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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안부곡

2025년을 보내며 떠오른 키워드 '제자리'

 

 

2025년을 돌아보면서 떠오른 단어가 '제자리'입니다. 지난 1년간 뭘 했나 생각해보니 옴싹달싹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오지 않았나 합니다. 올해는 꼭 '공화주의자 공자'를 책으로 펴내자 했는데 아직도 제자리입니다. 4년간 생활비 보태기 위해 하던 외신 번역일도 7월에 그만뒀으니 기자직 그만뒀을 때 제자리로 돌아간 기분입니다. 그 뒤 6개월 간 블로그 글로 수익을 발생시켜 보려했는데 그 역시 답답한 제자리구요.

 

지난 한 해 대한민국의 키워드도 '제자리' 아니었을까 합니다. 지난해 12월 3일 발생한 '윤석열의 난'으로 몰아닥친 정치, 경제, 사회적 혼란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국가적 분투를 벌여야 했던 한 해였으니까요. 물론 그 와중에 20%가 넘는 국민들은 여전히 12월 3일 이전의 정치적 입장을 고수하며 제자리를 지키고 계신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최근 논란이 된 두 명의 여야 정치인의 오늘 행보를 보면서도 '제자리'라는 키워드가 떠올랐습니다. 국민의힘 소속 보수정치인으로 윤어게인을 외치다 이재명 정부의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발탁된 이혜훈 전 의원과 그 반대편에 위치했다고 할 수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김병기 원내대표입니다. 

 

이혜훈 전 의원은 제자리 지키기에 급급한 국민의힘 정치인들과 달리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경우 아닐까 합니다. 그는 오늘 "내란은 헌정사에 있어서는 안 될 분명히 잘못된 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불법적 행위"라며 "당파성에 매몰돼 사안의 본질과 국가 공동체가 처한 위기의 실체를 놓쳤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고 과거 자신의 처신을 분명하게 사과했습니다. 출세를 위해 지조를 버렸다고 보는 분들도 많지만 저는 잘못을 깨달으면 바로잡기를 꺼리지 말라는 물탄개과(勿憚改過)의 실천으로 보고 싶습니다. 

 

반면 김병기 의원은 자신과 가족의 온갖 갑질 의혹을 전직 보좌진의 조작된 음해라고 부인하다가 결국 오늘 원내대표직을 내놓고 물러났습니다. '윤석열의 난'의 반동으로 별의 순간을 맞는가 했지만 제자리 지키기에만 급급하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밀려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윤석열에 반대한다는 기치만 지키고 있을 뿐 '군자는 표범이 털갈이하듯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사람이 되야 한다'는 군자표변(君子豹變)을 실천하지 못한 대가 아닐까요?

 

그래서 오늘의 안부곡으로 '우리들의 발라드'로 깜짝 스타 반열에 오른 천범석이 부른 '제자리'를 골라봤습니다. 원곡은 '우리들의 발라드' 고정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가수 정승환의 노래죠. 연인과 이별한 뒤 그 빈 자리에 대한 상실감으로 제자리를 맴도는 애절한 마음을 노래한 곡입니다.

 

사랑도 이별도 사람의 일. 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한다지만 막상 닥치면 어쩔 줄 모르는 게 또 인지상정이죠. 아무리 그래도 제자리에 고여 있는 것 또한 사람이 해서는 안될 일. 그렇기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는 만해의 시구가 사무치게 다가섭니다. 2026년 병오년은 저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국가적으로도 제자리를 벗어나 조금이라도 진일보하는 한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봅니다.

 

 

뒤척이며 잠에서 깨어
또 나지막이 너를 불러도
반복되는 이 하루 속에서
너는 없은 지 오래됐구나

 

한참을 욕조 안에 앉아
구부정한 내 등 언저리
네 손이 닿던 따스했던
영원 같던 시간들은 다

 

이제는 닦아내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넌 보란 듯이 살아갈 텐데
난 어디쯤에 멈춰버린 기차처럼

 

녹슨 레일을 바라보다가
앞으로 달려보려 애써도
자석처럼 달라붙어 있어
난 어디도 갈 수 없고
여기 그 자리

 

(지저분해진 컵을 씻다가
이 그림이 재밌다 했잖아
우리 나눠 먹던 컵 안에는
몇 번의 물이 찼을까)

 

이제는 비워졌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넌 보란 듯이 살아갈 텐데
난 어디쯤에 버려진
신발짝처럼

 

한쪽이 없인 의미 없잖아
닳아진 굽을 감싸 쥐고서
두 발이 스친 길에 떨어져
난 어디도 갈 수 없고

여기 그 자리

 

난 어디도 갈 수 없고
여기 그 자리

 

 

https://www.youtube.com/watch?v=1lvt2aM6hEA&list=RD1lvt2aM6hEA&start_radio=1

 

 

 

 

-2025년 12월 30일(다시 춥고 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