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갑내기 가수인 이상은을 참 대견하게 여기는 것은 X세대 연예인으론 드물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견지 점입니다. 낭랑 18세 나이에 흥겨운 댄스곡 '담다디'로 강변가요제에 우승하며 깜짝스타가 됐지만 화려한 스타의 길을 단호히 포기하고, 꾸준히 자신만의 노래를 지어 발표하는 싱어송라이터의 길을 택했습니다.
가창력이 아주 뛰어난 것도 아니고 발표한 곡의 수준이 일정하지는 않지만 심금을 울리는 한줌의 노래를 길어올린 음유시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됐습니다. 그중에서도 '언제가는'과 이 노래, '삶은 여행이니까'를 가장 좋아합니다.
'언제가는'이 나얼 등 많은 가수들의 노래로 리메이크된 반면 '삶은 여행이니까'는 그렇지 못하더군요. 그렇기에 더욱 삶을 자신만의 여행으로 가꿔온 뮤지션 이상은의 대표곡으로 자리매김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저는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는 헤켈의 법칙을 떠올리곤 합니다. 과학적 엄밀함이 부족한 법칙이라 생물학계에선 요즘 거의 언명되지 않기는 하죠. 하지만 우리네 삶을 돌이켜보면 선현의 지혜(계통 발생)라는 것을 사람들은 실제 삶을 통해 체현하는 경우(개체 발생)가 많다는 점에서 그 비유적 힘은 여전하지 않나 합니다.
'살은 여행이니까'의 통찰 역시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는 불교적 가르침과 다르지 않습니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졌다가도 다시 만나는 것이 인생이란 그 가르침은 환원적입니다. 이상은은 여기에 '자유'와 '여행'을 접목해 우리네 인생이 선인의 삶을 반복하는 면도 있지만 그 너머로 돌파와 비상할 수 있는 직선적 힘도 간직하고 있다고 노래하는 듯합니다.
삶이란 여행을 통해 너로 대표되는 소중한 과거의 상실을 통해 자유와 성숙이라는 미래를 획득할 수 있다고 말이지요. 그를 통해 개체(개개인)는 강해지고 계통(인류)은 더 진보한다는 깨달음. 검증된 것이라며 선현의 가르침(이념)을 강요하는 게 계통 발전을 가져온다는 평등주의적 삶보다 엎어지고 깨지면서 개체 발생을 되풀이하는 것이 결국 예측불허의 계통 발전을 가져온다는 자유주의적 삶에 대한 찬가라는 것이 제 해석입니다.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소중한 너를 잃는 게 나는 두려웠지/하지만 이제 알아/우리는 자유로이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 걸'이라는 후렴구가 진한 감동을 안겨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강해지지 않으면 더 걸을 수 없으니/수 많은 저 불빛에 하나가 되기 위해 걸어가는 사람들/ 바라봐'라는 후렴구의 마지막 변주가 주는 감동 역시.
P.S. 이상은은 옛 노래도 리메이크해서 많이 부르는데 '개여울'로 유명한 선배가수 정미조의 그림자가 어른거립니다. 뭐, 요즘은 훨씬 더 유명해진 후배 배우인 전혜진을 닮았다는 소리도 많이 듣지 않을까 싶지만^^
의미를 모를 땐 하얀 태양 바라봐
얼었던 영혼이 녹으리
드넓은 이 세상 어디든 평화로이 춤추듯 흘러가는 신비를
오늘은 너와 함께 걸어왔던 길도
하늘 유리 빛으로 반짝여
헤어지고 나 홀로 걷던 길은
인어의 걸음처럼 아렸지만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소중한 너를 잃는 게 나는 두려웠지
하지만 이제 알아
우리는 자유로이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 걸
용서해 용서해 그리고 감사해
시들었던 마음이 꽃피리
드넓은 저 밤하늘 마음속에 품으면
투명한 별들 가득
어제는 날아가버린 새를 그려
새장속에 넣으며 울었지
이젠 나에게 없는걸 아쉬워 하기보다
있는 것들을 안으리
삶은 계속되니까
수많은 풍경 속을 혼자 걸어가는걸 두려워 했을 뿐
하지만 이젠 알아
혼자 비바람 속을 걸어갈 수 있어야 했던 걸
눈물 잉크로 쓴 시, 길을 잃은 멜로디
가슴과 영혼과 마음과 몸이
다 기억하고 있어
이제 다시 일어나 영원을 향한 여행 떠나리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강해지지 않으면 더 걸을 수 없으니
수 많은 저 불빛에 하나가 되기 위해 걸어가는 사람들
바라봐
https://www.youtube.com/watch?v=jeOg6SeGcVg&list=RDjeOg6SeGcVg&start_radio=1
-2025년 8월 26일(맑고 후덥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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