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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일기

참주는 군주정이 아니라 민주공화정의 적이다

[The Trump Report]

 

 

트럼프가 협상의 귀재라는 둥 전략가라는 둥 떠들던 그 많던 이들은 다 어디 갔을까? 트럼프는 그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감정파이면서 그걸 교묘하게 악용해 개인적 이득을 취하는 모리꾼, 협잡꾼일뿐이다.

 

공공의 이익을 가장 중시하는 공화주의적 전통에서 트럼프와 같은 이들을 부르는 명칭이 '참주(tyrannos)'다. 평민파의 환심을 사서 권력을 쥔 뒤 자신의 영광과 이익만 추구하는 독재자형 지도자를 뜻한다. 고대 헬라어인 티라노스(tyrannos)에 어원을 둔 영어 독재자를 뜻하는 타이런트(tyrant)다.

 

참주는 개인적 능력을 발판 삼아 대중의 인기를 얻어 지도자가 된 이후 공화정의 전통을 파괴하고 독재정치의 씨앗을 뿌리고 거둔다. 쉽게 말해 "나 아니면 안돼"라며 자신의 집권을 계속 연장하다 종신독재자가 되고, 다시 왕이나 황제를 꿈꾼다.

 

플라톤은 군주정이 타락하면 참주정이 된다고 했다. 그때문에 참주를 군주정의 적으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다. 참주는 민주정과 공화정의 적이다. 참주는 왕이 없는 민주정이나 공화정에서 권력을 잡든 뒤 결국 그들 체제를 무너뜨리고 왕정을 세우려는 기생충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능한 참주라면 자신이 집권할 때 제법 업적이라는 걸 남긴다. 이 무렵 대중의 눈에 비치는 참주는  공익과 사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 사냥에 성공하는 일거양득의 귀재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인들 눈에 비친 허상이다.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다. 참주는 사익을 공익으로 포장하는 귀재일 뿐이다. 

 

참주의 지배가 장기 독재로 흐르게 되면 결국 아테네 같은 민주정과 로마공화정 같은 공화정 그리고 현대적인 민주공화정을 내부에서 무너뜨린다(내파한다). 공화주의 최대 적이 참주인 이유다. 그런 참주가 왕이라도 돼 자식에게 왕좌를 물려줄 경우 대부분의 나라는 결단나게 된다. 

 

물론 예외도 존재한다. 로마공화정을 파괴하고 세워진 로마제국과 피렌체공화정을 자양분 삼아 가문의 영광을 이룬 메디치가다. 선군보다 폭군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로마제국은 침략과 약탈로 점철된 제국주의의 길을 걷다가 풍비박산났다. 메디치가 역시 르네상스기 이후 베니스와 더불어 양대 공화정체제이던 피렌체 공화정을 종식시키고 가문의 영광만 추구하다 결국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왕가에 나라를 넘기고 말았다. 

 

로마 공화정 말기 참주화한 3대 영웅. 왼쪽부터 술라, 마리우스, 카이사르. [나노 바나나를 이용한 AI이미지]

 

 

한국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참주의 실체를 제대로 알려면 로마공화정 말기 3대 영웅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마리우스, 술라, 카이사르다.

 

유능한 군인이었던 마리우스는 무능한 원로원파와 대결을 위해 평민파가 돼 사실상 종신 독재관의 길을 걸었다. 귀족 출신인 술라는 그런 마리우스의 휘하에 있다가 원로원파와 손잡고 마리우스와 대결하다 역시 종신독재관이 됐다. 술라처럼 귀족가문 출신이지만 마리우스처럼 평민파의 지지를 등에 업은 카이사르는 자신의 측근세력을 새로운 원로원파로 만들어 황제의 자리를 오르려 했고 결국 로마공화정을 무너뜨렸다.

 

평민파 마리우스, 원로원파 술라, 황제파 카이사르는 모두 '난세의 영웅'이었다. 난세가 거듭되면 대중의 판단도 흐릿해진다. 세 영웅의 군사적 승리에 도취해 그들이 참주화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 결과, 로마공화정이 무너지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로마제국이 탄생했다. 또 로마공화정의 찬란한 역사마저 세 영웅의 역사로 둔갑했다. 개인적 영광과 승리를 추구하는 참주가 승리한 역사다.

 

그 대척점에 위치한 난세의 영웅들도 있다. 아테네 민주정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 로마공화정의 영웅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영국의 영웅 윈스턴 처칠이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당대 최대 제국이던 페르시아 침략 앞에서 풍전등화 같던 아테네는 물론 그리스 전체를 구해낸 살라미스해전의 영웅이다. 스키피오는 명장 한니발 바르카가 이끌던 카르타고군에 의해 멸망 직전에 갔던 로마공화정을 구해낸 자마전투의 영웅이다. 처칠은 제3제국 나치독일의 침공에서 영국은 물론 유럽 전체를 구한 2차세계대전의 영웅이다.

 

아테네와 로마공화정 그리고 영국은 이들 세 영웅을 토사구팽함으로써 자신들의 민주공화적 전통을 지켜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 시민들 투표에 의해 도편추방돼 적국인 페르시아의 장수로 있다 자결했다. 스키피오는 그의 공적을 시기한 대 카토 등 정적들의 정치공세에 결국 스스로 정치적 유폐자로 살다 숨진다. 처칠은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도취감이 가시기도 전에 총선에 패배해 실각한다. 

 

민주공화정에서 토사구팽당한 3대 영웅. 왼쪽부터 테미스토클레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윈스턴 처칠. [나노 바나나를 이용한 AI이미지]

 

 

만일 군주정의 주권자인 왕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면 배은망덕한 결정이라고 대대로 비난받았을 것이다.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이 마지막 전쟁인 노량대전에서 사실상의 자결을 선택하게 했다고 비난받은 선조처럼.

 

하지만 '로마사 논고'에서 마키아벨리가 갈파했듯이 민주정과 공화정의 주권자인 시민의 선택이라면 '대의를 위한 선택'으로 칭송받게 된다. 그들의 영웅적 면모가 역사에 길이 기록되도록 하면서 그들이 참주라는 정치적 타락의 길로 가는 것을 선제적으로 막아냈기 때문이다. 그들의 영웅적 승리의 영광과 공화주의의 보존이라는 진정한 두 마리 토끼 사냥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물며 트럼프는 로마공화정 말기의 3대 영웅은 물론 테미스토클레스, 스피키오, 처칠에 비견하는 것조차 참담한 무능한 지도자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대통령에 두 번이나 선출된 것 역시 대중의 눈을 속이는 재주(비르투)보다 전임자들이 미국의 쇠퇴를 막지 못한 상태에서 대중이 포퓰리즘에 취약해진 시대적 운(포르투나)이 좋았다. 그럼에도 두 차례나 대통령에 뽑히자 각종 기념물은 물론 미국 달러화에도 자신의 이름을 새기며 대놓고 참주화의 길을 걷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트럼프는 미국이라는 공화국이 참주라는 기생충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 됐을 때 등장한 엄창 운좋은 기생충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당장 트럼프를 정치적 유폐시키고 종국엔 토사구팽하는 것이 미국은 물론 세계를 구하기 위한 의롭고 정당한 선택이라고 우민은 믿어의심치 않는다.

 

-2026년 5월 5일(어린이날답게 맑고 푸른 오월의 날씨)

 

 

 

#우민은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인 동시에 '또 하나의 백성(又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붙인 별호입니다. 우민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