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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안부곡

뱅크시 조각의 '얼굴 가린 깃발'이 상징하는 것

[로이터]

 

 

하루종일 흐리고 비가 내렸습니다. 이른 새벽 눈이 떠졌지만 쉬이 다시 잠이 안오더군요. 책을 뒤적여도 잘 읽히지 않고 글을 써보려 해도 잘 써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루종일 마음이 뒤척였습니다.

 

이런 저런 노래들을 들어보는데 제 마음에 착 붙는 노래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나윤선의 'I Can't Sleep'을 들으며 겨우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올해 발표한 그녀의 자작곡 재즈넘버입니다.

 

실패한 사랑에 대한 회한을 폐부 깊이 읊조리는 '부서진 노래(a broken song)'입니다. '사랑이 교훈이라면 그 대가는 뭘까?(If love's a lesson, then what's the cost?)'라는 가사가 사무칩니다.

 

'난 길을 잃었네'와 '난 패배했네'라는 중의적 메시지를 지닌 I'm lost가 반복되는 것 또한 시대적 열패감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가사 아닐까요? '시간은 거짓말쟁이, 앗아가고, 찢어놓지/ 빛을 훔쳐가고, 너를 헐벗게 만들어'는 장미빛 미래가 도래할 줄 알았던 21세기가 폭정과 전쟁으로 귀결되는 우리네 현실에 대한 음울한 묘사처럼 들립니다.

 

그러자 '우린 작별인사 대신 대화를 나눴어야 했어/ 눈물이 마르길 기다리기보단 눈물 흘리며 싸웠어야 했어'라는 앞구절 가사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섭니다. 냉전시대는 끝났건만 여전히 신념과 사명감이라는 이름의 이념에 눈이 멀어 서로를 견원시하는 인류의 '바보짓'을 떠올리게 합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익명의 거리예술가 뱅크시가 최근 런던 도심에 깜짝 공개한 설치미술에 대한 반응이 서글픈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깃발을 들고 행진하다가 깃발에 눈이 가려 추락 직전의 위기에 몰린 양복 입는 남성조각상이 과연 트럼프로 대표되는 이기적인 우파 민족주의 세력만 풍자한 것일까요? 자본가세력에 맞서 싸우는 숭고한 혁명을 완수하겠다며 그에 이탈하는 국민들을 배신자로 낙인찍고 학살마저 정당화하는 좌파들은 왜 예외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어쩌면 우리들은 옳고도 정의롭지만 너희들은 타락하고 부패했다는 그 지독한 나르시시즘이야말로 뱅크시 조각상의 깃발이 상징하는 것 아닐까요?  따라서 너희들 때문에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 아니라 지난한 대화보다 손쉬운 결별을 선택하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함께 싸워나가려 하지 않은 우리들 때문에 실패하고 패배했다고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요?

 

 

I can't sleep, the night's so long
Your memory hums a broken song
How did we let our love unwind?
The answers fade, they're hard to find

 

잠이 오지 않아, 밤이 너무 길어
네 기억은 부서진 노래를 흥얼거리지
어떻게 우리 사랑이 이렇게 풀려버린 걸까?
답은 희미해지고, 찾기 힘들다네


I can't sleep, you're on my mind
The words we lost, the ties that bind
We should have talked instead of goodbye
Should have fought through tears, not let them dry

 

잠이 오지 않아, 네 생각만 가득해
잃어버린 말들, 우리를 묶어주던 인연
우린 작별인사 대신 대화를 나눴어야 했어
눈물이 마르길 기다리기보단 눈물 흘리며 싸웠어야 했어


I can't sleep, your voice remains
A whisper soft that cuts through days
If love's a lesson, then what's the cost?
I tried to learn, but played the fool

 

잠이 오지 않아, 네 목소리가 여전히 들려
지난날들을 뚫고 들려오는 부드러운 속삭임
사랑이 교훈이라면, 그 대가는 무얼까?
배우고자 했지만, 바보짓만 벌였지

 

I can't sleep, I'm lost, I'm lost
Time's a liar, it takes, it tears
Steals the light and leaves you bare
Could we have changed? I'll never know
If I'd been different, would we still grow?
La-da-da-dum, la-da-da-dum
La-da-da-dum, la-da-da-da-da-da-da-da
Da-da-da-da, da-da-da..

 

잠이 오지 않아, 난 길 잃었네, 길 잃었어
시간은 거짓말쟁이, 앗아가고, 찢어놓지
빛을 훔쳐가고, 너를 헐벗게 만들어

우리가 달라질 수 있었을까? 난 영원히 모를 거야
내가 달랐다면, 우린 계속 성장했을까?
라-다-다-둠, 라-다-다-둠
라-다-다-둠, 라-다-다-다-다-다-다-다
다-다-다-다, 다-다-다..

 

https://www.youtube.com/watch?v=IzMeHNaYtxU&list=RDIzMeHNaYtxU&start_radio=1

 

 

-2026년 5월 3일(흐리고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