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는 늦은 봄비인지 이른 여름비인지 헷갈리는 비가 하루종일 내리더니 오늘도 오전 내내 흐리네요. 이렇게 어두컴컴한 날에 어울리는 곡으로 미국의 재즈&블루스 여성 싱어송라이터 멜로디 가르도의 데뷔앨범 타이틀곡인 'Worrisome Heart'(2006)를 골라봤습니다.
가르도는 열아홉 나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머리와 척추, 골반 다쳐 빛과 소리에 민감해져 늘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걸을 때도 지팡이에 의지해야 하고 시간 감각과 단기 기억상실도 겪고 있다네요.
그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3년여 음악치료를 받다가 음악적 재능에 눈을 떠 자작곡한 노래를 직접 제작해 앨범까지 발표하게 됩니다. 노래뿐 아니라 기타 연주와 일부 피아노 연주의 직접 했다고. 그래서 음악치료 전도사로도 유명해졌으니 불운을 행운으로 전환시킨 의지의 아티스트이기도 합니다.
노래에서 '걱정스러운 마음을 짊어지고 사는 현대적 젊은 여성'은 곧 교통사고 후유증을 짊어지고 사는 가르도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그것도 자신과 같은 몸과 마음의 짐을 짊어지지 않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남자를?
노랫말 중 3절에 등장하는 baggage는 미묘한 함의를 지닙니다. 보통은 여행가방이나 수하물을 뜻하죠. 따라서 'a man who got no baggage to claim'은 '붙일 짐가방 없이 여행하는 남자'로 직역됩니다. 하지만 그 짐가방은 바로 뒤에 등장하듯 화자인 여성이 해방되고픈 걱정거리에 골치거리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몸과 마음의 짐, 과거의 상흔에서 자유로운 남자를 기다린다는 뜻.
가르도처럼 아픈 몸과 마음을 지닌 여성들의 남모를 고충과 소망이 반영된 노래라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남자는 없습니다. 사고를 겪지 않을 순 있어도 과거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우면서 걱정거리 골치거리가 없는 남자, 아니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요? 있다면 '그림자가 없는 사람'일 겁니다.
만일 그림자 없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19세기초에 활약한 독일 시인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1814)는 그런 상상에 기초합니다. 소설의 주인공 페터 슐레밀은 파우스트의 변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금화가 무한대로 쏟아지 자루와 그림자를 바꾸자는 회색옷차림 남자의 제안을 받고 그림자를 판 슐레밀은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희사함에도 사회적 존재가치를 상실하고 사랑에도 실패하게 됩니다.
프랑스혁명 때 독일로 망명한 프랑스 귀족 가문 출신인 샤미소는 프랑스인이란 정체성을 잃은 자신의 체험을 과거라는 짐을 벗어던진 사나이의 운명을 슐레밀에 투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걱정거리에 골치덩이라도 '과거의 나'라는 짐내지 그림자가 없다면 '현재의 나'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를 깨달은 슐레밀은 1년 후 다시 나타난 회색옷차림 남자(악마)가 사후 영혼을 내주기로 약속하면 금화자루를 계속 주겠다는 제안을 뿌리칩니다. 그로 인해 그림자는 물론 금화자루까지 포기한 슐레밀은 우여히 고물상에서 구입한 헌구두가 한 걸음에 무려 7마일(약 11.2km)씩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세계여행을 다니며 과학연구에 몰두하면서 비로소 마음의 안식을 찾게 됩니다.
자신의 그림자를 잃은 대신에 인류와 세계의 그림자를 탐구함으로써 '미래의 나'를 새롭게 구축해낼 수 있게된다는 상징입니다. 동시에 독일인 친구들과 함께 과학연구에 매진했던 샤미소 자신의 초상이기도 합니다.
다시 노래의 주인공인 멜로디 가르도 돌아가 볼까요? 가르도는 원래 음악이 아니라 패션을 전공하던 학생이었습니다. 불의의 사고를 겪지 않았으면 더 좋아겠지만 그 사고 덕분에 자신의 숨겨진 음악적 재능을 발견했고 지금까지 다섯 장의 앨범을 발표한 싱어송라이터로서 성공하게 됐습니다.
'과거의 짐'이 '미래의 선물'로 전환된 경우입니다. 그러니 과거의 짐이나 상처가 없는 사람을 찾기보다는 그를 거름으로 삼아 밝은 미래를 열어갈 사람을 찾는 게 훨씬 더 현명하지 않을까요?
P.S. 가르도는 2025년 자산이 아기 엄마가 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아기 아빠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고 어디선가 아기아빠와는 헤어졌다고 밝혔다는데 어쨌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래도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기는 했네요. 동시에 인생은 고해의 연속임을 재확인하게 됩니다. 카를 포퍼가 갈파했듯이 인생의 묘미는 바로 그런 고해의 바다에서 당면한 문제를 계속해서 해결하는 것에 있다는....
I need a hand with my worrisome heart
I need a hand with my worrisome heart
I would be lucky to find me a man
Who could love me the way that I am
With this here worrisome heart
이 걱정스러운 마음을 달래줄 누군가가 필요해요
이 걱정스러운 마음을 달래줄 누군가가
정말 행운일 거에요, 그런 남자를 만난다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줄 사람
이 걱정스러운 마음까지 품어줄
I need a break from my troubling ways
I need a break from my troubling ways
I would be lucky to find me a man
Who could love me the way that I am
With all my troubling ways
이 힘겨운 습관들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어요
이 힘경운 습관들을 잠시 벗어두고 싶다고요
그런 남자를 만난다면 정말 행운일거에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줄 남자
내 모든 힘겨운 습관들까지 품어줄
I need a man who got no baggage to claim
I need a man who got no baggage to claim
I would be lucky to find me a man
Who could love me the way that I am
Worrisome troubling baggage free modern day dame
Worrisome troubling baggage free modern day dame
Ain't no body the same
난 과거의 짐따위 없는 남자가 필요해
난 과거의 짐따위 없는 남자가 필요해
그런 남자를 만난다면 정말 행운일거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줄 남자
걱정거리 골치정이 짐에서 자유로운 현대적 여성
걱정거리 골치덩이 짐에서 자유로운 현대적 여성
그 누구도 나와 같지 않죠
https://www.youtube.com/watch?v=SZq0u447vP8&list=RDSZq0u447vP8&start_radio=1
-2026년 5월 21일(새벽에 비오고 종일 흐림)
'오늘의 안부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황동만-변은아 커플 마음 담긴 노래, Pride (0) | 2026.05.16 |
|---|---|
| 아트 오브 노이즈의 '로빈슨 크루소'는 제목이 왜? (0) | 2026.05.14 |
| '미국적인 것'의 정수 담긴 'American Pie' (0) | 2026.05.13 |
| 어머니는 왜 슬픈 노래를 가르쳐주셨을까? (1) | 2026.05.10 |
| 앞서 지나간 배를 따라가는 또다른 배 (0) | 2026.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