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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안부곡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의 한 장면. [영화제작 전원사]

 

호사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일단 아는 척하고 들어가는 사람.

 

한국 신문이 확장일로를 달리던 1980, 90년대 입사한 선배기자들 중에 제일 많은 유형에 대해 제가 붙인 별칭입니다. 온갖 사건사고가 벌어지는 시대를 살아와서 그런지 뭔 일만 벌어지면 "내가 그거 좀 아는데"라며 숟가락부터 얹고 보는 분들이죠

당시 언론 환경이 이런 호사가 유형 기자의 양산을 낳았습니다. 경제 규모와 더불어 신문지면은 점점 커져가고 다방면에서 예측불허의 뉴스가 쏟아져 나왔죠. 그런 상황에 순발력있게 대처하기 위해선 전문적 지식은 좀 부족해도 발벗고 나서는 오지라퍼들이 환영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

호사가 유형 기자들은 사건이 발생하면 예민한 촉으로 그 사건의 성격과 방향을 예단하는 '야마'에 맞춰 두괄식 기사를 써야한다는 한국식 기사작법에도 부합했습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대충 아는 것과 기자로서 감을 결합해 일종의 방향몰이를 잘 해야 유능한 기자 대접을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에선 이런 언론 관행에 거부감을 느끼는 비판적 독자들이 늘어났습니다. 전후관계를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섣불리 예단하고 여론재판을 통해 냄비근성을 자극하며 여론몰이를 벌이는 걸 여론선도로 착각한다는 매서운 비판.

그러면서 소위 시민기자라는 분들이 오히려 정론을 펼친다고 칭찬받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요즘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각종 이슈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을 자유롭게 분출할 수 있는 만인기자 시대라 할 수 있죠.

하지만 정작 페이스북에서 접하는 글들은 호사가형 기자들의 기사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슈만 됐다 하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마디씩 거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글들이 넘쳐납니다. 

기자들이야 사안이 벌어지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뉴스 분량을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립니다. 그러다보니 종종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다는 변명이 먹힐 때가 있습니다. 수요가 있기에 함량 미달의 기사라도 공급할 수밖에 없는 딱한 사정이 있으니까요.

헌데 '욕하며 닮는다'더니 그런 부담도 없는 분들이 왜 그렇게 인구에 회자된다 싶으면 숟가락 얹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야마'부터 잡고 섣부른 기사쓰기 바쁜 기자들 흉내내느라 바쁜지 모르겠습니다.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입부터 털지 못해 좌불안석인지 모르겠습니다.

남들이 떠드는 것에 숟가락을 얹고 싶으면 먼저 관련 내용부터 꼼꼼이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유튜브 쇼츠영상이나 단편적 기사를 토대로 뇌피셜부터 펼치는 것에 익숙해지다보면 결국 음모론에 심취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특히 책이나 영화, 드라마, 노래에 대한 비평을 접하더라도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그냥 무시하시면 됩니다. 억지로 훑어보고선 "남들이 이걸 좋다고 하는데 내 눈과 귀엔 별로더라"라며 트집 잡는 식의 글을 쓸 시간이 있으면 그냥 본인 취향의 작품 소개에 전력하시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가만 보면 오랜 시간 들여서 읽어야 하는 책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습니다. 짧은 시간에 '수박 겉핥기' 식으로 접할 수 있는 OTT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글만 넘쳐납니다. 정말 뭔가를 비판하고 싶으면 공들여 꼼꼼이 다 읽어내는 것이 "작품과 작가에 대한 예의" 아닐까요?

 

그럴 의사가 없다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는 게 최선입니다.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라는데 왜 굳이 악플을 달려 하시나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꾸역꾸역 기사를 써야하는 기레기처럼 되기 싫으시면 비트겐슈타인의 이 말을 주문처럼 외우시면 됩니다. "말 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선 침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안부곡으로 한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중 반골기질로는 일등이라 꼽는 이랑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골라봤습니다. 2012년 발표한 이랑의 데뷔 앨범  '욘욘슨'의 1번 트랙곡이죠. 은근히 멋부리는 걸 좋아하지만 멋부릴 줄 모른 척 내숭 떨고, 남자관계가 복잡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남자친구가 많았던 뼈아픈 이유를 들려주며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말아달라고 귀엽게(?) 호소하는 노래입니다. 

 

 

난 사실 멋내는게 좋아

아무도 모르게 은근히 슬쩍슬쩍

그런데 누가 멋냈느냐고 물어보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내가 왜 그러는지

내가 왜

 

어려서부터 울 언니가 나보다 훨 예뻤어

얼굴도 작고 늘씬한 서구형 미인

그래서 내가 언제부턴가 멋부리려 했더니

못생긴 애가 멋부린다고

어른들이 놀렸어

그래서 그랬어 그래서 그랬어

 

누가 나보고 예쁘다고 하면

난 그말만 듣고 그럼 나랑 사귀자고 했어

그런식으로 만난 남자만해도 벌써

한명 두명 세명 네명 다섯명 여섯명 일곱명 여덟명

내가 왜 그랬는지

내가 왜

 

(간주)

 

그러니까 너도 함부로 나한테

남자관계가 복잡하다고 그렇게 말하지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알지도 못하면서

 

(간주)

 

나 예쁘니? 어디가? 진짜?

그럼 나랑 사귈래?

 

난 사실 멋내는게 좋아

아무도 모르게 은근히 슬쩍슬쩍

그런데 누가 멋냈느냐고 물어보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저는 옷이나 그런 거 별로 관심없는데요

 

https://www.youtube.com/watch?v=B2CjltfS210&list=RDB2CjltfS210&start_radio=1

 

 

-2026년 5월 6일(맑고 화창한 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