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성들이 많이 걸리는 루푸스(정식 명칭 전신 홍반성 루푸스, SLE)는 자가면역질환의 하나다. 자가면역이란 외부에서 침투하는 병원체로부터 인체를 방어하는 면역계가 이상을 일으켜 오히려 신체의 내부 세포나 조직을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루푸스는 이로 인해 피부, 관절, 신장, 폐, 신경 등 전신에서 염증 반응이 만성적으로 일어나면서 증상의 악화와 완화가 반복된다. 안면 부위에 나비 모양의 홍반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으며 신장염이 발생하게 되면 투석과 이식이 필요할 정도 상태가 악화된다.
루푸스 환자가 완치되는 경우는 드물다. 약물 치료로 염증 반응을 완화시켜주는 임시방편의 치료만 가능하다. 이러한 루푸스를 완치할 지도 모를 새로운 치료법이 임상시험 중이다. 항암치료법으로 개발된 키메라항원수용체 T세포(CAR-T세포) 치료법이다.
CAR-T세포 치료법의 원리
백혈구의 하나인 T세포는 외부에서 침입한 병원체(항원)을 제거하는 킬러 세포다. T세포가 활성화되기 위해선 해당 병원체가이 적군인지 아군인지가 구별 가능해야 한다. 이런 구별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 세포 표면에 붙어 있는 '주요 조직적합성 복합체(MHC)'란 단백질 조각이다.
암세포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 MHC 노출을 막아 T세포의 공격을 차단한다. CAR-T세포는 이런 암세포의 회피전략을 공략하기 위해 환자의 T세포를 채취해 MHC가 아니라 암세포의 특정 단백질을 인식하는 키메라 항원 수용체(CAR)가 발현하도록 유전적 변형을 가한다. 새로운 유전자를 삽입해 그리스신화 속 여러 동물이 합성된 키메라처럼 만든다고 하여 키메라항원수용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이렇게 암세포 저격용으로 재설계된 CAR-T세포를 배양해 대량 증식시킨 뒤 다시 환자 몸에 주입하면 암세포만 사멸시키게 된다.
루푸스 치료에 적용되는 CAR-T세포의 표적은 암세포가 아니라 B세포라는 다른 유형의 면역 세포다. 역시 백혈구의 일종인 B세포는 외부 침입 병원체를 항체로 인식하면 면역글로불린(Ig)이라는 단백질을 분비한다. 이것이 항체와 결합해 그를 제거하는 항원이 된다. 자가면역 반응은 B세포가 체내 세포를 항체로 인식하고 그에 결합하는 면역글로불린을 생성함에 따라 발생하게 된다.
자가면역 반응에서 B세포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B세포는 체내에 침투했던 항원을 기억하고 있다가 재침투가 이뤄지면 그 항원의 단백질 조각(펩티드)을 T세포가 인식하는 MHC에 끼어 넣어 T세포의 공격을 유도한다. 그래서 항원제시세포(APC)라고 한다. 외부에서 침투한 적군만 공격하던 T세포가 돌연 아군을 공격하게 되는 것도 B세포의 잘못된 좌표 설정(항원 제시) 때문이다.
기존의 루푸스 치료제들은 이렇게 오작동하는 B세포를 공략한다. 하지만 일부만 억제할 뿐 전체를 제거할 수는 없다. 루푸스 치료에 적용되는 CAR-T세포는 B세포에서 발현되는 CD19라는 표면 단백질을 인식하는 CAR가 발현되로록 유전자 조작이 가해진다. 그래서 오작동하는 B세포 전체를 발본색원할 수 있게 해준다.
루푸스 환자 대상 임상 1상 진행 상황
루푸스에 대한 CAR-T세포 치료법은 현재 여러 병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이다. 모두 종전 치료법이 잘 듣지 않아 신장염과 관절염 등으로 고생하는 소수의 난치성 환자 대상으로 진행되는 임상 1상시험이다. 현재의 CAR-T 프로토콜에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화학요법이 포함되기 때문메 증상이 심하고 잠재적 위험보다 이점이 더 큰 화자로만 제한되고 있다.
이들 임상 1상은 안전성 검증이 먼저지만 치료 효과도 연구되고 있다. 미국 뉴욕대(NYU) 랑고네 병원에서 진행 중인 임상시험을 이끌고 있는 아미트 삭세나(Amit Saxena) 교수는 8일(현지시간) 건강의학 웹진 '헬스 데이'에 보낸 기고문을 통해 현재 진행 중인 임상 1상의 치료효과가 전례 없는 긍정적 결과를 낳고 있다고 전했다.
루푸스 환자는 완치되는 경우가 드물고 장기적으로 약물 복용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치료'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임상치료에 참여한 환자들은 신장질환과 같은 장기적 증상이 사라지는 치료효과가 발생하고 있다고 삭세사 교수는 밝혔다.
가장 중요한 점은 CAR-T 치료 후 화학요법을 거치면 B세포가 건강한 '초기 상태'로 돌아와 더 이상 건강한 조직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임상시험 차가 환자들은 증상과 검사 결과가 개선될 뿐만 아니라 다른 루푸스 약물 복용까지 중단할 수 있게 된다고 삭세나 교수는 전했다.
CAR-T세포 치료 절차
루푸스 치료를 위해 CAR-T 치료는 어떻게 진행될까? CAR-T 치료제를 개발한 회사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우선적으로 환자의 증상이 심각하다는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그 기준을 통과하게 되면 환자 혈액에서 T세포를 채취하기 위한 백혈구 분리술을 위해 약물 복용을 중단하게 된다. 이후 환자 맞춤형 CAR-T 치료제를 만드는 데 몇 주가 소요된다.
이후 환자들은 일정 용량을 투여받고 혈액검사를 통해 부작용 여부를 살펴보는 과정을 걸친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경우 이상적인 용량이 결정될 때까지 용량을 점점 더 늘려가게 된다.
다음 단계는 화학요법이다. 환자의 면역 체계를 파괴하고 CAR-T세포의 증식을 위해 신체를 준비시키기 위해 림프구 감소술을 진행한다. 이후 환자는 일반적으로 1, 2주간 입원해 1회 투여되는 CAR-T 치료제 주사를 받고 치료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할 때까지 면밀히 관찰된다.
CAR-T세포가 B세포를 표적화하고 파괴하기 위해 증식해야 하지만 이 과정은 심각한 염증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이는 발열, 저혈압, 경미한 혼란이나 두통과 같은 신경학적 증상에서부터 발작, 혼수 상태, 뇌 부종과 같은 심각한 문제까지 다양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부작용은 치료 가능하지만 의료진의 주도면밀한 관리 아래 진행돼야 한다. CAR-T 치료와 화학요법으로 인해 환자의 면역 체계가 억제된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병원체 감염이 이뤄지지 않게 하는 의료진의 주의 깊은 관리가 필요하다.
회복 상태가 좋아져 환자가 퇴원하더라도 2주에 한 번은 통원 검사를 받아야한다. 면역 체계가 재구성돼 감염 위험이 감소할 때까지 몇 달이 걸릴 수 있다. 임상시험 단계이기 때문에 환자들에 대한 모니터링은 몇 년간 계속 이뤄지게 된다.
2상 및 3상 임상시험에서는 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되며, 안전성 평가가 여전히 중요하지만 치료 효과가 얼마나 좋은지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3상 임상시험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사용 승인을 받게 된다. 많은 CAR-T 치료제가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 FDA에서 신속승인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반적으로는 승인에 몇 년이 걸린다. 따라서 증상이 심한 환자는 임상시험에 자원하는 것을 고려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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