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가 추석 특집으로 편성한 광복 80주년 기념 콘서트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가 최고의 방송 시청률을 기록한 데 이어 유튜브 검색 상위권을 휩쓸었다네요. 그러 그 주옥같은 노래 중에서 어떤 노래가 가장 사랑받고 있을까요?
공연에서 불린 개별 노래의 유튜브 조회수를 살펴보니 '바람의 노래'였습니다. 10일 기준으로 62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네요. '모나리자'(47만회), '킬리만자로의 표범'(40만회), '그 겨울의 찻집'(39만회), '꿈'(38만회)이 그 뒤를 이었구요.
저의 최애곡은 예전에 '그 겨울의 찻집'과 '킬리만자로의 표범'이었습니다. 그러다 10년 전쯤 조용필의 전용 가라오케에서 그가 직접 불러주는 노래에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난 경험을 한 뒤 '바람이 노래'를 가장 좋아하게 됐습니다.
이 노래를 한국인들이 그처럼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요?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을 건드리는 측면이 있어서는 아닐까요?
이 노래의 가사는 짧은 대신 응축적 내용이 담겼습니다. 초반부에서 '바람의 노래'와 '꽃이 지는 이유'가 병렬구조로 등장합니다. 여기서 바람과 꽃은 인간 세계를 굽어보는 대자연을 상징합니다. 지혜롭다고 자부하는 호모 사피엔스임에도 왜 실패와 고난을 비껴갈 수 없을까를 대자연을 대표하는 바람과 꽃에게 묻는 거죠.
그리고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실패와 고난이 곧 삶의 조건이라는 것. 그렇기에 실패와 고난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인간들끼리 사랑하면서 그것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 자신의 내면에서 건져올린 깨달음이지만 질문을 던졋던 바람과 꽃의 응답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바람의 노래'가 된 겁니다.
한국인의 집단무의식 속 바람과 꽃은 유교적 전통 속 바람과 풀에 조응합니다. 군자지덕은 바람이고, 소인지덕은 풀이라는 '논어' 안연 편의 공자말씀(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입니다.
여기서 군자는 공동체를 이끄는 정치적 리더고, 소인은 그 공동체의 구성원인 팔로어입니다. 리더는 공기의 결따라 부는 바람처럼 세상의 이치(도)에 부합해 움직여야 하기에 바람(風) 같아야 합니다. 반면 팔로어인 소인은 바람의 향방에 따라 눕고 일어나는 풀(草)의 지혜를 본받야 한다는 거죠.
여기서 주인공은 풀이 아니라 바람입니다. 하지만 3.1운동과 4.19혁명을 겪으며 한국인 의식 속에서 바람보다 풀의 비중이 커지게 됩니다. 1969년 김수영의 절명시 '풀'은 이를 반영합니다. 민주주의 시대가 군자의 시대가 아니라 소인의 시대임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김수영은 유교 경전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과 함께 미국 시인 휘트먼과 동시대 미국 사상가 에머슨의 책도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유교와 민주주의의 간극을 상징하는 소재로서 ‘풀’을 새롭게 바라보게 됐을 겁니다. 그렇지만 바림이 불어야 풀이 눕는다는 객관적 사실은 바뀌지 않죠. 대신 풀이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더 빨리 울고, 더 빨리 웃고, 더 빨리 일어난다는 역발상을 펼치며 건강한 민중(소인)에 대한 한국적 찬가가 탄생한 것입니다.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는 공자가 강조한 군자지덕과 김수영이 상찬한 소인지덕이 정반합의 통합적 지혜로 벼려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군자지덕과 소인지덕이 공통적으로 공유한 것이 뭘까요? 둘 다 덕이라는 것입니다. 덕은 내 안에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을 말합니다. 그것은 실패와 고난을 필할 수 없는 운명적 존재로서 인간을 넘어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겠네"와 공명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하필 그 제목이 '풀의 노래'가 아니라 '바람의 노래'라는 점입니다. 공자의 표현을 빌리면 군자지덕을 갖춘 지도자의 노래로 풀이될 수 있는 대목. 그에 따르면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겠네"는 현대 민주정 시대의 지도자로서 군자가 주권자인 국민에게 들려줘야 한다는 함의를 갖게 됩니다.
군자지덕의 관점에서 '바람의 노래'를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현대 민주정의 지도자는 바람의 덕을 갖추고자 해도 풀잎이 어느 방향으로 눕고자 하는지 또 언제 일어나려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을 비켜갈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러다 풀잎의 마음을 읽는 방법은 결국 그들을 사랑하는 수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풀잎은 지상에서 가장 볼 품 없는 존재를 상징하나니 그 풀잎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이를 다시 현대적 언어, 김수영의 언어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바람(지도자)은 풀(국민)이 먼저 눕고, 먼저 일어나는 것을 읽어서 그 방향으로 불어갈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풀이 울면 그 울음을 받아주고, 풀이 웃으면 함께 웃어줄 수 있는 바람이 돼야 한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는 국민의 염원이 담긴 '바램의 노래'이기도 한 것입니다.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걸
우린 깨달아야 돼.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https://www.youtube.com/watch?v=IR6vVgvxmWQ&list=RDIR6vVgvxmWQ&start_radio=1
'오늘의 안부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낙엽질 때 당신이 잡을 수 있는 손 (0) | 2025.10.14 |
|---|---|
| 안녕, 우리의 영원한 애니 (0) | 2025.10.12 |
|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 톰 크루즈가 언급된 이유 (8) | 2025.10.09 |
| 푸치니의 라보엠과 김수영의 ‘사랑‘ (0) | 2025.10.08 |
| 날 어둡고 비 내려도 (0) | 2025.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