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안성기하면 제 기억 속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입니다. 황신혜의 영화데뷔작이자 배창호 이명세가 함께 대본을 쓴 새로운 한국적 멜로영화였죠. 재즈연주자였던 이봉조 씨가 음악을 맡았는데 영화 내내 다양한 악기로 연주되던 선율이 하나 흘렀습니다. 19세기초 이탈리아 작곡가 엔니코 토셀리가 작곡한 세레나데입니다.
원래는 성악곡으로 많이 불리던 노래죠. 영화 속에선 노래로 불리기보다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색소폰, 마림바 등 다양한 악기로 주로 선율로 연주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중에서도 앨토 색소폰 아니면 트럼펫으로 추정되는 관악기 연주의 선율이 참 인상적이었죠. 여러 음원사이트를 뒤져봤는데 OST는 물론 이봉조 씨의 연주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성악 버전이나 클래식 버전은 많아도 관악기 버전은 드물더군요.그나마 프랑스 출신 트럼펫연주자인 기 바르데(Guy Bardet)의 트럼펫 연주가 가장 비슷하다는 생각에 링크해봅니다.
토셀리의 세레나데로 불리는 이 세레나데는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사랑을 고백하는 세레나데는 보통 희망찬 장조 곡이 많은데 이 곡은 서늘한 슬픔이 깔린 단조곡입니다. 분명 달콤한 사랑에 달뜨긴 해지만 그 애정고백이 좌절할 것임을 예감이라도 하는 듯한 짝사랑의 애절함이 흐릅니다. 이 곡은 이탈리아어로 'Serenata rimpianto'로도 불리는 이유입니다. 후회와 탄식의 세레나데라는 뜻이죠.
이는 영화 내용과 기막히게 공명합니다. 안성기가 연기한 김영민은 바보 같은 순애보의 주인공이죠. 대학 내내 짝사랑만 하던 연극배우 지망생 주혜린(황신혜 분)에게 겨우 용기를 내 고백하지만 바로 차입니다. 혜린에게는 브로드웨이 진출이라는 그녀의 꿈을 이뤄주겠다고 약속한 미국 교포 약혼자가 있었으니까요. 결국 사랑을 접고 무역상사에 취업한 영민은 상사병에 걸린 듯 살아가다 3년 뒤 결혼에 실패하고 몰래 한국에 들어와 번역일을 하는 혜린을 만난 뒤 다시 필사적인 구애를 펼칩니다. 이번엔 성공할까요?
제게 배우 안성기는 바보 같은 순애보의 주인공인 영민과 같은 사람입니다. 한국영화의 전성기이던 1960년대는 물론 스크린 위로 온갖 욕망이 투사되던 1980년대에도 찾기 힘든 캐릭터죠. 자신의 욕망실현을 위해 비정하리만치 위악적이었던 그들과 달리 누구도 해치지 않는 무해한 존재. 하지만 원하는 것을 위해선 진심과 전력을 다하고 그것이 결국 좌절과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원망하기보다는 감내하는 소시민.
그처럼 안성기는 1980년대 한국사회를 짓눌렸던 인물의 대척점에 선 존재였습니다. 김영민과 반대로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라면 염치고 인륜이고 무참히 짓발을 수 있는 전두환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적 욕망의 화신. 보통 그런 전두환에 반대되는 인물하면 학생운동에 선두에 섰던 민주투사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여실히 드러났듯이 그들 역시 '대를 위해 소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절대반지의 유혹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존재죠. 그들 중 상당수는 정치적으로 또 군사적으로 전두환의 대척점에 서있다고 믿은 김일성에게 투항하기를 주저하지 않은 이들이니까요.
그런 운동권 학생들과 차별화되는 영민의 그런 순수함을 상징하는 것이 넥타이를 맨 양복차림입니다. 대학생 때도 혜린에게 프로포즈 할 때도 아버지의 양복을 빌려 입고 나타난 영민은 이후에도 중요한 순간마다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으로 등장합니다. 심지어 결혼 첫날밤에도 샤워를 한 뒤 욕실에서 양복 정장을 차려 입고 나타나는가 하면 덕수궁 석조전 앞 벤치에 딸과 단 둘이 소풍온 엔딩장면에서도 넥타이를 매고 있습니다.
'기쁜 우리 젊은날'은 1987년 5월에 개봉했습니다. 그리고 한달 뒤인 1987년 6월 대한민국에서 '넥타이 부대'의 반란이 발생합니다. 독재정권에 순응하는 존재로만 기억됐던 넥타이맨들이 '호헌철폐 직선쟁취'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졌고 26년간 이어진 군부독재의 숨통을 끊어놓게 됩니다.
물론 영화에선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언급은 일절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김영민으로 상징되는 그 바보 같은 순수함 역시 '넥타이 부대'를 움직이게 만든 무의식적 원동력의 하나가 됐다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생명을 바쳐야 하는 사랑이라면 거절하겠지만 영혼을 바쳐야 하는 사랑이라면 받아들이겠다'고 한 주혜린의 극중극 대사가 환기하는 한국적 소시민의 순수함이 스크린 밖의 비루한 현실을 만났을 때 정치적 스파크로 점화될 것임을 예고했다고.
연기력이나 카리스마가 살짝 부족해 보이는 안성기가 왜 한국의 국민배우가 됐냐고 묻는다면 여기서 그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야만의 시대로 불리는 1980년대 그리고 신자유주의 광풍이 불던 1990년대 한국인들의 무의식에 꽁꼼 숨어있던 바보 같을 정도로 순수한 영혼을 스크린 상에 투여한 존재가 바로 안성기였기 때문이라고. 1987년 민주화 이후 왜 수많은 대중정치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 안성기를 호명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구체적 저항의 시구가 거의 없이 순수함을 노래한 윤동주가 일제 저항 문인의 아이콘이 됐듯이.
사실 배우로서 안성기는 한계를 지닌 배우입니다. 대사 전달력이 떨어지는 불안한 발성과 유약해 보이는 이미지 때문입니다. 그 역시를 이를 잘 알지 않았을까 합니다. 연극무대에 서거나 TV드라마에 출연한 적 없이 오직 170편이 넘는 영화에만 집중했으니까요. 스크린이 펼치는 환상공간에 있을 때 백지 상태에 가까운 자신을 가장 빛나게 해주는 매체가 영화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았아기에 그랬을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영민에게 연극과 혜린이 그렇듯 안성기에게는 영화가 순정의 대상임을. 말년에 암과 투병 중이던 그가 배창호 감독 데뷔 4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영화는 나의 모든 것"이라 고백한 것이 결코 진부한 클리셰로 들리지 않은 이유입니다.
영화 속 영민의 대사 중에는 산부인과 의사 앞에서 자신이 아빠가 되기 위한 만반의 자세를 갖췄다면서 "저는 술담배를 하지 않습니다"라는 게 있습니다. 실제 안성기는 자기관리를 위해 술담배도 거의 안하는 것으로 유명했죠. 그 역시 자신이 순정을 바친 영화를 위해 진심과 전력을 다하기 위함 아니었을까요? 그런 안성기를 추모함에 있어서 '제 곡조를 이기지 못하는 사랑노래'로서 토셀리의 세레나데가 너무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지 않으시나요?
https://www.youtube.com/watch?v=vhEAT48-lso&list=RDvhEAT48-lso&start_radio=1
-2025년 1월 6일(잠시 따뜻해졌던 날씨가 다시 영하 8도로 내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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