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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일기

정치 무관심층보다 고관여층이 더 위험한 이유

드라마 '아들과 딸'의 후남이 아버지 역의 백일섭 [mbc]

 

 

민주주의 위기를 부르는 원인 중 하나로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이 꼽히곤 한다. 우민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10여년 한국정치가 팬클럽 정치화하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고관여층의 폐해가 더 크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우민에게 정치고관여층하면 떠오르는 캐릭터가 있다. 1990년대 중반 김희애 최수종 주연의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백일섭이 연기한 후남이 아버지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금뱃지 한 번 달겠다고 정치권을 계속 기웃거리다 재산을 탕진하고도 "나랏일을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며 술만 취하면 "홍도야 울지 마라, 오빠가 있다"를 부르는 장년 사내.

요즘 정치고관여층은 남녀 불문이다. 뉴스와 종편 정치토크쇼 그리고 정치 유튜버들에 빠져 사는 '여자 백일섭'도 많다. 그분들 레퍼토리 중 하나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당연한 의무다. 오히려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층들이 문제"라는 거다. 자신들의 정치중독을 합리화하기 위한 변명이라고 우민은 생각한다.

정치는 인간활동 중에 가장 수준이 높은 활동이다. 수학 난제를 풀어 필즈상을 받거나 글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받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세상에 난다 긴다 하는 인재들이 정치권에 뛰어들었다가 바보라고 조롱받기 십상인 이유다.

 

한국이 개발도상국 시절엔 사업, 정치, 예술은 발도 디디지 말라고들 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을 수 있다. 단순히 성공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가산을 탕진하고 빚더미에 앉게 될 위험이 높다는 세속적 이해타산의 산물이라는 것이 우민의 생각이다.    

 

하지만 '고르디우스의 매듭' 같은 그 난제를 풀어내면 공동체의 삶을 바꾸고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자신을 희생해 어둠을 밝히겠다는 고귀한 정신의 불나방들이 타죽을 위험에도 정치라는 불꽃 주변을 맴도는 것 아니겠는가.

 

'태극기'니 '개딸들'로 호명되는 오늘날 정치고관여층 역시 그런 '고귀한 정신의 불나방'이라고 볼 수 있을까? 시작은 그럴 수 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서 사업과 예술만큼 금기시되던 정치에 대한 집단무의식적 족쇄가 풀린 이유도 클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금기의 해방감이 점차 정치의 화려한 불꽃놀이에 현혹된 중독증세로 대체된 건 아닐까?

 

정치고관여층의 언행을 관찰해보면 '정치의 본질은 적대에 있다'는 카를 슈미트의 섬뜩한 통찰이 어른거린다. 그들에게 정치는 세상을 적과 아군, 내편과 네편으로 나눠서 바라보는 손쉬운 이분법을 통해 정의를 실현한다는 환상을 안겨주는 건 아닐까? 인공지능이네 핀테크네 복잡다단해지는 현실에서 일도양단의 통쾌한 칼춤을 출 수 있게 해주는 정치의 시바(Shiva)적 속성에 매료됐기 때문 아닐까?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그렇기에 사회와 정치가 중요하다. 인간의 행복이 혼자 잘 먹고 살 사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공존공영이 이뤄질 때 궁극적 행복에 가까워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호모 폴리티쿠스'로 호명한 이유다. 

 

민주국민의 의무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할 때 정치는 그렇게 모두의 공존공영을 위한 것임을 망각해선 안된다. 따라서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해도 되는 것을 정당화해주는  정치의 본질이 될  없다. 이는 비단 자국민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이웃인 북한, 중국, 일본 그리고 캄보디아의 국민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렇게 미움과 분노의 불장난을 마음껏 저질러도 죄책감 들지 않게 하는 걸 민주국민의 의무인양 포장하지 말기를 바란다, 제발!

 

 

-2025년 10월 16일(청명한 가을날씨)

 

 

 

#우민은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인 동시에 '또 하나의 백성(又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붙인 별호입니다. 우민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