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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일기

'정치의 종교화' 막으려면 '납득이'가 필요해

이탈리아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8과 1/2' ©시네리즈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 전 하버드대 교수는 특정 지능과 우리 뇌의 특정 영역이 연결된 것에 대한 증거를 토대로 인간의 지능이 '8과 1/2'의 다중지능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8과 1/2'은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동명의 영화(1963) 제목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에 따르면 언어, 논리수학, 음악, 시각 및 공간, 신체운동, 대인관계, 자기성찰, 자연탐구의 8가지 지능은 명확하게 구별된다. 반면 실체인지 아닌지가 불분명해 1/2로 남겨둔 지능이 실존적 지능이다. 삶과 죽음, 존재의 의미, 우주와 인간의 본질 같은 큰 질문을 탐구하는 지능이다. 흔히 종교적 영적 능력과 연결된다고 생각하는 지능이 바로 실존적 지능이다.

한국인들은 뭔가를 참 잘 믿는 종교성이 강하다. 전통시대의 유불선은 물론이고 천주교와 개신교 등 다양한 종교가 한국만큼 쉽게 뿌리내리는 나라도 없지 않나 싶을 정도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때부터 지금까지 신흥종교와 사이비종교가 가장 번성하는 나라도 한국 아닐까?

그럼 한국인들은 가드너가 1/2로 규정한 실존적 지능이 뛰어날까? 우민은 한동안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생각이 바뀌었다. 가드너가 말한 실존적 지능은 단순히 현실 너머를 상상하는 초월적 상상력만 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질 줄 알고 그에 대해 납득할만한 답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능력까지 포함된다. 종교성이 강한 한국인들에게 과연 그렇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실존적 능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까?

 

종교성이 강하다는 말은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의존성이 강하다는 말로도 번역될 수 있다. 무수한 외침과 내분, 독재에 신음해야 했던 한국인들이 고단한 삶을 견뎌내기 위해 절대적 존재에게 의탁하려는 마음을 갖는 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이승에서 힘든 삶을 저승에서라도 보상받고 싶다는 민중의 염원은 존중받을만 하다.

 

문제는 이승에서 삶의 문제 해결에 있어 자신의 주체적 판단을 정지시킨 채 종교지도자의 권위와 말씀을 맹종하는데서 발생한다. 실존적 지능을 발휘하는 것은 생략한 채 초월적 존재와 구원으로 곧바로 비약한 결과다. 스스로 납득되기를 포기한 채 모든 판단을 전적으로 타자에게 의존하나는 이런 행태가 민중의 삶을 피폐화시키는 온갖 사이비 종교의 창궐을 낳는 것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씬스틸러 납득이(조정석 분)가 승민(이제훈 분)에게 연애상담을 해주는 장면. ©명필름

 

한국인의 이러한 무비판적 종교성은 21세기 들어 정치로 옮겨붙고 있다고 우민은 생각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모든 판단을 위탁하고 의존하는 현상이 좌우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 정치인 역시 현실적 인간이기에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군가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결심한 순간 그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체의 판단을 중지시킨 채 "믿습니다"를 줄기차게 외치는 이들이 너무 많아지고 있다. '정치의 팬덤화'를 넘어 '정치의 종교화'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정치의 종교화'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는 서구사회에서도 엇비슷한 현상들이 목도되고 있다. 문제는 안그래도 무비판적 종교성이 큰 한국사회에서 정치의 종교화의 부작용이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는 최고권력자인 대통령 주변에 온갖 무속인과 종교인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현상에서도 발견된다. 개신교 대형교회들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는 현상에서도 확인된다. 종교계에 너그러운 법의 잣대를 악용해 특정 종교와 종파가 한국정치를 좌지우지하려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혼탁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개발독재시대 그 종교적 파트너로 급성한 한국의 대형교회의 일탈을 막는 엄격한 법을 제정하고 적용할 것을 우민은 제안하고 싶다. 유교국가였던 조선에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과 같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종교적 소득에 대한 세무신고를 의무화하고, 사회복지 용도가 아닌 경우에 세금을 부과하고, 신도수가 2000명이 넘어서는 교회의 분할을 의무화하며, 특정 정당과 결탁을 차단하는 법안의 제정과 엄격한 집행이다.

 

한국의 역사를 되돌아봤을 때 새로운 왕조는 늘 새로운 종교와 함께 발흥했다. 통일신라의 교종 불교, 고려의 선종 불교, 조선의 유교처럼 개발독재시대 한국에는 개신교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동시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 위해선 기득권화한 기성종교를 혁신이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은 그러한 특정 종교와 결탁해 그를 특권화하는 것 자체를 차단하는 '종교의 비정치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우민의 판단이다.

 

이 시점에서 이용주 감독의 영화 '건축학개론'(2012) 속 납득이(조정석 분)라는 캐릭터의 가치를 재음미해보자고 우민은 제안하고 싶다. 친화력 좋으면서도 불합리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납득이 안가잖아, 납득이"를 외치는 납득이들이 우리 사회에 더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 한국 종교계에 실존적 지능을 갖춘 종교인들이 많아지고, 한국 정치에서  '정치의 종교화'를 막아낼 수 있지 않을까.

 

-2025년 8월 23일(구름 잔뜩 끼고 무더움)




#우민은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인 동시에 '또 하나의 백성(又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붙인 별호입니다. 우민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