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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일기

정의는 복수의 완성이 아니다

프랑스 화가 윌리암아돌프 부게로의 ‘분노의 여신들에게 쫓기는 오레스테스’(1862년). [위키피디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에서 화재가 발생한 직후 국민의힘 장동혁 당대표는 민주당 이재명 정부의 책임이라고 질타하는 성명을 냈다. 우민은 이를 보고 뜨악했다. 아니 불과 몇개월 전까지 국민의힘 윤석열 정부에서 관리하던 기관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인데 제대로 조사도 안 해보고 이재명 정부의 책임이라고 몰아붙여도 되는 걸까?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폭적인 예산 삭감으로 인해 화재 예방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드러났다. 그럼에도 국민의힘 태도엔 변화가 없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폭탄이 터지는 순서에 온 사람이 모든 것을 뒤집어 써야한다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정치인들에게 국가운영의 한 축을 맡겨야 하다니 국민의 속만 터진다.
 
이렇게 일단 조지고 보자는 무책임성은 윤석열 정부의 헛발질로 집권한 이재명 정부의 행태에서도 발견된다. 불법 비상계엄을 시도한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분노에 편승해 마치 혁명에 성공한 점령군이라도 되는 듯 3권 분립의 헌정질서를 흔들어대고 있지 않은가? 검찰개혁이 아니라 검찰청을 없애겠다고 나서고, 사법부 개혁이 아니라 사법부에 대한 입법부 우위를 관철하기 위해 사법부 수장 욕보이기에 떼지어 달려들고 있지 않은가?
 
우민이 만난 한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이 백 번 잘못한 게 맞습니다. 그렇지만 전직 대통령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대통령제를 폐지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왜 윤석열 같은 정치검사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검찰청이 폐지돼야 할까요?"
 
이는 캄보디아에서 조직범죄에 희생된 한국인들이 속출하자 여야 가릴 것 없이 약소국 캄보디아를 미개국 취급하며 함부로 삿대질하다 급기야 전쟁 운운하는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왜 한국에서는 문제가 발생하면 그 원인을 곰곰히 따져보고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보다는 책임져야 할 누군가부터 찾아내 '용서받지 못할 자'라는 낙인을 찍고 분풀이 하듯 떼지어 공격하기에 바쁠까? 
 
정의를 복수의 완성으로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선 아닐까라고 우민은 생각한다. 학폭 피해자가 수십 년 후 학폭 가해자들을 사적 복수로 응징한다는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더 글로리'에 환호하는 이유 아닐까?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에서 기발한 복수의 수법이나 과정만을 기억할 뿐 복수의 완성 후 허무와 파멸이 닥친다는 것은 기억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대중만 탓할 일은 아니다. '에쿠우스'와 '아마데우스'로 유명한 영국 극작가 피터 셰퍼 역시 '고곤의 선물'에서 고대 그리스의 정의가 핏빛 복수를 통해 완성됐건만 현대인들은 문명의 이름으로 그 본질을 망각하고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역시 그리스비극의 본질을 외면한 해석일 뿐이다.
 
 

미국 국적의 화가 존 싱어 사전트의 '분노의 여신들에게 쫓기는 오레스테스(1921) [위키미디아]

 
 
고대 그리스 3대 비극작가로 꼽히는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3부작 '오레스테이아'의 1부와 2부의 선정적 복수만 기억할 뿐 그 딜레마를 해소하는 3부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문 것과 같은 이치다. 1부는 트로이전쟁의 승장 아가멤논이 미케네로 귀국한 첫날 밤 목욕탕에서 그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에 의해 도끼로 살해되는 내용이다. 바란 난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것으로만 비치지만 그 역시 복수의 완성이다. 아가멤논이 그리스연합군의 승리를 위해 두 사람의 맏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시킨 것에 대한 복수였기 때문이다.
 
2부는 아가멤논과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아들이자 이피게네이아의 남동생인 오레스테스가 아비의 복수를 위해 어미와 그의 정부를 살해하는 내용이다. 1부와 2부 모두 표면적으로는 패륜적 범죄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복수의 완성이다. 그런데 왜 정의롭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인가?
 
