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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맥거핀

인생살이의 허수아비에 속지 마세요

[ENA]

 

 

요즘 무슨 드라마 보세요? 장안의 화제인 박해영 작가의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모자무싸)'가 끝나가는데 대신한말한 드라마가 없다는 분들이 많으시네요. 현실에선 벌어지지 않은 만화 같은 얘기나 시청자들 감정 자극에만 초점을 둔 아침드라마 같은 드라마들만 넘쳐나니까요. '모자무싸'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ENA 드라마인 '허수아비'(이지현 극본 박준우 연출)가 제법 볼만합니다.

 

'허수아비'는 두 겹의 이야기를 단단한 새끼줄로 엮어갑니다. 첫번째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같은 1980년대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범죄드라마. 두번째는 서로 다른 이유로 범인을 쫓는 형사 강태주(박해수 분)와 검사 차시영(이희준 분)의 엇갈린 운명을 다룬 휴먼드라마입니다.

 

강태주와 차시영은 술집여자를 엄마로 뒀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고등학교 시절 서로에게 끌려 절친이 됐다가 그런 사실을 먼저 알게 된 시영의 변심으로 앙숙이 됩니다. 르네 지라르가 말한 '짝패'의 전형인 둘은 훌쩍 세월을 뛰어넘어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강성(경기도 화성의 변주)에서 형사와 검사로 다시 만나 함께 범인을 쫓지만 그 '목적'이 다릅니다. 태주는 연쇄살인을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시영은 군장성 출신 국회의원인 아버지의 인정을 받아야 하다는 공명심에...

 

태주에겐 진실이 중요합니다. 계속 등장하는 용의자 중에 진범이 있느냐 아니냐, 추가 희생자가 있느냐 없느야 하는 것들입니다. 반면 시영에겐 '진실처럼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용의자 중에 가장 진범에 가까운 이를 잡아 처넣어 사건을 조기 종결하는 것. 

 

태주가 치밀한 수사로 진범일 것으로 여겼던 이들이 잇따라 무고한 희생자임이 드러납니다. 그로 인해 태주와 가까웠던 이들이 상처받고 하나둘 떠나가고, 태주 홀로 덩그러니 남게 됩니다. 진실을 쫓는 것이 때로는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반면 '진실처럼 보이는 것'만 쫓던 시영은 계속해서 진범을 놓치고 무고한 용의자들만 희생앙 삼아 성공가도를 달립니다. 그 갈목에서 일말의 진심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과거의 잘못에 발목 잡히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가짜를 진짜로 둔갑시키는 연금술사의 길을 걸어가면서 영혼의 허기에 시달리게 됩니다.

 

드라마 제목인 허수아비는 광활한 농경지와 배수로에 숨어있다가 귀가길 여성을 노린 진범이 허수아비 흉내를 내며 사냥감 가까이 접근해 간 것을 지칭합니다. 동시에 태주가 쫓던 진실과 시영이 쫓던 출세라는 것도 우리네 인생살이에선 실체가 아닌 그림자이자 허수아비라는 은유를 담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허수아비가 아닌 진짜배기는 뭘까요? 태주 역의 박해수와 태주의 죽마고우인 여기자 서지원 역의 곽선영이 번갈아 부르는 삽입곡 '잊혀지는 것'에 그 힌트가 숨어있습니다. 이 노래는 참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했는데 뜻밖에 배우답게 가사전달력이 뛰어난 곽선영이 부른 노래가 가장 심금을 울립니다.

 

원곡은 동물원 1집에 수록된 노래죠. 동물원의 리더 김창기가 작사작곡하고 가객 김광석이 불렀습니다. '사랑이라 말하며 모든 것을 이해하는 듯/ 뜻모를 아름다운 이야기로 속삭이던 우리'가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사랑과 꿈이 깨지고 홀로 남은 뒤 저마다의 어리석음을 자책하는 내용.

 

자, 이제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진짜배기가 뭔지 아시겠나요? 뜻모를 이야기를 주절주절하며 먼 곳에서 꿈과 이상을 찾기보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부터 챙기는 것, 그들의 설움과 아픔에 공감하고 품어주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아닐까요?

 

 

사랑이라 말하며 모든 것을 이해하는 듯

뜻모를 아름다운 이야기로 속삭이던 우리

황금빛 물결 속에 부드러운 미풍을 타고서

손에 잡힐 것만 같던 내일을 향해 항해했었지

 

눈부신 햇살 아래 이름모를 풀잎들처럼

서로의 투명하던 눈길 속에 만족하던 우리

시간은 흘러가고 꿈은 소리없이 깨어져

서로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멀어져 갔지

 

우~ 그리움으로 잊혀지지 않던 모습

우~ 이제는 기억 속에 사라져가고

사랑의 아픔도 시간 속에 잊혀져

긴 침묵으로 잠들어가지

 

사랑이라 말하면 더욱 깊은 상처를 남기고

길 잃은 아이처럼 울먹이며 돌아선 우리

차가운 눈길 속에 홀로 서는 것을 배우며

마지막 안녕이란 말도 없이 떠나갔었지

 

숨가쁜 생활 속에 태엽이 감긴 장난감처럼

무감한 발걸음에 만족하며 살아가던 우리

시간은 흘러가고 꿈은 소리 없이 깨어져

이제는 소식마저 알수 없는 타인이 됐지

 

우~ 그리움으로 잊혀지지 않던 모습

우~ 이제는 기억 속에 사라져가고

사랑의 아픔도 시간 속에 잊혀져

긴 침묵으로 잠들어가지

긴 침묵으로 잠들어가지

 

https://www.youtube.com/watch?v=FzbCiko77P0&list=RDFzbCiko77P0&start_radio=1

 

 

-2026년 5월 24일(맑고 더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