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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퓌시스

"타고난 성이 뒤바뀌는 새의 비율 3~5%나 돼"

 

호주에 서식하는 웃는물총새. 사람의 웃음소리 비슷한 소리를 내는 이 새의 3~5%는 암컷으로 태어났지만 수컷 행세를 하거나 반대로 수컷으로 태어났지만 암컷처럼 알까지 낳는 것으로 조사됐다. ©Neil Bowman/FLPA/Minden

 

'sex reversal'이란 용어가 있다. 사람에게 쓸 때는 '성전환'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지만 동물의 경우엔  '성역전'으로 더 많이 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다른 성의 특징을 갖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성역전 현상이 새들에게서 예상보다 훨씬 많이 발견된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13일(현지시간)  영국학술원의《생물학 서한(Biology Letters)》에 발표된 호주 선샤인코스트대학 연구진의 논문을 소개한다.

 

연구진은 주로 호주에 서식하는 5종류의 새 약 500마리의 사체 해부와 DNA검사를 통해 이를 밝혀냈다. 5종의 새는 호주 까치(Australian magpie), 웃는물총새(laughing kookaburra) , 볏비둘기(crested pigeon), 무지개앵무(rainbow lorikeet), 비늘가슴앵무(scaly breasted lorikeet)다. 모두 호주 퀸즐랜드 중의 야생동물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다가 숨진 새들이었다. 연구진은 이들 새의 생식기관 확인 뿐 아니라 유전적 성별 분석을 위한 DNA 분석까지 했다.

 

무지개앵무 ©Andrew Allen

 

그 결과, 5종의 새 모두 성역전이 발생한 개체수가 놀랍게도 3~ 6%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새는 거의 대부분 유전적으로 암컷이었지만 수컷 생식 기관을 가지고 있었다. 난소가 있는 몇 마리의 유전적 수컷도 발견됐다. 수컷 물총새 한 한마리는 난소가 확장된 난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최근에 알을 낳았다는 징표였다.

 

연구책임자인 선샤인코스트대의 도미니크 포트빈 교수(생태학)는 과학자들이 조류의 성 특성 발현에 유전자 외의 외부요인이 작용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비율이 이렇게 높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야생 조류에서 성역전이 종전에 생각하는 것보다 더 흔히 발생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야생 조류의 성별을 단순히 생식기나 외모(조류는 일반적으로 수컷이 더 화려하다)로 판단하거나 DNA 분석을 통해서만 식별하는 것의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것도 보여준다.

 

 

볏비둘기  ©Robin Gwen Agarwal

 

포유류보다 조류에서 성역전의 빈도가 높은 데는 유전적 이유가 있다. 포유류의 경우 성염색체가 XY면 수컷, XX면 암컷이다. Y염색체의 SRY 유전자 발현으로 암컷에서 수컷으로 분화된다.. 이와 달리 조류는 성염색체가 ZZ면 수컷, ZW면 암컷이다. W염색체가 암컷의 특성을 유도한다. 다시 말해 포유류의 성 결정 주도권을 수컷이 갖는다면 조류의 경우 그 주도권을 암컷이 갖는다.

 

세포 차원에서 성염색체 발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성적 정체성이 뒤바뀔 수 있다. 예를 들어 초파리. 제브라 피시(가로로 검은 줄무늬가 있는 작은 열대어), 닭과 같은 동물들은 이런 유전자 발현에 따라 선천적 성과 정반대의 후천적 성을 갖게 된다. 또 세포마다 다른 성염색체가 발현할 경우 수컷과 암컷의 특징을 모두 지닌 '자웅모자이크(gynandromorph)'가 생겨나기도 한다.

 

 

비늘가슴앵우 ©Silvia Alexander

 

환경적 요인도 성별 결정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거북이 알은 부화온도가 낮으면 수컷이 태어나지만 부화온도가 높으면 암컷이 태어난다. 새의 경우도 많지는 않지만 호주에 서식하는 덤불칠면조(brush turkey)의 알을 거대한 흙더미에서 부화시킬 때 비슷한 현상이 관찰됐다.

 

특히 대부분의 조류는 외쪽 난소와 난관만 발달하고 오른쪽은 퇴화한 상태로 있다. 따라서 왼쪽 난소가 손상될 경우 암컷 호르몬 역할을 하는 에스트로겐 분비가 감소하고 수컷 호르몬인 안드로겐의 분비가 상대적으로 많아지기 때문에  털색, 울음소리, 행동, 심지어 생식샘이 수컷화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유전적 성은 ZW로 암컷임에도 수컷의 성징을 후천적으로 획득하게 되는 새가 많은 이유다.

 

이번 연구결과는 멸종 위기 조류의 종 보존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성비는 종의 번긱과 성장 및 유지 능력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개체군에서 수컷과 암컷의 비율이 얼마인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향후 연구를 통해 야생 조류의 성역전율이 자연상태에서 어느 정도 되는지를 파악하게 되면 내분비 교란 화학물질으로 인한 성역전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그 구체적 부작용도 규명 가능해질 수 있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royalsocietypublishing.org/doi/10.1098/rsbl.2025.0182)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호주 까치  ©Darcy Whitta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