3부는 바로 그 딜레마의 해소에 집중한다. 어미를 살해한 패륜아를 응징하려는 복수의 여신들(Erinyes)을 피해 도망자 신세가 된 오레스테스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땅인 아테네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이때 아테나는 영미법 재판의 원형이 된 법정을 구성한다. 존경받는 아테네 시민들로 배심원을 구성하고, 복수의 여신들(영어로 Furies)에게 검사 역할을, 제우스의 뜻에 따라 오레스테스에게 복수의 신탁을 내린 장본인이기에 변호사 역할을 맡은 아폴론 신에게 변호사 역할을 맡긴다.
 
태고적 신을 대표하는 밤의 여신의 세 딸들인 퓨리들은 아내가 남편을 죽인 죄보다 아들이 어미를 죽인 패륜이 더 무겁기 때문에 오레스테스의 단죄를 불가피하다고 역설한다. 상대적으로 젊은 올핌푸스 신들을 대표한 아폴론은 일국의 왕과 가장을 살해한 죄가 더 크다는 가부장의 논리로 반박한다. 아네테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의 판결은 동수가 된다. 재판장 역할을 맡은 아테나는 오레스테스의 무죄를 선언한다. 
 
아테나는 어미 없이 아비 제우스의 이마에서 태어난 존재라는 것이 표면적 이유다. 하지만 아테나의 발언들을 음미해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유혈 복수극의 악순환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오늘날 글로벌 스탠다드가 된 법정 시스템을 도입하고 법을 통한 제3자에 의한 정의 실현의 원칙을 확립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응보주의에 입각한 고대의 '렉스 탈리오스(복수법)'에서 사람들을 해방시켜주면서 복수에 눈 먼 야만적 정의를 공동체의 평온과 안식에 초점을 맞춘 문명적 정의로 전환했다는 것이 미국의 정치사상가 마사 누스바움의 해석이다.
 

이탈리아의 로마국립미술관 소장 '잠든 복수의 여신'. 고대 로마시대 조각상으로 추정된다. [위키미디아]

 
이는 이 재판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기피하던 퓨리들이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는 '자비의 여신들(Eumenides)'로 변신하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재판에서 패배한 퓨리들은 원한에 사무쳐 아테네 시민들에게 저주와 재앙을 내리겠노라고 독기어린 말을 내뱉는다. "가련한 우리는 모욕당하여 깊은 원한을 품고 내 심장에서 나오는 복수의 독을 여기 이 나라에 퍼뜨리겠노라"고.  
 
아테나는 그런 퓨리들을 자신이 구축한 새로운 정의의 시스템에 동참하도록 설득한다. "격렬한 분노의 검은 물결을 진정시시키오. 그대들은 이 강력한 나라에서 출산과 성혼에 앞서 온갖 제물을 받으며 존경받게 될 것"이라고. "그대들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망쳐놓는 유혈을 위한 숫돌들을 던지고, 그들이 술도 마시지 않고 미쳐 날뛰는 일이 없게 해주고, 그들의 마음을 싸움닭처럼 부추겨 동족끼리 서로 싸우게 만드는 전쟁의 신이 자리잡지 못하게 해주오. 전쟁은 성밖에 머물지어다. 그곳에서는 무서운 명예욕을 가진 자들을 위한 전쟁이 자주 일어나니까."
 
결국 퓨리들은 아테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분노와 원한, 복수의 여신에서 그들의 축복을 받지 못하면 그 어떤 인간도 행복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을 지닌 자비의 여신으로 변신한다. 피비린내 풍기던 에리니에스(Erinyes)가 축복을 내리는 에우메니데스(Eumenides)로 180도 변신한 것이야말로 야만에서 문명으로의 후천개벽 같은 전환을 상징한다는 것이 누스바움의 해석이다.
 
21세기 한국인들에게 묻고 싶다. 에리니에스가 지배하는 세상을 원하는지 아니면 에우메니데스의 축복이 서린 세상을 원하는지. 복수심에 눈이 멀어 복수가 없으면 정의도 없다고 외치는 이들로 넘쳐난다면 전자의 세상이 열릴 것이다. 반대로 정의란 공동체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인과응보의 복수와 자비로운 용서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 믿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후자의 세상이 열릴 것이다. 아테나 여신이 말했듯이 "선택은 당신들의 몫"이다.
 
-2025년 11월 1일(맑음)

 
 

#우민은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인 동시에 '또 하나의 백성(又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붙인 별호입니다. 우민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