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솔방울에서 시작해 솔방울에서 끝난다. 넷플릭스 영화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얘기다.
왜 솔방울일까? 영화에선 별다른 설명이 없지만 이탈리아 토스카나지역 방언으로 피노키오(pinocchio)가 ‘작은 소나무’ 곧 ‘솔방울’을 뜻한다. 피노(pino)는 소나무를 말하고 키오(cchio)는 ‘작은’이란 뜻의 접미사다.
카를로 콜로디가 쓴 ‘피노키오의 모험’은 1881년 어린이신문에 연재되며 발표됐다. 원작에는 피노키오의 아버지 제페토가 “소나무로 만들었으니 작은 소나무라는 뜻의 피노키오라는 이름이 좋겠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델 토로 감독이 목각인형을 활용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영화는 콜로디의 원작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구성과 전개는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제페토에게 열 살 나이에 죽은 아들 카를로(원작자의 이름)가 있었다는 설정이다. 피노키오는 부재하는 카를로의 대체제로 탄생한 것이다. 영화가 원작소설을 모사했지만 그와는 다른 대체제라는 점에 상응한다. 여기에 원작소설에서 피노키오가 교살됐다가 부활한 점에 착안해 ‘불멸의 존재’여서 죽지 않고 살아난다는 설정이 더해졌다. (피노키오가 교살됐던 것은 갑작스러운 연재 중단 통보로 인한 것이었는데 연재가 재개되면서 살아나게 된 것이었다.)

피노키오가 불멸의 존재가 되는 데는 신화적 존재가 삽입된다. ‘작은 것들의 수호자’와 그의 자매인 ‘죽음’이다. 틸다 스윈튼이 동시에 목소리 연기를 맡은 둘은 에덴동산을 지키는 날개가 넷인 수호천사 거룹과 이집트신화 속 스핑크스가 뒤섞인 모습이다. 둘 다 생로병사의 비밀을 지키고 관장하는 존재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렇게 신화적인 존재인 둘을 오가며 피노키오는 인생의 의미를 터득한다.
원작 속 악당은 여럿이지만 영화에선 둘로 압축된다. 서커스단장 볼페(이탈리어로 여우)와 포데스타 시장이다. 각각 자본과 정치권력을 상징한다. 배경도 19세기말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이 횡행하던 20세기 이탈리아로 바뀌었다.
유대교 성경(구약) 속 요나 설화에서 빌려온 거대 물고기의 뱃속은 똑같이 부활의 공간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렇게 부활한 피노키오는 동화가 아니라 신화 속 주인공으로 재탄생한다. 영화 속 첫 솔방울과 마지막 솔방울의 의미가 크게 달라지듯.
-2024년 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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