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있는 사람들은 감옥에 들어가서도 하루 1회 이상 변호사 접견 특권을 누린다는 사실은 한때 최고권좌에 있다가 '벌거벗은 임금님' 신세로 전락한 윤석열에 의해 국민적 조롱거리가 됐다. '서민의 편'으로 위장하기 바쁜 민주당 정치인이라고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이재명 정부 초대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보좌관 갑질 논란으로 낙마한 뒤 공천헌금 1억원 수수 혐의로 구속기소된 강선우 의원 역시 수감 36일 동안 63회나 변호사 접견을 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우민은 평소 얼추 그려오던 청사진이 더 확실해진 느낌을 받았다.
윤석열로 대표되는 국민의힘 다크 세력과 강선우로 대표되는 민주당 다크 세력은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았는다. 다만 국민의힘 정치인은 한국에서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던 가문의 후손이 많고, 민주당 정치인은 자수성가한 이들이 많을 뿐.
일반 국민이 보기엔 똑같이 잘먹고 잘사는 이들이다. 다만 마키아벨리의 용어를 빌려 말하면 국힘 정치인들이 포르투나(fortuna) 은덕을 잔뜩 입었다면 민주당 정치인들은 상대적으로 비르투(virtù) 덕이 더 크다는 차이가 있을 뿐. 두 단어는 이탈리아어로서 운칠기삼의 운칠이 포르투나라면 기삼이 비르투에 해당한다.
대대로 물려받은 포르투나 덕에 정치인이 된 사람들도 비르투가 없는 건 아니다. 그 비르투가 발현되는데 남들보다 훨씬 더 포르투나 덕을 톡톡히 봤을 뿐. 이런 경우 부모 잘 만난 덕이 더 큰 거만 자신이 잘나 그런 것이라 우기고 싶은 철부지들이 많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현실과 유리된 유체이탈의 화법을 구사하게 된다. 그래서 국민 복창 터지는 소리로 표를 깎아 먹기 일쑤다.
물려받은 거 없이 비르투나로 자수성가한 것처럼 보이는 정치인도 알고보면 포르투나의 총애를 잔뜩 받은 사람이다. 운칠기삼이란 표현이 괜히 있을까? 다만 간난신고의 성공신화를 위해 애써 포르투나의 역할은 감추고 자신의 비르투만 과장했을 뿐. 그로 인해 자신이 순전히 자신의 노력만으로 성공했다는 오만한 착각의 늪에 빠지기 쉽다. 남에겐 가혹하면서 자신에겐 관대한 '내로남불'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이유다.
둘 다 포르투나와 비르투를 갖췄지만 포르투나가 두드러지느냐 비르투가 두드러지느냐는 차이로 정치행로가 갈렸다는 소리. 쉽게 말해 대대로 잘먹고 잘살았느냐, 당대에 자수성가했느냐로 당파가 나뉜 것일 뿐인데 얼음과 불처럼 화합할 수 없다고 난리를 친다.

그들의 이런 본질적 차이를 이념의 차이로 위장해주는 게 소위 좌우 논리다. 원래는 18세기 프랑스혁명 이후 국민의회 의장석 기준으로 오른쪽에 기성체제의 혜택을 많이 받은 왕당파, 왼쪽에 급진적 변화를 요구한 공화파가 앉았다고 해서 생긴 용어다. 그러다 19세기 마르크스의 계급투쟁론을 만나면서 마르크스 이론에 반대하며 자유를 중시하는 우파와 마르크스 이론에 경도되면서 평등을 중시하는 좌파로 이념적 포장이 덧씌워졌을 뿐이다.
'마르크스 이전의 마르크스'라 할 마키아벨리의 책을 읽던 우민은 그 연원이 훨씬 더 깊다는 걸 깨달았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 민주정과 고대 로마 공화정부터 힘없고 가난하지만 다수인 평민파와 부와 권력을 선점한 소수 엘리트 귀족파(원로원파)의 대립 구도다. 청동기시대 왕조체제의 출범 이래 모든 인간사회에서 발견되는 구도 아닐까?
