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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안부곡

개과 은중과 고양이과 상연을 보며

 

출처 tvN

 

 

은중은 살짝 나대지만 받은 많큼의 사랑은 꼭 돌려줘야 하는 개과다. 상연은 선망어린 시선을 많이 받지만 도도하고 그래서 외로운 고양이과다. 은중은 F다. 상연은 T다. 은중은 문과다. 상연은 당연히 이과다. 은중은 아마도 O형일거다. 상연은 B형일 거고.

 

요즘 보고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송헤진 작 조영민 연출)은 이렇게 대조적인 두 여성의 애증이 교차하며 얽히고설킨 사연을 솜씨 좋게 풀어냅니다. 극중 드라마작가인 은중(김고은 분)은 초등학생 때부터 얽히고섥힌 남다른 인연을 드라마로 쓰라는 말에 "사건이랄 만한 게 없어서 안된다"라며 고개를 젓습니다. 여성들 사이의 라이벌 의식을 드라마를 식상하다고 여기는 제 생각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1,2회만 보다 말지 않을까 했는데 은중의 저 대사에 회가 동했고, 기막힌 극작술에 전체 15회 중 벌써 10회까지 보고 말았습니다. 은중의 말은 완전 뻥입니다. 아니 낚시용 미끼입니다. 둘 사이엔 엄청나게 많은 사건들이 펼쳐집니다. 그 사건의 의미를 뒤늦게 발견해서 그렇지.  

 

대조적 성격의 두 여성이 티격태격하다가 우정을 쌓아가는 여성 버디 드라마도 알고보면 흔합니다. 그래서 식상합니다. '델마와 루이스', '바그다드 카페', '캐롤' 처럼 오래 기억되는 명작도 있죠. 한국 작품 중에선 주찬옥-황인뢰 콤비의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와 일란성 쌍둥이인 미래와 미지의 버디드라마였던  '미지의 서울'이 떠오릅니다. 화제작이었던 'SKY 캐슬'이나 '펜트하우스'의 경우는 질투심이 촉발한 라이벌 의식만 강조된 작품이었죠. 그런 점에서 '미지의 서울'에 이어 '은중과 상연'까지 올해는 오래동안 기억될 여성 버디 드라마가 많이 나온 해로 기억될 거 같습니다.

 

 

은중 역의 김고은(왼쪽)과 상연 역의 박지현. 출처 tvN

 

 

내러티브를 끌고가는 사람은 은중이지만 사실 극적인 사연의 대부분은 상연(박지현 분)에 의해 발생합니다. 물질적 부족함없는 가정에서 태어나 공부건 달리기이건 춤이건 못하는 게 없는 공주과의 여성. 그러다 비극적 가족사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가 기적처럼 재기해 눈부신 성공가도를 달립니다.

 

은중은 그런 상연을 보면서 족탈불급이라 느낍니다. 라이벌 의식조차 없었죠. 하지만 결정적 순간마다 상연은 "난 결코 널 이길 수 없어"라는 말로 은중을 자극합니다. 그렇게 서로를 의식하며 살아가다 결국 엇비슷한 인생행로를 걸으며 철천지 원수가 됩니다. 불혹의 나이에 해후한 둘은 비로소 깨닫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그 '존재의 의미'를.

 

그런 점에서 은중과 상연은 미지와 마래처럼 거울 이미지의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반으로 갈라놓을 듯 대조적인 데칼코마니형의 사람이 과연 현실에 얼마나 존재할까요? 그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아내를 쳐다봤습니다. 은중일까, 상연일까?

 

아내는 앞가림 심한 B형이고 T형의 이과입니다. 입다물고 있으면 살짝 차가워보이는 고양이과 여성처럼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깊이 사귀어보면 개그우먼처럼 남 흉내도 잘내고 정많은 의리파이기도 합니다. 친하다 싶은 사람에겐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나대기도 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자라 상연처럼 꼬인 구석도 없습니다.  

 

의아한 눈빛을 보내는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개과야? 고양이과야?" 아내가 피식 웃으며 답합니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지."

 

그렇습니다. 겉만 보고 어떤 사람들을 쉬이 판단해선 안됩니다. 개과로 보이는 여성 안에도 외로운 고양이가 숨어있고, 고양이과로 보이는 여서의 내면에도 사랑받고픈 갈증이 있기 마련입니다. 어떤 과의 사람이냐를 분류하는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그 안에 숨어있는 다른 면모를 바라봐주고 끌어내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은중과 상연'의 오프닝곡과 엔딩곡은 여러 노래가 번갈아 나옵니다. 오프닝곡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 노래가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최유리가 부른 'Reason'입니다.

 

접점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을 서로 얽히고 섥히게 만들어 원치 않는 마리오네트(인형)놀이를 하게 만든 '운명의 장난기'가 느껴지는 곡입니다. 드라마로서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무질서와 혼란을 초래하는 트릭스터(trickster)의 기운이 물씬했던 김고은의 전작 '작은 아씨들'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가사를 음미해보면 그 운명의 장난을 어떻게서든 이겨내고 '존재의 이유'를 주체적으로 끌어내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나 봅니다.

 

 

I’m walking somewhere I don’t know

As if there’s nothing I can say for sure

There’s no time for me to think of it

It feels like I’m being led by something

To the unknown

 

난 모르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생각할 시간조차 없어

뭔가에 이끌리는 기분이야

알 수 없는 곳으로

 

I’m taking every breath I can

While I’m walking that endless path

Even if I want to stop midway

I’d rather be tired all the way

To the unknown

 

난 최대한 숨을 들이쉬며

끝없는 길을 걸고 있어

설사 중간에 멈추고 싶더라도

지쳐나가 떨어지더라도 끝까지 갈거야

알 수 없는 그 곳으로

 

All of those warm voices are waking me up

I think I know where I need to go towards to

I cried again and again in those moments that felt true

I’d like to go and run for me and myself

 

따뜻한 목소리들이 나를 깨우고 있어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이제는 알 것 같아

나는 울고 또 울었지, 진실처럼 느껴졌던 그 순간들 속에서

나 자신을 위해 달려가고 싶어

 

I want to tell you the reasons

why I’m happy and why I let my

tears flow away

 

나는 너에게 그 이유들을 들려주고 싶어

내가 행복한 이유와

눈물을 흘리게 된 이유를

 

I will tell you why

 

그 이유를 들려줄게

 

 

 

https://youtu.be/jKYtdYO0_sc?si=jBUePNaENyMoc4o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