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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안부곡

앞서 지나간 배를 따라가는 또다른 배

 

미국 풍경화가 윈슬로 호머의 '두 척의 돛단배'(1880년) [필라델피아미술관 소장]

 

 

구순을 훌쩍 넘긴 아버지가 요양원에 계십니다. 벌써 2년이 넘었네요. 갑자기 쓰러지셔서 6주 가량 입원하신 뒤 못 걷게 되신데다 노인성 치매로 그 좋던 기억력이 크게 떨어지셨습니다. 어머니 사시는 가까운 곳에 모셨지만 자주 못가셔 제가 매주 한 번씩은 가서 뵙습니다. 

 

난청에 보청기도 매번 잃어버리고 안끼시는 아버지는 거의 말씀이 없으십니다. 어렵게 의사소통을 시도해봐도 최근 일은 기억하지 못하십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닥치기 전부터 어쩌다 한 번 입을 여시면 "난 세상 사는 재미도 모르겠고 죽어도 여한이 없는데 그것도 쉽지 않구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칠순되셨을 때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냐"며 자신이 죽고난 뒤 처분할 일을 다 써서 주셨던 분이니 그 후로 20년을 훌쩍 넘겨 사실 줄 예상을 못하셨던 거죠.

 

어버이날을 앞두고 지난 주말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어머니와 함께 요양원을 방문했습니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서 표정은 좋아보이셨지만 손자와 며느리 이름은 기억 못하셨습니다. 어머니 이름도 한 자 틀렸고요. 그래도 제 이름은 똑바로 기억해주셨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날이 좋으면 아버지 휠체어를 밀며 가까운 공원 산책을 합니다. 입원하기 전까지 거의 매일 아버지가 산책하던 곳입니다. 아버지는 그도 잘 기억하지 못하시는 듯합니다. 아버지가 듣던 말던 저는 뒤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떠듭니다. 아머지는 아무 말씀이 없어시고요. 그럴 때 가끔 생각나는 노래가 배리 매닐로의 'Ships'(1979)입다.  

 

장성해 독립한 아들과 그런 아들 얼굴을 가끕 보는 아버지, 부자 간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죠. 그 후렴구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We're still here, it's just that we're out of sight/ Like those ships that pass in the night( 우린 여전히 여기 있지, 서로의 시야 밖에 있을 뿐/ 밤중에 지나가는 배들처럼)'.

 

아버지가 요양원에 계시면서 우리 부자는 예전보다 훨씬 더 자주 만납니다. 하지만 저는 아버지의 시야 밖이 아니라 가청권 밖, 기억력 밖에 서있습니다. 아버지 눈에 저는 제 아들처럼 20대 중반의 젊은이로 비치는 것 같습니다. 1년전 손자가 군에 입대한다고 말씀드리는데 "군대는 너부터 다녀와야지?"라고 하셨습니다. 또 제대한 아들 녀석 데리고 인사드리러 갔는데 "근데 왜 안경을 안 썼니?"라며 저랑 헷깔려 하셨고요.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저는 아버지 나이가 됐을 때 저를 상상하곤 합니다. 제 아들이 가끔 찾아오면 얼굴 마주할 때 한 번은 웃어주자. 아들이 휠체어를 밀고 산책이라도 시켜주면 "날이 좋구나"라는 말을 해주자. 그리고 아들이 갈 때 웃으면서 손이라도 흔들어주자. 혼자 집으로 갈 때 녀석 외롭지 않게.

 

1.4 후퇴 때 고모와 단 둘이서 월남한 아버지는 부모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셨죠. 그리고 건강하셨지만 100세 가까이 사실 거란 상상도 못하셨습니다. "아버지, 그래도 우린 여전히 여기 있습니다(We're still here). 설사 못들으셔도 또 함께 미소짓지 못했도 그것만으로도 괜찮습니다(It's alright). 전 외로운 돛단배가 아니라 앞서 지나간 배를 따라가는 또다른 배니까요."

 

 

We walked to the sea, just my father and me
And the dogs played around on the sand
Winter cold cut the air, hangin' still everywhere
Dressed in gray, did he say, "Hold my hand"
I said, "Love's easier when it's far away"
We sat and watched a distant light

 

우리는 바다로 걸어갔지, 아버지와 나 단 둘이서
모래사장에선 개들이 뛰놀고 있었어
겨울 추위가 공기를 베어내듯, 사방에 고요함이 감돌았어
회색 옷을 입은 아버지가 말했지, “내 손을 잡아”
나는 말했어, “사랑하는 건 멀리 있을 때 더 쉬워요”
우리는 앉아서 저 멀리 빛나는 불빛을 바라봤어

 

We're two ships that pass in the night
We both smile and we say, "It's alright"
We're still here, it's just that we're out of sight
Like those ships that pass in the night

 

우린 밤중에 스쳐 지나가는 두 척의 배
우리 둘은 서로 미소 지으며 말했지, “괜찮아”

우린 여전히 여기 있지, 서로의 시야밖에 있을 뿐
밤중에 지나가는 배들처럼

 

There's a boat on the line where the sea meets the sky
There's another that rides far behind
And it seems you and I are like strangers a wide ways apart
As we drift on through time
He said, "It's harder now we're far away"
We only read you when you write

 

배 한 척이 있어,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수평선 위에
또다른 배가 따라가고 있어, 그 뒤 멀리서

당신과 나는 마치 멀리 떨어진 낯선 사람들 같죠

시간을 따라 표류하는
아버지는 말했어, “이제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으니 더 힘들어”
편지 쓸 때만 네 소식을 알 수 있잖니"

 

We're two ships that pass in the night
And we smile when we say it's alright
We're still here, it's just that we're out of sight
Like those ships that pass in the night

 

우리는 밤중에 스쳐 지나가는 두 배
그리고 미소짓지 괜찮다고 말하면서
우린 여전히 여기 있지, 서로의 시야 밖에 있을 뿐

밤중에 지나가는 배들처럼

 

We're just ships that pass in the night
And we smile when we say it's alright
We're still here, it's just that we're out of sight
Like those ships that pass in the night

 

우린 그저 밤중에 지나가는 배들이야
그리고 미소짓지  괜찮다고 말하면서
우린 여전히 여기 있지, 서로의 시야 밖에 있을 뿐
밤중에 지나가는 배들처럼

 

We're just two ships that pass in the night
And we smile when we say it's alright
We're still here, it's just that we're out of sight

 

우린 그저 밤중에 지나가는 두 척의 배일 뿐
그리고 미소짓지, 괜찮다고 말하면서
우린 여전히 여기 있지, 서로의 시야 밖에 있을 뿐

 

 

https://www.youtube.com/watch?v=zfmc3wCuRco&list=RDzfmc3wCuRco&start_radio=1

 

 

-2026년 5월 8일(어제 밤 살짝 비온  맑아졌지만 오후엔 돌풍 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