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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안부곡

리스트 '사랑의 꿈'에 대한 단상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위키피디아]

 
 
너무도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흘러나와 식상한 느낌까지 드는 리스트의 피아노곡 '사랑의 꿈(Liebesträume)'의 3번곡입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곡이라 제 음원사이트에서 수많은 연주자들의 연주를 주욱 들어봤습니다.
 
예브게니 키신, 랑랑, 조성진, 다니엘 바렌보임 등의 연주를 쭉 듣다가 "오! 아름답도다, 시간아 멈추어라"라는 말이 절로 나왔던 곡이 폴란드 출신 미국 피아니스트 아르투어 루빈스타인(1887~1982)의 연주곡이었습니다. 역시 20세기를 대표하는 대가의 연주는 다르더군요.

 

오래 전 녹음이라 잡읍도 살짝 섞여들렸지만 음 하나 하나가 제 귀와 마음에 와서 콕콕 박혔습니다. 한 살 차이인 쇼팽(1810년생)과 리스트(1811년생)의 시대를 관통하는 낭만성이 연주 내내 흘러넘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Liebesträume은 원래 독일 시인 루트비히 울란트(Ludwig Uhland)와 페르디난트 프라이리그라트(Ferdinand Freiligrath)의 시에 리스트가 선율을 입혀 만든 3편의 가곡집이었습니다. 그러나 피아노 연주 중심의 야상곡(녹턴)으로 바꿔 발표하면서 더 많은 사랑을 받게됐습니다.
 
1번곡은 울란트의 시 '고귀한 사랑(Hohe Liebe)'에 영감을 받은 곡. 신을 향한 아가페적 사랑을 노래한 작품이라는데 단순한 기품이 느껴지는 아취있는 곡입니다.  2번곡은 사랑하는 사람 품에서 죽음을 맞는 것을 노래한 프라이리그라트의 시 '행복한 죽음(Seliger Tod)'에 곡을 입힌 것입니다. 느리고 잔잔한 선율에서 쇠잔한 숨결 속에 안도와 감사의 눈빛이 오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그리고 문제의 3번곡에서 비로소 감정의 폭풍이 일어납니다. 영롱하면서도 폐부를 찌르는 듯 회한에 가득찬 피아노 선율에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프라이리그라트의 시 '오! 사랑하라, 사랑할 수 있는 한(O lieb, so lang du lieben kannst)'에 영감을 받은 곡입니다.

 

시는 사랑하던 이가 죽었을 때의 지독한 상실감을 환기시키면서 당신에게 마음을 열어주고 사랑해준 사람을 한 시간도 슬프게 놔두지 말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라는 내용. 특히 독한 혀로 마음의 상처를 남기지 말라는 경구가 사무치게 다가섭니다. 
 
이렇게 3편의 곡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 이 야상곡의 전체 제목이 사랑의 꿈인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독일어 sträume에는 누구나 꿈꾸는 상황을 뜻하니 사랑의 가장 이상적 상태라는 의미가 담겼습니다. 따라서 Liebesträume은 '꿈에 그리던 이상적 사랑'이란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신과의 합일을 꿈꾸는 첫번째 곡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서 맞는 죽음이라는 두번째 곡도 그에 근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번째 사랑은 결이 많이 다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비로소 그 진가를 깨닫게 되는 사랑을 과연 이상적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낭만주의적 관점에 서면 달라집니다. 죽음과 밤은 낭만주의에서 찬미의 대상입니다. 햇빛 아래 은폐됐던 것 역시 밤이 찾아들면서 그 정체를 드러내듯 사랑과 진실 또한 생이 끝나고 죽음이 찾아들 때 비로서 그 진가를 드러낸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을 통해 그 진가를 드러내는 사랑이야말로 꿈에 그리던 이상적 사랑의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하지만 거기엔 짙은 회한이 함께 하나니 그 회한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심금 울리는 선율이 Liebesträume을 관통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오! 사랑하라, 사랑할 수 있는 한(O lieb, so lang du lieben kannst)>
 
 


O lieb, solang du lieben kannst!
O lieb, solang du lieben magst!
Die Stunde kommt, die Stunde kommt
Wo du an Gräbern stehst und klagst.

