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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일기

'왕사남' 흥행과 '탱크데이' 폭망은 궤를 같이 하나니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기존 이미지와 차별하된 한명회 역을 맡은 유지태. 유지태가 형상화한 강하고 무서운 한명회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참주로서 수양대군 이유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온다웍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의 흥행 성공과 스타벅스 '탱크데이' 이벤트 폭망은 궤를 같이 한다고 우민은 생각한다. 부당하게 권력을 찬탈한 참주(tyrannos)가 더 이상 이 땅에 발붙이게 하지 않겠다는 공화주의적 열망의 집단적 분출이라고. 
 
'왕사남'을 보고 소문 난 잔치에 먹을 거 없더라는 사람들이 있다. '단종애사'를 좀 더 사실적으로 그렸지만 결국은 대중적 신파극으로 보는 이들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단견이란 게 우민의 속내다. '왕사남'의 1000만 영화 등극은 예술성이나 대중성과는 큰 상관이 없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난'을 겪고 정치적 각성에 도달한 국민의 집단적 감수성을 제대로 저격한 결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정작 영화엔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 백성의 뜻을 짓밞은 윤석열 계열의 참주임을 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유정란으로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 이유가 그 장본인이다.
 
'왕사남'은 1980년대 신봉승이 대본을 쓴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설중매'에서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 것처럼' 미화됐던 수양대군이 윤석열처럼 추악한 권력욕의 화신임을 폭로하는 영화다. 설중매 편이야말로 12.12와 5.18을 통해 권력을 찬탈한 현실 권력 전두환에게 정당성을 부여한 5공판 '용비어천가'임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으며 1000만 관객 돌파로 국민적 승인을 받았다는 것이 우민의 해석이다.
 
신봉승이나 시오나 나나미, 이영훈 같은 현실주의자들은 대세론에 편승하는 기회주의자에 불과하다는 것이 우민의 신념이다. 그들은 어차피 세상은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데 탁상공론에 젖은 철없는 이상주의자들 때문에 대중이 혼란에 빠진다며 늘 '힘의 논리'를 찬양한다. 그래서 독재자 박정희-전두환의 집권을 불가피하다고 정당화하고, 로마공화정을 무너뜨린 카이사르를 찬양하고, 봉건주의에 젖은 조선을 무너뜨리고 근대를 이식했다며 제국주의 일본을 옹호한다. 
 
하지마 우민이 보기에 이는 결국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한 참주의 논리다. '민심이 곧 천심'이라는 동양적 공화주의 심성을 현실감각 없는 공리공론에 불과하다고 짓밟는 궤변이다. 민심은 늘 그 대척점에 있었음을 애써 외면하는 외눈박이 논리일 뿐이다.
 
계유정란이 발생했을 때 그 왕위찬탈을 지지하거나 동의한 백성이 얼마나 됐을까? 다만 당시는 민주공화정이 아닌 왕정국가였기에 민심이 중요 변수가 아니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백성들은 반정을 도모한 사육신을 찬양하고, 신숙주를 비난하는 '숙주나물' 전설을 지어내고, 부관참시당한 한명회의 운명을 조롱했다. 민중의 서사는 늘 수양대군과 한명회, 신숙주가 아니라 단종과 사육신의 편을 지켜왔다. 그것이 오백년이 지나 민주공화국이 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는 것이 '왕사남'이 1000만 영화에 등극한 현상의 핵심이라는 것이 우민의 판단이다.
 

[MBX]

 
 
'탱크데이' 이벤트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전례없이 하룻만에 이뤄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이사의 파면과 사과 역시 그 연장선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의 난'으로 촉발된 국민들의 공화주의적 각성이 전례없는 후폭풍을 몰고 왔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우민의 판단이다. 
 
1980년 5월 전두환이 총칼을 앞세워 광주를 무자비하게 도륙할 때 70만 광주시민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은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인구가 4500만이라 하면 450대 7이라는 압도적 스코어 차이였다. 그래서 전두환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던 박정희의 선례를 따라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 자리를 꿰찼을 때나 이후 전두환 정권이 역사상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잘나갈 때 국민들이 그에 순종하는 듯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 내내 빛고을 광주는 국민적 양심의 걸림돌(스캔들론)이 됐고, 7년 뒤인 1987년 6월 항쟁이란 역사적 들불의 불씨로 생생히 되살아났다. 그리고 다시 30년 뒤 탱크데이로 촉발된 민심은 450대 7이던 스코어를 1대 500으로 바꿔놨다. 10년 전 박근혜 정부 시절 '5.18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금지시켰을 때만 해도 상상도 못할 대역전극이 펼쳐진 것이다.
 
신봉승, 시오노 나나미, 이영훈 같은 이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고 동의할 수 없는 지극히 인간적 현상이다. 이야말로 헤겔이 말한 '이성의 간지(The Cunning of Reason)' 아닐까?
 
자연계가 약육강식의 논리에 지배된다는 그들의 전제 자체도 엉터리다. 약육강식의 논리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벌이는 동물이 얼마나 많은지는 소셜미디어상에 떠도는 온갖 동물 영상만 봐도 알 수 있다. 사육장으로 떨어진 인간 아기를 정성스레 돌봐주는 고릴라, 병아리를 어미닭 대신 품어주는 고양이, 숲에서 실종됐는데 야생곰들과 친구가 된 강아지, 죽마고우로 자라 우애를 나누는 푸마와 사냥개...더욱이 그런 동물적 본능의 세계를 뛰어넘는다 자랑하는 인간이야말로 윤리적이고 희망적 존재가 돼야 하지 않을까? 
 
물론 현실주의만큼 이상주의도 공화주의가 경계해야할 병폐라고 우민은 생각한다. 5.18 때 부당한 신군부에 맞서 싸우지 않는 한국사회의 비겁함에 분기탱천했던 386운동권들이 이후 보여준 저열한 타락상을 떠올려 보시라. 공화주의는 이상의 환상에 취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의 비루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실주의자들은 다윈의 적자생존을 이렇게 오도한다. '강한 놈이 오래 살아남는다.' 다윈 이론을 인간세계에 멋대로 적용한 허버트 스펜서 류의 사회진화론이다.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다. 다윈의 적자생존이 말하는 바는 '운좋은 놈이 살아남는다'이다. 공화주의적 표현을 빌려 말하면 기(비르투)가 아니라 운(포르투나)에 의해 적자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남는 놈이 강한 놈이다'가 맞을까? 그 역시 진정한 공화주의적 답이라고 할 수 없다. 공화주의적 답은 살아남을지 않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살아남아야 한다고 믿는 것을 위해 자신의 운명을 걸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포르투나의 사랑을 받을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비루투를 바치는 것이다. 다행히 21세기 대한민국은 그러한 비르투와 포르투나가 동행하고 있다. 이 어찌 다행이고 축복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026년 5월 20일(아침부터 하루종일 비)



#우민은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인 동시에 '또 하나의 백성(又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붙인 별호입니다. 우민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