이를 왕당파 대 공화파, 자유파 대 평등파의 대립과 등치시키는 근대적 착시 현상이 상황을 꼬이게 했다는 것이 우민의 문제의식이다. 권력을 왕이라는 한 사람에게 몰아줘야 한다는 왕당파는 오늘날 관점에선 극우다. 아예의 논외의 대상이다. 프랑스혁명 당시 그 대척점에 위치한 공화파는 결코 평민파나 평등파와 등치될 수 없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공화주의는 평민파와 귀족파를 양 바퀴로 삼아 돌아가는 정치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평민파와 평등파는 먹고사니즘에 투철하다. 그래서 현실타파의 문제의식이 강하다. 대신 포퓰리즘의 유혹에 취약하다. 반면 귀족파내지 자유파는 국정 운영에 직접 참여한 경험이 자산이다. 눈 앞의 이익을 넘어 장기적 국익을 염두에 두는 심모원려를 갖췄다. 대신 자신들에게 유리한 현실의 기득권에 집착한다.
공화파는 현실적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평민파뿐 아니라 국정 운영의 노하우와 정치경제적 여력이 풍부한 원로원파의 목소리에도 귀기울이면서 세력 균형과 조화를 추구한다. 평민의 고통이 심대해지면 현실 개혁의 손을 들어주지만 그것이 제어 안 될 정도로 폭주할 경우엔 체제 안정을 선택한다.
그런 평민파와 원로원파의 대립과 갈등이야말로 공화정이 건강하다는 증거라고 마키아벨리는 강조했다. 반대로 평민파나 원로원파가 독주하게 되면 참주정(현대적 용어로 독재)이 깃들게 된다고 경고했다.
공화주의 정치서사는 덕성과 타락의 드라마에 기초한다. 절대권력을 절대부패한다. 원로원파는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확장하겠다는 욕망에 충실하다. 평민파는 그런 원로원세력으로부터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독립을 추구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들 영향력의 거세까지 꿈꾼다. 공화주의는 그런 그들이 국가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이란 공익을 망각하고 자신들의 정파적 욕망에만 충실한 것을 '코루치오네(Corruzione)', 곧 부패와 타락으로 본다. 반대로 국가적 공익 실현에 투철한 덕성을 다시 비르투(virtù)로 호명한다.
공화주의의 비르투는 그렇게 이중의 짝패 놀이를 펼치느라 바쁘다. 한편으론 포르투나라는 긍정적 짝과 이인삼각 경기를 펼치면서 다른 한편으론 코루치오네라는 부정적 짝과 씨름해야 한다.

대중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한 근대 이후 이런 공화주의적 비전을 순진하다며 엉뚱한 이념놀이에 빠져든 것이야말로'근대적 착종'이란 것이 우민의 판단이다. 자본주의의 도래와 더불어 가난한 평민파와 부유한 원로원파 사이에 중산층이 등장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 3개 정치세력이 형성돼야 한다. 하지만 제3세력의 정치화를 통한 삼족지세의 형성은 여전히 요원하다. 현실은 여전히 평민파와 원로원파에 기초한 양당 체제의 영향력이 강고하다.
그로 인해 고전적 평민파는 서민과 중산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게 됐다. 고전적 원로원파도 전통적 지배층이란 집토끼뿐 아니라 신흥 중산층이라는 산토끼까지 키우게 됐다. 그렇게 중산층을 포섭하기 위해 '좌우 논리'라고 쓰고 '좌우 놀이'라고 읽게되는 이념적 프레임 짜기가 펼쳐지게 된 것이다. 이 복잡다난한 이념 게임은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밑바닥을 다 드러내게 되고 말았다.
그 좌우놀이의 최대 수혜자는 정권교체의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된 중산층이었다. 평민파와 원로원파 중에서 중산층이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권력지형의 변화가 빈번히 발생하게 됐다. 그렇게 빈번해진 정권교체를 통해 평민파 역시 원로원파가 독과점하던 국가운영의 경륜을 터득하고 축적하게 됐다.
