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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맥거핀

'박해영의 페르소나가 박해준'이라는 해석이 근사한 이유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서 황진만 역을 맡은 박해준 배우. [jtbc]

 
 
"인생의 목적이 뭐야?"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모자무싸)에서 주인공 황동만(구교환 분)의 형이자 시인인 황진만이 레퍼토리와 같은 질문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질문은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에게 하나하나 돌려줄 수 있습니다.
 
그 질문을 처음 받은 변은아(고윤정 분)의 답. "힘있는 엄마요. 돈 있고 빽 있어서 힘있는 것 말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고요한 중심에 서있는,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도 안심하게 해주는 그런 엄마, 그런 여자가 될 거에요." 아홉살 때 엄마에게 버려진 뒤 '자폭하고 싶은' 감정을 끌어안고 살아야 했던 '팔없는 아이'다움 답이었습니다. 
 
'모자무싸'의 돈키호테 황동만은 어땠나요? 처음엔 "조금이라도 덜 쪽팔리는 인간 되는 거"라고 답합니다.  영화감독지망생으로 20년을 허송세월했다는 열등감의 화신다운 답이었죠. 하지만 정작 감독 데뷔하게 될 무렵 바뀝니다. "나는 그냥 웃기게 살거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좌충우돌해온 자신의 코믹한 삶 자체에서 스토리를 건져올리는 황동만 자신에 대한 자아성찰의 산물입니다.
 
자, 이제 그 질문을 황진만에게 부메랑처럼 되돌려보내 볼까요? 진만 인생의 목적은 뭘까요? 누군가에게 자랑하고픈 글을 쓰는 좋은 시인이 되는 거? 번다한 마음을 붙잡는 좋은 용접공이 되는 거? 천방지축 행동하는 인간, 황동만에 대한 황진만의 충고에 답이 담겼습니다. "인간이 영어로 뭐야? 휴먼빙, 휴먼두잉 아니라 휴먼빙. 이리갔다 저리갔다 두잉하지 말고 빙, 그냥 가만히!"
 
황동만이 돈키호테형 인간이라면 황진만은 햄릿형 인간입니다. 다시 말하면 동만이 휴먼두잉이라면 진만은 휴먼빙인 겁니다. 헌데 진만에게 가장 힘든 게 바로 그겁니다. 가만히 존재하는 것.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딸, 그래서 변은아처럼 '팔없는 아이' 신세가 된 영실이를 찾아야 하는데 번뜩 떠오른 시구를 잊지않으려고 종이에 끄적이는 속물스러운 자신을 견딜 수 없어서 술만 마시다 어느날 불쑥 세상과 하직하려는 사람. 따라서 그의 인생의 목적은 영실이를 찾을 때까지 '가만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jtbc]

 
 
 
인생의 목적을 현학적으로 표현한 것이 '존재이유(프랑스어로  raison d'etre)'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뭐야'라는 질문을 바꿔 말하면 '존재이유가 뭐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질문을 존재이유로 바뀌는 순간 흥미로운 의미전환이 발생합니다. '모자무싸'라는 드라마에서 황진만의 존재이유는 뭘까요?
 
황진만은 황동만과 그 욕망의 짝패인 박경세(오정세 분)를 포함한 8인회는 물론 변은아, 오정희(배종옥 분), 장미란(한선화 분), 노강식(성동일 분) 의 대척점에 위치합니다. 살아있는 한 스토리를 쓰지 않고 못견디는 사람들(제가 '호모 세헤라자드'라고 부르는 사람들)이죠.
 
그들에 대해 황진만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껏해야 100년, 100년이면 다 사라지는데 사라지는 것이 진정 존재했던 건가, 그런 의문을 잠재우기 위해 정신없이 스토리를 써대는" 광대 같은 존재라고. 광대는 광대다워야하나니 "살아있는 한 스토리를 써야한다면 웃기게 살겠다고 답한 동만에게 진만이 "통과"를 외치게 만든 이유입니다.
 
드라마 속에서 황진만에게 어머무시한 존재감이 부여된 이유입니다. 극중 8인회의 둥지인 '아지트'에 황진만이 등장하면 모두가 아연 긴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황진만은 '모자무싸'라는 드라마의 조물주라 할 수 있는 박해영 작가 자신과 대적해 싸우는 존재입니다.
 
'모자무싸'의 세계관을 붕괴시킬 수 있는 괴력을 갖춘 어벤저스 시리즈의 타노스 같은 캐릭터. 아니면 그 세계관의 허점과 비밀을 꿰뚫고 있는 매트릭스 시리즈의 키메이커에 해당하는 캐릭터. 변은아와 달리 동만이 자신의 영혼을 뒤흔드는 불안의 원천이 형 진만임을 끝까지 밝히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숨어있지 않을까요? 황진만의 진짜 존재이유입니다.
 
