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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일기

김대중-손석희-김어준의 역설

 

출처 김어준의 뉴스공장

 

 

우민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김어준의 노골적 정파성에 학을 뗐다. 언론에 대해 온갖 후수를 두면서 정작 자신은 언론인으로서 지켜야할 의무를 내팽개치는 것에 질렸기 때문이다. 일종의 팬심을 이용해 온갖 돈벌이로 수익을 챙기는 모습에 정나미가 떨어져서다. '좌파 상업주의'에 물든 황색 언론인이 따로 없다 생각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김어준의 영향력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 한국 언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1980~90년대 조선일보의 김대중, 2000~2010년대 MBC와 jtbc의 손석희가 있었다면 2020년대엔 김어준을 꼽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한때 언론에 몸 담았던 사람으로서 우민이 세 사람 중에 가장 높게 평가하는 사람은 손석희다. 실제 그의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언론인으로서 중립 의무에 충실했다. 반면 김대중이 우파 상업주의에 포획된 프레임의 귀재였다면 김어준은 좌파 상업주의에 충실한 음모론의 괴물이라는 것이 우민의 판단이다.

 

김대중으로 대표되던 시대 한국언론의 보수성향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우민은 생각한다. 과도한 정파상으로 언론 본연의 영역인 객관적 보도의 원칙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반면 김어준으로 대표되는 요즘 유튜브 매체들은 기존 매체를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언론 본연의 역할을 외면하고 충성 구독자를 위한 편파 보도를 일삼고 있다. 언론의 의무는 내팽개친 채 단물만 빨려한다는 점에서 기성언론의 폐해가 낳은 하이브리드 괴물들이다.

 

물론 어떤 영역에서든 정통과 비정통으로 나눠보는 시각은 문제가 있다. 프랑스 사상가 브뤼노 라투르는 과학과 이성의 잣대로 순종(서로브레드)과 혼종(하이브리드)을 구분하려는 것을 근대적 억압 내지 환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기성 언론이라는 종의 붕괴가 결국 새로운 생태계 교란종으로서 김어준 류의 출현을 초래했다는 것부터 인정할 필요가 있다.

 

기성 언론을 비판하던 칼날이 김어준 류의 하이브리드언론에는 전혀 먹히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정준희로 대표되는 기성 언론 비판가들이 김어준에겐 그 잣대를 적용하지 않으면서 악어새와 악어처럼 상호공존하는 기형적 상황 역시 그 연장선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언론 생태계의 변화에 맞춘 새로운 윤리적 프레임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로운 하이브리드 언론의 아킬레스건은 지독한 상업주의에 있다. 규칙을 위반했을 때 그들의 돈줄을 차단하기 위한 수단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마련되지 않는 한 김어준 류에 대한 비판은 되려 그 번성만 초래한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프로야구 중계에도 편파중계가 있다. 만일 가장 팬이 많은 기아 타이거스나 롯데 자이언츠 팬덤에 기댄 편파 중계의 시청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에 입각해 모든 야구중계가 편파 중계로 흘러가는 것을 좌시할 것인가? 충성 시청자들이 많은 편파 중계가 전체 야구중계를 좌우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그런 의미에서 전직 헌법재판관이 특정 야구팀에 대한 팬심을 노출하는 것 역시 철저히 유머의 영역 안에 머물 필요가 있다고 우민은 생각한다. 그러한 개인적 일탈이 너무 공공연하게 자주 노출될 경우의 부작용까지 생각해야하는 것이 존경받던 공직자로서 마지막까지 짊어져야할 슬픈 운명 아닐까?

 

 

-2025년 9월 7일 섭씨 33도의 이상고온을 보이는 일본 후쿠오카에서

 

 

#우민은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인 동시에 '또 하나의 백성(又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붙인 별호입니다. 우민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