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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일기

이시바 소감 제대로 읽기

. 10월 10일 '전후 80년 소감'을 발표하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AFP연합뉴스]

 

 

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개인적 메시지 형태로 발표된 ‘전후 80년 소감‘에 대해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과 혜안이 엿보이는 일급의 명문이라는 찬사와 한일문제에서 일본 책임에 대해 여전한 인식부족을 드러낸다는 비판이 엇갈린다. 그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우민은 전문을 찬찬히 읽어봤다.

 

자민당 출신 이전 총리의 전후 소감들에 비해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었다. 특히 전쟁을 막지 못한 일본 의회와 언론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한 점은 높이살만 했다.

 

하지만 사회당 출신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의 담화보다 진일보했다고 평가하기는 힘들다는 점에서 역대급이란 찬사 역시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문민이 군부를 통제해야 한다는 ‘문민통제’의 원칙이 메이지유신의 주역이었던 원로(겐로)들이 살아있을 때는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했다는 평가가 그러했다.

 

이시바 총리가 말하는 겐로가 누구인가? 을사늑약 체결을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 러일전쟁의 주역인 야마가타 아리토모, 명성황후 시해의 주범으로 꼽히는 이노우에 가오루, 일본의 조선침략을 암묵적으로 승인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주역인 가쓰라 다로 등이다. 정한론을 통해 일본 군국주의의 씨앗을 뿌린 그들이 오히려 제국주의 팽창을 억제했다는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역사관일 수밖에 없다.

 

이시바의 이러한 역사관은 새롭거나 깊은 통찰이 담긴 게 아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참전하기 전까지 일본은 괜찮은 나라였다는 시바 료타로 식 역사관의 연장선에 있을 뿐이다. 우익에 가까운 아베 신조나 다카이치 사나에의 반동적 역사관보다는 성숙한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일본 군국주의의 근원으로서 정한론의 문제까지 꿰뚫고 있느냐 했을 때 그 한계 또한 명확하다.

 

그렇다고 이시바 소회가 함량미달이라며 무시하거나 평가절하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우민은 생각한다. 일본 보수 정치인이 보여준 품격 있는 자기성찰로서 충분한 격려의 박수를 보낼 필요는 있다. 불행한 과거사에 대한 한일 양국의 견해차를 좁혀가는 데 디딤돌이 될만하다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한국 침략을 정당화하는 우익의 역사관이 아니라면 적대감까지 표현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러나 전적인 동의나 지지의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시바 담화에 대한 화답은 역대급이니 일급이니 하고 호들갑 섞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되서는 안된다고 우민은 생각한다. 일본이 말하는 15년 전쟁(중일전쟁+태평양전쟁) 이전의 일본은 괜찮은 나라였다는 인식의 한계를 점잖게 지적하면서 한국 역시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 부족함은 없었는지를 깊이 있게 성찰하는 대통령이나 총리의 담화를 발표하는 것은 어떨까?

 

국권 상실 과정에서 한국의 잘못 역시 되짚어보면서 한국의 피해를 강조하기 위해 일본을 너무 적대시한 점 또한 없었는지, 국내 정치를 위해 대일관계계를 불필요하게 악화시킨 점은 없었는지를 함께 짚어보는 그런 담화가 발표되는 순간을 우민은 상상해본다.

 

-2025년 10월 15일(흐린 뒤 맑은 가을하늘)

 

 

 

#우민은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인 동시에 '또 하나의 백성(又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붙인 별호입니다. 우민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