뒤집어 말하면 평민파의 주류세력이 평민들을 대변하는 호민관을 거쳐 원로원에 입성하는 효과를 발생시킨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평민파와 원로원파의 정치경제적 지위의 격차는 크게 줄어들게 된 것이다. 윤석열과 강선우의 투샷은 바로 그런 현상의 네가필름(음화)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중산층이야말로 현대정치에서 진정 공화파 정신에 충실한 세력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평민파와 원로원파 세력의 타락/부패를 견제하면서 그들 간 긴장과 균형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가져오는 덕성(비르투)의 발현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은 그들 계급이익에 충실한 제3정당을 통해서가 아니라 평민파와 원로원파에 대한 전략적 제휴로 이뤄진 이이제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통 공화정과 차별화되는 현대 공화정의 독특한 풍경이다.

자, 이런 공화주의적 정당관에 입각해볼 때 한국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어떻게 바라 볼 수 있을까? 민주당은 그 뿌리가 식민지조선의 지주와 사업가들로 구성된 한민당이라는 점에서 원로원파여야 한다. 하지만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이란 참주(독재자)와 그들을 추종하는 왕당파가 주류세력이 되면서 비주류로 밀려났다. 그래서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 다시 말해 평민파화를 통해 살아남았다. 하지만 잇따른 집권으로 주류화하면서 그 뿌리인 원로원파로 회귀할 것인지 아니면 중간기착지였던 평민파를 계속 유지할지의 기로에 서있다.
국민의힘은 탁월한 1인이 권력을 장악해야한다는 신념을 지녔다는 점에서 공화주의 전통의 역외세력인 왕당파에 가깝다. 하지만 고전적 공화주의는 물론 현대 대중민주주의에서도 왕당파는 시대착오적 극우세력이 될 수밖에 없다. 그 궁색함을 모면하기 위해 1990년대 이후 자신들을 원로원파 내지 자유파로 재포장을 시도했다. 소위 전향한 386 중심의 뉴라이트 운동도 그중의 하나다. 하지만 그 둘의 만남은 결국 12.3이란 '쿠데타의 회귀'이자 '왕당파의 회귀'로 처절히 몰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한국 중산층은 중대한 딜렘마에 봉착했다. 공화파의 정신에 투철하기 위해선 평민파나 원로원파 어느 곳도 독주하게 놔돠선 안된다. 두 세력의 팽팽한 긴장과 갈등이 유지될 때 공화국이 부패와 타락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왕당파의 길을 고집하는 국민의힘을 원로원파로 존중해 줄 수도 없다. 반대로 민주당이 평민파와 원로원파를 모두 아우르게 방치할 경우 마키아벨리가 경고했듯이 참주정치의 도래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자생능력을 상실한 국민의힘에서 더이상 기댈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에서 열쇠는 민주당이 쥐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마땅히 한민당의 몫이어야 할 정통 원로원파의 길을 걸을 것인지, 아니면 서민정당 코스프레라는 의혹을 벗고 진짜 평등과 복지 중심의 평민파의 길을 걸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전자의 노선을 택한다면 윤어게인이란 왕당파를 제외한 국민의힘의 원로원파와 자유파를 흡수해야 한다. 후자의 노선을 택한다면 정의당 등 진보세력을 흡수해 북유럽이나 독일식 사민당화를 추진해야 한다.
우민이 보기에 민주당 주류 세력은 지금 그 둘 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전체주의체제가 아닌 이상 그런 정당은 존재할 수 없다. 만일 그 둘을 동시 추진한다면 민주당은 분열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국민의힘의 비왕당파 세력이 주도권을 잡으며 기사회생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YS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뛰어들어야 한다'며 3당합당에 뛰어들었지만 YS가 이끌던 민주계는 형해화하고,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을 계승했다는 세력만 득세하게 됐듯이.
-2026년 4월 28일(하루종일 흐림)
#우민은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인 동시에 '또 하나의 백성(又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붙인 별호입니다. 우민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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