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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안부곡

가을의 노래, '사라져가는 것들'

에곤 실레의 '시인'(1911) [오스트리아 레오폴트 미술관 소장]

 

 

귀뚜라미는 진즉부터 울어댔지만 밤공기가 창문을 닫아야 할만큼 차갑게 느껴진 것은 어제밤부터였습니다. 오늘 낮 시내에 나갈 일이 있었는데 처음으로 긴 팔 옷과 긴 바지를 꺼내 입었습니다. 가을입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는데 저에겐 무수한 상념이 열매 맺는 계절입니다. 삼십대 제 18번이 '가을우체국 앞에서'였던 이유였습니다. 깊은 상념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다는 게 바로 제 얘기였으니까요.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 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 그것들을 떠올리는 계절이 하필이면 노오란 나뭇잎들이 바람에 날려가는 계절인 이유가 뭘까요?

 

젊은날 날 저물도록 빠져들었던 상념이 뭐였는지, 지금은 너무도 빛이 바래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요즘 떠오르는 상념은 이 노랫말 그대로입니다. 온통 사라져가고. 무너져가고, 흩어져가는 것들에 대한 것들 뿐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 간 것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니 아무리 생각해봤자 소용없다는 말이 진리라 굳게 믿고 살았습니다. 머리가 희끗해지면서 그런 믿음조차 부질없음을 깨닫습니다.

 

김현승 시 '가을의 기도'의 그 시구의 의미를 이제야 절실히 체감할 뿐입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한때 나를 사랑했던 것들과

한때 나를 지켜주던 눈빛이

한때 나를 덥혀주던 온기와

한때 나를 보살피던 그 집이

 

사라져가는 것들이 되어

무너져가는 꿈들이 되어

흩어져가는 우주의 저 먼지들처럼

다시 만날 수가 없다네

 

한때 나를 감싸주던 공기와

한때 나를 웃게하던 웃음이

한때 나름 절실했던 마음과

한때 나름 소중했던 것들이

 

사라져가는 것들이 되어

무너져가는 꿈들이 되어

흩어져가는 우주의 저 먼지들처럼

다시 만날 수가 없다네

 

사라져가는 것들이 되어

무너져가는 꿈들이 되어

흩어져가는 우리의 발자취를 기억하네

 

한때 나를 사랑했던 것들과

한때 나를 지켜주던 눈빛과

한때 나를 덥혀주던 온기와

한때 나를 보살피던 그 집이

 

사라져가는 것들이 되어

무너져가는 꿈들이 되어

흩어져가는 우리들의

저 아픔들마저 희미하게 사라져가길

 

https://www.youtube.com/watch?v=Kfir1Ylh19U&list=RDKfir1Ylh19U&start_radi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