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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Macguffin

외부와 내부 교란하는 ‘바람의 에피퍼니’

종교영화보다 정치영화 가까운 ‘콘클라베’

 

 

(주)디스테이션

 

 

올해 89세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위독하다기에 포스트 프란치스코 시대를 염두에 두고 영화를 보러 갔다역대 교황 중 가장 진보적 인물로 꼽히는 프란치스코가 사경을 헤매는 것과 보수층을 등에 없은 트럼프와 윤석열 같은 삼류 정치인이 득세하는 것의 상관 관계에서 어떤 계시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컸다. 

종교영화인 줄 알았던 콘클라베는 21세기적 정치현실을 기막히게 반영한 정치영화였다오히려 포스트 윤석열을 준비해야 하는 한국인들에게 주는 일깨움이 더 컸다솔직히 여성 성노동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션 베이커 감독의 아노라보다  트럼프 치하의 미국인들에게 더 큰 울림을 주는 '콘클라베'가 아카데미영화상 작품상을 받아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콘클라베는 전임 교황이 선종하면 전 세계 추기경들을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 가둬 놓은 채 만장일치로 후임 교황을 뽑게 하는 비밀 투표 방식을 뜻한다빠른 합의를 이끌기 위해 물과 식사도 최소한만 제공한다고 들었는데 영화를 보니 그건 아니었다. 100명이 넘는 추기경들이 제한된 공간에 갇혀 다수결로 차기 교황이 결정될 때까지 끝없이 투표하는 것은 맞다하지만 물과 식사 아니라 와인과 디저트까지 풍성하기만 했다또 투표가 이뤄지는 시간을 제외하곤 그들의 숙식을 뒷바라지 하는 수녀와 신부심지어 성가대 소년들까지 시스티나 성당을 드나들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수많은 노예와 아녀자의 뒷바라지를 받던 성인 남성 시민들만 모여 토론과 투표를 벌였던 고대 그리스 아테네 민주정의 축소판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런 콘클라베가 현대 민주주의 투표보다 비합리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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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콘클라베 역시 현대 민주국가가 직면한 정치적 문제의 축소판임을 보여준다추기경들 역시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최선의 후보가 아니라 차악의 후보에 경도된다누가 봐도 교황감이 될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만은 교황이 되면 안 된다는 부정적 판단에 입각해 그 대척점에 선 유력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것이다.
 
지난 한국대선을 떠올려 보라윤석열이 대통령감이라 생각해 투표한 사람보다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윤석열에게 투표한 사람이 더 많지 않았던가세속 세계에서 벌어지는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 간의 세 다툼 역시 똑같이 발생한다보수파는 진보파가 가톨릭교회의 전통을 파괴하고 있다는 증오심에 똘똘 뭉쳐있다진보파는 보수파의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며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짓까지 서슴지 않으려 한다그 와중에 추기경치고 교황이 되고픈 야망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는 식의 물 타기와 마타도어가 난무한다.
 
그에 대한 기가 막힌 표현도 등장한다. “야망은 신성함의 나방(Ambition, 'the moth of holiness')”이란 표현이다나방의 애벌레가 옷장의 옷을 좀 먹듯 성직자의 야망이 신성한 신의 뜻을 섬겨야 하는 성직자의 본분을 망각하고 훼손하게 만든다는 멋진 경구라는 생각이 들었다세속 정치인이라고 다를까그들 역시 권력욕에 눈이 멀면 국민을 섬겨야 한다는 정치인의 본분을 망각하고 공작정치의 음모와 이전투구에 골몰하게 되지 않던가?
 
