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파에 대한 우파의 공포에 기생하는 반지성주의의 이름이 매카시즘(McCarthyism)이다. 반대로 우파에 대한 좌파의 공포에 기생하는 반지성주의의 이름은 홍위병(Red guard)이다.
1950년대 미국 전역에 미국 전역에 광기어린 빨갱이 사냥의 불을 지핀 매카시즘과 196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이란 집단 히스테릭의 전위대였던 홍위병은 오른손잡이냐 왼손잡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 쌍둥이에 가깝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똑같은 논리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짓밟고 능멸하는 것에서 은밀한 쾌감을 느낀다는 점에서 그렇다. 기존 질서와 문명을 파괴하는 것을 즐기는 반지성주의와 반달리즘을 아비로 삼되 그 어미가 우익 파시즘이냐 좌익 스탈린주의냐에 따라 나뉠 뿐이다.
한나 아렌트는 일찍이 이를 간파했다. 그래서 냉전초기였던 1951년에 발표한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우파 전체주의로서 나치주의(파시즘의 사촌)와 좌파 전체주의로 스탈린주의를 함께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전혀 다른 범주의 정치사상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묶었다는 비판을 제기하는 일군의 사람들이 있다. 주로 마르크스주의가 이념이 아니고 과학이라고 믿는 철지난 좌파 이론가들의 주장이다.
이중잣대이자 내로남불이라는 것이 우민의 판단이다. 1950년대 미국의 매커시즘은 맹비난하면서 1960년대 중국의 문화혁명을 찬양하는 그 낯뜨거운 행태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유럽 좌파 지식인 중에서 스탈린주의의 아시아적 변형이던 마오이즘에 심취한 이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6.25전쟁은 북침이며 미국에게 귀책사유가 있다고 주장한 이들이 지금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귀책사유도 우크라이나와 미국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반대로 공산전체주의라는 말로 스탈린주의를 맹공하면서 우익 파쇼 정권을 옹호하는 우파 지식인들 또한 얼마나 부지기수던가? 문화혁명과 홍위병은 맹비판하면서 사실상 매카시즘을 일상화한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반공정권을 찬양하는 것에 대해 인지부조화를 느끼지 못하는 그들을 과연 지식인라고 부를 수 있을까?
메카시즘과 홍의병은 적대적 상대에 대한 공포와 무지를 결합해 집단적 증오를 확대 재생산하는 반지성주의이자 반인간주의라는 괴물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국힘당의 주류를 자처하는 세력이 매카시즘의 광기에 사로잡히는 동안 민주당의 주류세력은 갈수록 홍위병화하고 있다. 우리는 그 비슷한 사태를 1940년대 해방공간에서 경험했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나? 전쟁과 분단 고착 나이었던가?
만일 스스로를 좌파로 생각한다면 홍위병 문화를 정당화하고 있지 않는가를 자문해야 한다. 반대로 스스로를 우파라 생각한다면 매커시즘이 정당했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자문해야 한다. 또 친일 또는 용공이라는 딱지표를 붙여 상대를 악마화하는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는지 성찰할 줄 알아야 한다.
이를 시금석으로 삼는 것을 거부한다면 소속된 진영만 다를 뿐 본질적 차이가 없는 사람들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공동체 건설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에 대반 증오와 분노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엾고 비참한 존재일 뿐이다. 그들의 유일한 위무이자 자존심은 이 한마디로 요약될 뿐이다. "그래도 우리가 너희들보다는 나아."
-2025년 9월 24일(맑고 화창한 가을날씨)
#우민은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인 동시에 '또 하나의 백성(又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붙인 별호입니다. 우민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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