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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퓌시스

"만성적 피로도 유전질환일 수 있다"

 '만성 피로 증후군(CFS)' 또는 '근육통성 뇌척수염(ME)'의 유전적 원인 최초 발견돼

 

정식 질환 취급을 받지 못하던 만성피로증후군/근육통성 뇌처수염의 유전적 원인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Strong Medicine

 

 

일상적 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로 기운 없는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만성 피로 증후군(CFS)'이라고 부른다. 중추신경계 장애로 인해 발생한다 하여 ' 근육통성 뇌척수염(myalgic encephalomyelitis, ME)'으로 불리기도 한다. 견딜 수 없는 피로감, 수면 문제, 뇌 안개, 관절·근육 통증, 두통, 기억력·집중력 저하, 운동 후 불쾌감 등이 장기 지속되고 회복에 몇 주씩 걸리는 병이다.

 

이 질환이 학계에 보고된 것은 수십 년이 넘었지만 환자의 증세 호소에만 의지하기에 의학계에선 이를 정식 질병으로 취급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세계 최대 규모의 연구결과, 유전자와 만성피로증후군 간의 연관성이 발견됐다. 6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이 보도한 내용이다. 

 

ME/CFS의 영향을 받는 사람은 6700만 명으로 연간 수 십조 원의 의료비용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에서만 연간 경제적 손실이 30억 파운드(약 5조5800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되지만 아직 치료법은 없는 상태다.

 

영국의 에든버러대는 이 질환의 원인 규명을 위해 2022년부터  DecodeME라는 연구에 착수했다. ME/CFS를 가진 2만7000명과 이 질환없이 건강한 25만 명으로부터 1만5579개의 DNA 샘플을 채취한 초기 유전자 분석 결과, ME/CFS가  인간 게놈의 여덟 개 영역과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연구를 이끈 에든버러대의 크리스 폰팅 교수는 "ME에 대한 유전적 영향에 대한 최초의 강력한 증거"라며 "유전체 전체에 걸쳐 적용되는 많은 유전적 변이가 사람들이 ME로 진단받을 가능성이 높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를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ME/CFS를 오랜 잠에서 깨어나게 해 줄 "기상 알람"에 비견했다. 

 

ME/CFS 환자에서 두드러졌던 8개의 유전 영역에는 면역 방어와 신경계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포함돼 있다. 일부 유전자 변이는 박테리아 및 바이러스 감염과 싸우는 능력을 손상시켜 ME/CFS에 더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ME/CFS에서 관찰된 또 다른 유전적 차이는 만성 통증을 겪는 사람들에서 이미 알려져 있는 것으로 많은 ME/CFS 환자들이 경험하는 증상 중 하나입니다. 폰팅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밝혀진 유전적 요인이 ME 환자들이 자신의 질병을 설명한 방식과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Lea Aring

 

 

ME/CFS 위험이 높은 사람들을 식별하기 위한 진단 검사나 스크리닝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연구가 ME/CFS를 다른 장애를 유발하는 질병과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고, 치료법 개발의 잠재적 길을 열어주는 이정표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질환 환자들을 돕는 자선단체인 Action for ME의 최고 경영자이자 DecodeME 공동창립자인 소니아 초두리 박사는 “많은 사람들이 ‘ME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고, 의사들을 찾아갔지만 믿지 않거나 실재하는 질병이 아니라고들 했다"면서 이번 연구가 이들 환자들에게 "타당성과 신뢰성을 부여했다"고 말했다. ME/CFS를 연구하는 영국 리버풀대의 앤 맥아들 교수는 아직 동료 심사 저널에 게재되지 않은 이 결과가 향후 연구에 "견고한 기반"을 제공하여 치명적인 질병 치료법 개발을 가속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ME/CFS가 남성보다 여성에게 훨씬 더 많이 발생하는 이유 등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아 있다. 진단은 여성에서 4배 더 흔하지만, 연구에서는 유전적 설명을 찾지 못했다.
또 다른 의문은 장기 코로나가 ME/CFS와 겹치는지 여부다. 많은 증상이 유사하지만, 연구진은 두 질환 사이에 유전적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폰팅 교수는 “우리가 하는 주요 작업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다양한 접근법을 활용해 같은 질문을 제기하고 대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ME/CFS를 연구하는 비타 고들레브스카 박사는 최근 자기공명 분광법을 사용해 ME/CFS와 장기 코로나19(롱 코비드) 환자의 뇌를 스캔했다. 롱 코비드가 아니지만 ME/CFS 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노력과 감정에 대한 정보를 통합하는 뇌 영역인 전방 대상회 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ACC)에서 젖산 수치가 높았다. 이는 세포 내부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배터리와 같은 구조인 미토콘드리아가 손상돼 뇌의 에너지 대사에 장애가 발생했음을 보여준다.

고들레프스카 박사는 "ME/CFS 환자들이 여전히 불신을 받고 있으며, 특히 연구 자금과 관련하여 질병이 너무 소홀히 취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연구가 이런 슬픈 낙인과 싸우는 것과 연구 자금 지원자들에게 이것이 진정한 생물학적 조건이라는 것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