흥미롭게도 황진만 역을 맡은 박해준 배우는 '나의 아저씨'(2018)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주인공 박동훈(이선균 분)의 절친이지만 세속의 연을 끊고 갑작스럽게 출가해 승려가 된 겸덕 역입니다. 박해준 배우에게 삭발까지 감행하게 만들었던 겸덕은 '나의 아저씨'의 주인공 동훈이 맡았던 '세상 가장 불쌍한 존재'를 뒤집어 버리는 인물입니다. 
 
중년에 인생의 온갖 쓴맛을 맛보고 비극의 주인공인양 하던 동훈에게 "너만 비극의 주인공양 엄살 떨지 말라"고 죽비를 내려치는 존재. "이번 생은 망했어"라며 자기연민에 푹 빠진 동훈에게 "다른 사람 핑계대지 말고 너 자신의 감정을 온전 응시하라"고 거울을 들이미는 인물이죠.
 
승려 겸덕과 시인 진만은 모두 방외자라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겸덕의 대사에서처럼 "내심외경(內心外境), 내 속에 있는 것을 밖에서 본다"를 드라마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구현해내는 존재입니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어떤 것도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고, 해 아래에 새로운 것이 없다"라는 히브리성경(구약) 전도서 편을 옲조리며 박해영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계관의 허구성 내지 개연성 없음을 언제든 폭로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존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아저씨'에서 겨덕 역을 맡은 박해준 배우. [tvN]

 
 
그럼 박해영 작가는 왜 겸덕이나 그보다 더 진화한 황진만 같은 캐릭터를 자신의 작품 속에 끌어들였을까요? 드라마를 써내려가는 동안 작가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존재가 필요해서 아니었을까요? "이 드라마에서 저 캐릭터의 존재이유가 뭐야? 저 인물을 등장시킨 목적이 뭔데?" 같은 잽을 날리다 "그래서 진짜 묵직한 한 방을 날릴 순 있고?"라는 스트레이트를 꽂아 넣는 존재를 아예 작품 안에 배치시킨 것 아닐까요? 
 
발칙한 상상을 하나 더 얹어봅니다. 박해영 작가는 '또! 오해영'을 발표한 2016년 부군을 사고사로 잃었고 부군이 살아있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라는 생각이 '나의 아저씨'의 집필 동기 중 하나가 됐다고 하죠? 겸덕과 진만이야말로 그 부군의 페르소나 아닐까요? 
 
작가의 작품세계의 내밀한 비밀을 꿰뚫고 있기에 언제든 그 세계를 붕괴시킬 수도 있고, 심지어 훌쩍 떠나갈 수도 있지만 그저 '가만히 존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존재. 드라마 속에서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는 주인공들을 저 멀리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이 작품 안에서 너의 존재이유가 뭐야?"라고 질문을 던지다 마지못해 "통과!"를 외쳐주는 존재.
 
박해영 작가와 고인이 됐지만 여전히 그 작품세계의 야당 역할을 하는 부군의 관계를 우리는 '모자무싸'의 다른 커플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황동만의 영혼의 짝패이자 세상 모든 찌질함을 모아둔 것 같은 박경세 감독과 그와 정반대로 쿨하기 짝이 없으면서 그가 쓴 대본에 대한  최종 심판자 역할을 맡은 고박필름의 고혜진 대표(강말금 분)입니다. 박경세-고혜진은 남녀가 바뀌었을 뿐 박해영과 고인이 된 그 부군 관계의 유쾌한 변주 아닐까요?
 
'모자무싸'의 열혈팬들이 박해영 작가의 페르소나로 박해준 배우를 꼽는 것은 근사(近似)한 해석입니다. 근사하다는 것은 진짜배기에 가깝다, 그래서 그럴 듯하고 멋지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 해석은 근사하긴 해도 정곡을 찌른 해석은 아닙니다.
 
페르소나(Persona)는 고대 그리스비극에서 배우들이 여러 캐릭터를 연기할 때 쓰는 가면을 뜻하는 헬라어(고대 그리스어) 프로소폰(Prosopon)에 해당하는 라틴어입니다. 따라서 박해준이 박해영의 페르소나라고 한다면 그 가면 뒤에 숨은 존재가 박해영이여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봤듯이 박해준 뒤에 숨은 이는 박해영 작가가 아니라 그의 돌아가신 부군이라고 봐야 합니다. 어쩌면 그렇기에 박해준은 박해영의 페르소나 그 이상으로 애틋한 배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