오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할 수 있는 한!
오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하고 싶은 한!
시간이 오리라, 시간이 오리라
그대가 무덤가에 서서 슬퍼할 시간이.

Und sorge, dass dein Herze glüht
Und Liebe hegt und Liebe trägt,
Solang ihm noch ein ander Herz
In Liebe warm entgegenschlägt!

그리고 애써라, 그대의 마음이 타오르도록
그리고 사랑을 품고 또 사랑을 간직하도록
또 다른 마음이 따뜻하게 두근거리는 한
바로 당신을 향한 사랑으로

Und wer dir seine Brust erschließt,
O tu ihm, was du kannst, zulieb'!
Und mach' ihm jede Stunde froh,
Und mach ihm keine Stunde trüb!

그리고 당신에게 마음을 열어주는 사람
오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을 다 해주세요
그리고 그에게 매시간 기쁨을 주세요
그를 한시도 슬프게 놔두지 마세요!

Und hüte deine Zunge wohl,
Bald ist ein böses Wort gesagt!
O Gott, es war nicht bös gemeint, –
Der andre aber geht und klagt.

그리고 그대의 혀를 조심해주세요,
입술에서 해로움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오 하느님, 해를 끼칠 의도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웅크려 슬퍼할 밖에

O lieb', solang du lieben kannst!
O lieb', solang du lieben magst!
Die Stunde kommt, die Stunde kommt,
Wo du an Gräbern stehst und klagst!

오 사랑하라, 사랑할 수 있을 때!
오 사랑하라, 사랑하고 싶을 때!
시간이 오리라, 시간이 오리라,
그대가 무덤가에 서서 슬퍼할 시간이!

 Dann kniest du nieder an der Gruft
Und birgst die Augen, trüb und naß,
– Sie sehn den andern nimmermehr –
Ins lange, feuchte Kirchhofsgras.

그때 그대는 무덤 앞에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당신의 눈은 슬프고 촉촉할 것이고
– 사랑하는 이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니 –
오직 길고 젖은 무덤의 풀 속에 묻힐 것입니다.
 
Und sprichst: O schau' auf mich herab,
Der hier an deinem Grabe weint!
Vergib, daß ich gekränkt dich hab'!
O Gott, es war nicht bös gemeint!

그리고 말하리라: "오, 나를 보세요
여기 그대 무덤 앞에서 울고 있는 자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당신을 상처 입혔으니!
오 하나님, 그것은 악의가 아니었습니다!"
 
Er aber sieht und hört dich nicht,
Kommt nicht, daß du ihn froh umfängst;
Der Mund, der oft dich küßte, spricht
Nie wieder: Ich vergab dir längst!

그러나 그는 당신을 보지도 듣지도 못합니다,
당신이 그를 기쁘게 안아줄 수 없습니다;
당신을 자주 입맞춤하던 그 입은
더이상 말하지 않는구나, "나는 오래전 당신을 용서했다"고.
 
Er tat's, vergab dir lange schon,
Doch manche heiße Träne fiel
Um dich und um dein herbes Wort –
Doch still – er ruht, er ist am Ziel!

그는 이미 오래 전에 당신을 용서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뜨거운 눈물이 흘렀지요
당신과 당신의 차가운 말 때문에 –
하지만 지금은 조용히 최후의 휴식처에서 쉬고 있을 뿐
 
O lieb', solang du lieben kannst!
O lieb', solang du lieben magst!
Die Stunde kommt, die Stunde kommt,
Wo du an Gräbern stehst und klagst!
 
오 사랑하라, 사랑할 수 있을 때!
오 사랑하라, 사랑하고 싶을 때!
시간이 오리라, 시간이 오리라,
그대가 무덤가에 서서 슬퍼할 시간이!

 
 
https://youtu.be/leDuCC_Id70?si=zbGseURlMYCSvxOA

 
 
 
-2025년 8월 22일(뭉게구름 핀 하늘 아래 찌는 듯 더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