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주 월요일 일산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를 뵙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 20세기 피아니스트 중 최고로 꼽히는 사람은 누굴까? 제 머릿 속에서 떠오른 사람은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 그 다음 차례로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글렌 굴드,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그리고 마르타 아르헤르치였습니다.
또 누가 있을까 궁금해져서 챗GPT에게 물어봤습니다. 글렌 굴드를 가장 먼저 뽑고 리히레트와 호로비츠, 루빈스타인, 에밀 길렐스, 아르투르 슈나벨, 아르헤리치 등을 언급하더군요.
솔직히 에밀 길레스는 처음 들어봤습니다. 리히테르와 비슷한 시기 활약한 러시아의 피아니스트더군요. 서방에는 길렐스가 먼저 알려졌는데 그가 "러시아에는 저보다 더 뛰어난 피아니스타가 있다"며 리히테르를 소개해 베일에 싸였던 리히테르가 더욱 전설적 존재로 만들게 해줬다고. 리히테르 역시 길레스를 존경해 그가 앨범을 발표한 곡들에 대해선 "길렐스가 이미 앨범을 냈다"며 앨범 발표를 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BBC가 역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21명을 선정했다는 뉴스가 나오더군요. BBC 음악 담당자들이 직접 선정한 게 아니고 100명의 피아니스트에게 물어서 선정한 것. 1위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생각해보니 그 역시 20세기 중반에 숨졌기에 직접 연주해 발표한 음반이 있네요.
2위는 폴란드 태생으로 미국서 활약한 루빈스타인. 3위는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미국서 활동한 호로비츠, 4위가 리히테르, 5위가 일본 피아니스트 우치다 미츠코였습니다. 슈나벨이 9위, 아르헤리치가 10위, 길렐스가 11위였고 굴드와 아슈케나지는 아예 순위에 없더군요(https://www.classical-music.com/features/artists/best-pianist).
문제는 이런 수위가 여러 차례 발표된 바 있는데 그때마다 순위가 바뀐다는 것. 그럼에도 일천한 제 음반 청취 경험을 기준으로 꼽은 피아니스트들이 전문가들로부터도 인정받는다는 것에 상당한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특히 제가 10여년 부터 애정하게 된 루빈스타인이 그렇게 높게 평가받는 줄은 몰랐네요^^
그 면면을 훑어보다보니 러시아, 우크라이나, 폴란드 등 동유럽 유대인들(아슈케나짐)의 비중이 압도적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리히테르, 루빈스타인, 호로비츠, 길스, 아슈케나지, 루마이아 출신 라두 루푸도 그렇고 아르헤리치는 아르헨티나 국적이지만 스페인계 유대인(세파르딤) 혈통.
근대까지 유대인들은 재산 소유가 힘들었기에 안정적 수입을 보장하는 전문직 종사자가 많았고 피아니스트도 그 중 하나였기에 그렇다죠. 모음 없이 자음으로만 된 히브리어 발음을 기억하기 위해 성경을 통째로 암송하도록 교육받아 암기력이 뛰어나다는 점도 작용했을 겁니다. 리히테르의 경우 모든 연주를 악보를 보지 않고 외워서 했고 한 번에 80여곡의 악보를 꿰고 있을 정도였다죠.
저는 리히테르의 음반을 서른 살 넘어 접했습니다. 그리그와 슈만의 피아노 콘체르트 A단조 녹음 음반. 당시만 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피아니스트였고 아버지가 독일계에서 당시엔 독일식으로 리히터로 발음했죠. 전곡을 완전 장악하고 기막힌 강약 조절을 펼치기에 정말 물 흐르듯 연주한다는 생각에 피아노곡이 듣고 싶을 땐 리히테르의 음반을 최우선으로 듣곤 했습니다. 그래서 제 최애 피아니스트는 여전히 리히테르이고 2순위는 루빈스타인, 3위는 파격의 글렌 굴드입니다.
1순위닌 리히테르의 슈만과 그리그 콘체트토 연주곡들은 너무 길다는 생각에 오늘은 바흐의 평균률곡집 1권 1곡(전주곡과 푸가)를 골라봤습니다. 들어보시면 아주 익숙한 곡이신데 정말 기막힌 강약 조절과 함께 물 흐르듯 연주하는 것이 느껴지시나요?
https://www.youtube.com/watch?v=ObjKZfOJuVw&list=PLX1sI5oZoJ1EOykgJ9_tOtfWsn-018frp&index=1
-2026년 1월 30일(최저기온은 영하 10도로 똑같지만 낮에도 영하 5도 아래의 강추위가 계속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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