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의 완성도와 별개로 가장 히트곡을 많이 배출한 오페라가 뭘까요? 제가 본 작품 중에 고르라면 푸치니의 '라보엠'과 비제의 '카르멘' 아닐까합니다. 공연을 보는 내내 기막힌 선율의 노래들이 줄줄이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라보엠은 1896년 푸치니가 38세일 때, 카르멘은 1875년 비제의 나이 36세 때 발표됐습니다. 음악사 최고의 천재 작곡가로 꼽히는 모짜르트가 요절한 나이가 35세였. 그런 점에서 작곡자가 멜로디 메이커로서 가장 왕성한 시기가 30대 중후반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푸치니의 라보엠의 경우엔 '그대의 차가운 손'과 '내 이름은 미미', '오 사랑스러운 아가씨', '행복했던 시절이여 안녕' 그리고 '무제타의 왈츠(Musetta's Waltz)'로도 알려진 '나 혼자 길을 갈 때면(Quando me'n vò)'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무제타는 '라보엠'의 씬 스틸러라고 부를만한 캐릭터죠. 요염함 자태로 남자들을 유혹하는 것을 즐기지만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가난뱅이 화가 마르첼로입니다. 그래서 돈 많은 한량들과 바람을 피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마르첼로 곁으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합니다.
무제타는 도스토옙스키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1880)의 맏아들 드미트리가 사랑하는 그루셴카처럼 치명적 매력으로 남자를 파멸시키는 팜 파탈(femme fatal)과 구원의 여인상인 살바트리체 도나(salvatrice donna)의 두 얼굴을 지닌 여성입니다. 비제의 오페라 주인공과 비교하면 '순한 맛의 카르멘'이라고나 할까요?
그 무제타가 뭇남성들을 이끌고 처음 등장할 때 부르는 노래가 '나 혼자 길을 걸을 때면'입니다. 거리를 걸어갈 때 뭇남자들이 모두 자신에게 선망의 눈길을 보내는 것에 짜릿한 도취감을 만끽하면서도 그런 바람기 때문에 이별한 마르첼로도 예외가 될 수 없다며 다시 한껏 유혹하는 내용입니다.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나 에일리의 '보여줄게'와 같은 류의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멜로디만 들어보면 '나비부인'의 아리아 '어떤 갠 날'만큼이나 순수하게 다가섭니다. 무제타의 이율배반적 매력을 표현하기 위해 팜 파탈의 가사와 살바트리체 도나의 선율을 접목한 푸치니의 절묘한 전략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사를 빼고 선율만 연주할 경우 이 곡은 전혀 다르게 다가서게 됩니다. 미국의 색소폰연주자 데이브 리브먼이 재즈 선율로 풀어낸 '무제타의 왈츠'는 무제타의 심층적 심리를 여실히 드러내줍니다. 외로움이 잔뜩 묻어나는 테너색소폰과 불안과 우울이 교차하는 기타와 첼로의 선율이 어우러지면서 외로움과 그리움이 뒤섞인 묘한 정한이 빚어집니다.
화려함을 쫓는 관종으로 보였던 무제타가 낭만적 사랑과 차가운 현실 사이에서 불안한 줄타기로 인해 영혼이 잠식된 연약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연주입니다. 오페라에서 그토록 거침없는 매력을 뿜어냈던 무제타 역시 비극적 순애보의 주인공 미미만큼이나 외롭고 순수한 영혼이었던 겁니다. 드미트리의 방탕한 아버지 표도르와 순수한 막내동생 알료사를 동시에 유혹하는 것으로 보였던 그루셴카가 결국 시베리아 유형을 떠나는 드미트리의 구원의 여인으로 남듯이.
https://www.youtube.com/watch?v=SESZNJudZQM&list=RDSESZNJudZQM&start_radi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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