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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가 없다'에 대한 멋진 응수, '가능한 사랑'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람'을 보고난 뒤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에 대한 내밀한 응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영화는 모두 외국계 자본의 M&A를 위한 구조조정으로 어느날 갑자기 실업자가 된 중산층 가정의 비극을 다룬다. 하지만 영상문법이나 스타일은 지극히 대조적이다. 박찬욱 영화가 그를 위악적 블랙코미디로 형상화했다면 이창동 영화는 예술이란 미명 아래 타인의 비극을 서사로 삼는 영화인의 위선에 대한 고해성사다. '어쩔 수가 없다'가 권위와 규범을 조롱하고 해체하는 다성적이고 카니발(carnival)적 영화라면 '가능한 사랑'은 영혼 깊이 침잠함으로써 뜻밖의 진실을 길어올린다는 점에서 모놀로그적이고 에피퍼니(epiphany)적 영화다. 쉽게 말해 전자가 사태를 극단으로 몰고가 관객을 혼비백산하게.. 더보기
'사상의 자유' 억압 위해 동원되는 '표현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넘어 '사상의 자유'를 짓밟지 못해 안달 난 왕당파들이 설치는 세상. 우민이 생각하는 요즘 한국사회의 초상이다.누군가의 의견이 잘못이라면 그를 비판하고 꾸짖는 것으로 충분하다. 공론장에서 비판이 쇄도하면 해당 견해의 입지는 저절로 좁아진다. 하지만 억지로 그 의견을 철회하라거나 사과하라고 강요해선 안된다. 그 누군가에게도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선 좌우를 가리지 않고 자신과 다른 사상의 표출을 참을 수 없다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사상이 다른 것을 이단이라 낙인찍고, 그런 사상을 표출한 이의 좌표를 찍어 떼거리로 마녀사냥을 펼치며 집단 희열을 느끼는 듯하다.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의 전례를 끌고와서 "너희들도 이랬잖아, 우리도 똑같이 하는 .. 더보기
'가스인간'에 흐르는 그 노래, 'Ellie, My Love' 결국 아오이 유우 때문에 넷플릭스 드라마 '가스인간'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한국의 연상호 감독과 유용재 씨가 각본을 쓰고, 제작에도 참여한 한일공동 제작 작품이더군요. 연상호 감독 작품답게 극 초반 충경적 설정이 후반부로 갈수록 용두사미로 흘러서 별로 추천하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극중 가스인간을 소환할 때 일종의 모티브로 작용하는 노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뭐 몇 번은 들어봤던 곡인데 일본 록밴드 '사잔 올 스타즈(Southern All Stars)'가 1979년 발표한 '이토시노 에리(いとしのエリ)'. 사랑스러운 에리라는 뜻인데 영어 가사인 'Ellie, My Love'라는 영어제목으로도 유명한 곡이죠. 1989년 레이 찰스가 일본 위스키 산토리 광고모델을 하면서 CF송의 일환으로 부른 영어 버전을 다.. 더보기
흑요석 같은 여인, 알마즈 어제 브렌다 러셀의 'Le Restaurant'을 올리고나서 비슷한 분위기의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같은 미국 출신의 흑인여성 가수 랜디 크로포드의 'Almaz'. 러셀이 1949년생, 크로포드가 1952년생으로 동년배 흑인여가수. 미국보다 유럽에서 더 인기가 많았다는 점도 비슷. 두 곡 모두 피아노 반주에 짧고 명료한 가사, 영롱한 음색이 돋보이며 여가수가 직접 곡과 가사를 썼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Le Restaurant'은 1988년, 'Almaz'는 1986년에 발표됐지만 정작 미국에선 별 반응을 얻지 못한 반면 유럽과 한국에서 유독 사랑받았다는 점도 닮았습니다. Almaz는 북동아프리카 티그리냐어와 아랍어로 다이아몬드를 뜻하는 여성이름. '알마'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마지막 즈를 약.. 더보기
'Le Restaurant'이 유독 한국에서 사랑받는 이유 2000년대 초반까진 라디오에서 종종 들리던 노래인데 요즘은 잘 안들리는 듯해서 골라봤습니다. 썸타기 딱 좋은 요즘 같은 가을날에 어울리는 곡이죠. 미국 뉴욕 출신의 흑인 싱어송라이터 브렌다 러셀이 직접 쓰고 부른 'Le Restaurant'. 1988년 발표된 'Get Here'라는 러셀의 네번째 솔로 앨범 여섯번째 수록곡. 피아노 연주와 함께 노래하는 그녀의 최대 히트앨범이지만 미국에서 주목받은 곡은 세번째 수록곡인 'Piano in the Dark'와 마지막 수록곡이자 타이틀곡인 'Get Here'. 2026년 9월 29일 현재 스포티파이 재생횟수를 보면 'Piano in the Dark'는 6703만, 'Get Here'는 382만이 넘는 반면 'Le Restaurant'은 60만을 살짝 상.. 더보기
'현을 위한 세레나데'의 쌍두마차? 트리오! 오랜만에 클래식 곡을 하나 골라봅니다. 드보르작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2악장. 전체 5악장 중에서 왈츠 풍으로 된 2악장이 가장 유명합니다. 풍성한 선율과 극적인 전개로 인해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곡이죠. 겉으론 우아해보이지만 그 이면에 추악함을 감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박찬욱과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바로크풍의 배경음악이 많이 쓰이다보니 이 곡 역시 그렇게 작곡된 것 아닐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체코 출신의 작곡가 드보르작(1841~1904)이 1875년 작곡한 정통 클래식곡입니다. '현을 위한 세레나데'라는 제목의 드보르작 작품과 명성을 나란히 하면서 실제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도 많이 쓰이는 작품이 하나 더 있습니다. 러시아 작곡가.. 더보기
분열생성이 초래하는 '작은 연못'의 비극 '분열생성(schizogenensis)'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세포가 둘로 분열해 증식한다는 생물학적 용어인 fission과 다른 개념입니다. 서로 다른 두 문화나 집단이 접촉하고 상호작용할 때, 갈등이 해소되기보다 오히려 서로의 차이점이 점점 더 증폭되면서 분열로 치닫게 돼 사회적 붕괴에 이를 수 있다는 개념, 영국 출신의 문화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이 서태평양의 파푸아뉴기니에서 석기시대 삶을 이어가던 이아트물족과 생활하면서 발견한 현상에 이름 붙인 것입니다. 1935년 영국 왕립인류학연구소 학술지인 ‘맨(Man)’에 발표한 ‘문화 접변과 분열생성(Culture Contact and Schismogenesis)’이란 학논문에서 처음 제시했고, 이듬해인 1936년 그 보고서격으로 발표한 '네이븐(na.. 더보기
이런 가을날 일요일에 들어야 할 노래 축복받은 가을날의 연속이네요.'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 해시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판 위에 바람을 놓아주소서'로 시작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을 떠올리게 하는 계절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날 일요일에 한 번 듣고 가야할 곡이 있죠. 4인조 이탈리아계 미국 밴드 '영 래스컬스(The Young Rascals)가 1967년 발표한 'Groovin''입니다. 사랑하는 연인과 흥겨운 리듬을 타듯 보내는 일요일 오후를 노래하는 곡입니다. 빠르지 않지만 박자의 묘한 밀당으로 몸도 맘도 은근히 들썩이게 만드는 '그루비한 느낌'을 제게 처음 각인시켜준 곡입니다. 그렇게 그루브를 타는 일요일 오후 같은 화창한 날들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의 안부곡'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