100쪽 가.. 더보기
'어쩔 수가 없다'에 대한 멋진 응수, '가능한 사랑'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람'을 보고난 뒤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에 대한 내밀한 응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영화는 모두 외국계 자본의 M&A를 위한 구조조정으로 어느날 갑자기 실업자가 된 중산층 가정의 비극을 다룬다. 하지만 영상문법이나 스타일은 지극히 대조적이다. 박찬욱 영화가 그를 위악적 블랙코미디로 형상화했다면 이창동 영화는 예술이란 미명 아래 타인의 비극을 서사로 삼는 영화인의 위선에 대한 고해성사다. '어쩔 수가 없다'가 권위와 규범을 조롱하고 해체하는 다성적이고 카니발(carnival)적 영화라면 '가능한 사랑'은 영혼 깊이 침잠함으로써 뜻밖의 진실을 길어올린다는 점에서 모놀로그적이고 에피퍼니(epiphany)적 영화다. 쉽게 말해 전자가 사태를 극단으로 몰고가 관객을 혼비백산하게.. 더보기
'사상의 자유' 억압 위해 동원되는 '표현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넘어 '사상의 자유'를 짓밟지 못해 안달 난 왕당파들이 설치는 세상. 우민이 생각하는 요즘 한국사회의 초상이다.누군가의 의견이 잘못이라면 그를 비판하고 꾸짖는 것으로 충분하다. 공론장에서 비판이 쇄도하면 해당 견해의 입지는 저절로 좁아진다. 하지만 억지로 그 의견을 철회하라거나 사과하라고 강요해선 안된다. 그 누군가에게도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선 좌우를 가리지 않고 자신과 다른 사상의 표출을 참을 수 없다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사상이 다른 것을 이단이라 낙인찍고, 그런 사상을 표출한 이의 좌표를 찍어 떼거리로 마녀사냥을 펼치며 집단 희열을 느끼는 듯하다.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의 전례를 끌고와서 "너희들도 이랬잖아, 우리도 똑같이 하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