그 콘클라베를 관장하는 책임을 맡은 주인공 토마스 로렌스 추기경(레이프 파인즈 분)은 교황청만큼은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관객의 대리자다기도할 때 신의 응답을 받지 못해 수도원으로 돌아가길 열망했기에 자신은 교황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전임 교황의 뜻을 받들어 공정한 관리자(manager)가 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물론 그에게도 누가 교황이 되야 하느냐에 대한 생각은 뚜렷하다프란치스코 교황을 모델로 한 전임 교황처럼 동성애자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다른 종교와 화합을 추구하는 진보적 인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이는 그가 콘클라베 개막 연설에서 한참을 주저하다가 확신은 통합의 적이며관용의 치명적 적(Certainty is the great enemy of unity. Certainty is the deadly enemy of tolerance)”이라 천명하는 장면에서 또렷이 각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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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로렌스의 따뜻한 이상주의는 차가운 현실에 부딪혀 결빙되고 만다교황 유력 후보들에 대한 생각도 못한 스캔들이 잇따라 폭로되고 공정한 관리자로서 숨은 조연이고 싶었던 로렌스 자신이 주연으로 부상하는 일이 벌어진다보수파의 집권을 막기 위해 진보파는 그런 로렌스에게 전면에 나설 것을 주문한다그리고 로렌스가 그 유혹에 혹한 순간 기가 막힌 에피퍼니(Epiphany)가 발생하고 콘클라베의 선택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특히 마지막 반전은 식스 센스나 유주얼 서스펙트에 필적할 만큼 파격적이다그것은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관객을 위해 당분간 봉인할 수밖에 없다하지만 이 영화에서 진짜 감탄스러운 것은 앞서 말한 에피퍼니가 발생하는 순간이다그 장면 역시 지금 여기서 공개하는 것도 스포일러다하지만 그 순간 필자에게 벼락처럼 찾아온 깨달음을 언급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 사상가 푸코는 권력 장치가 우리의 내면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외부성(l’extériorité)과 내부성(l’intériorité)의 관계로 풀어냈다외부성은 우리 삶을 지배하는 권력 관계가 현실화된 환경이자 형식이다내부성은 인간의 내면을 말하는데 본질적으로 텅 비어있는 타블라 라사(tabula rara)와 같지만 권력관계의 산물인 외부성이 그 빈 서판을 채우면서 지식과 사유가 형성된다.
 
콘클라베는 푸코가 말한 내부성의 완벽한 투사물이다외부의 개입을 철저히 단절한 채 가톨릭 교단의 소수정예 지도자들의 난상토론으로 교황을 선출한다는 이상이 투영돼 있다하지만 그 속을 가만히 관찰해 보면 세속적인 외부세계의 권력과 욕망의 반영물이라는 점에서 외부성의 지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 21세기 정치가 배타심과 증오를 동력으로 삼고 대세를 따라야 손해 볼 일이 없다는 대중추수주의(포퓰리즘)의 지배를 받듯이 추기경들 역시 최악은 피하자는 네거티브 감정과 어차피 교황이 될 사람은 정해져 있다는 집단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푸코는 외부성과 내부성의 이분법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그를 돌파하기 위해 바깥(le dehors)'과 '안쪽(le dedans)’의 개념도 도입했다바깥은 중층의 권력관계로 이뤄진 외부성에 포착되지 않는 미지와 야성의 공간이다권력 구조가 만들어내는 형식적 관계를 해체하고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는 공간이다안쪽 역시 텅 빈 채 수동적인 내부성과 달리 바깥의 영향과 자장에 공명해 분출할 수 있는 잠재적 에너지를 응축한 공간이다.
 
외부성의 지배를 받는 내부성을 상징하는 용어가 자아라면 바깥과 안쪽의 상호작용으로 형성되는 것이 주체다또 미지의 바깥이 안쪽의 주체적 변화를 가져오는 대표적 상관물이 바람이다바람은 바깥에서 불어오지만 권력관계에 포섭되지 않는 안쪽의 자율적 주체를 일
깨울 뿐 어떤 방향성을 지닌 영향력을 행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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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에서 로렌스를 변화시킨 에피퍼니 역시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형상화된다로렌스 내면의 자아가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라는 외부의 압력과 지배에 굴복하려는 순간 철저히 고립됐다고 여겨지던 콘클라베 바깥에서 예상치 못한 바람이 불어온다그 순간 잠자고 있던 로렌스 안쪽의 신성한 주체가 깨어나고 차악이 아니라 최선을 선택해야겠다는 회심(메타노이아)이 발생한다그와 함께 콘클라베는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놀라운 결정을 내리게 된다그 놀라움은 이중적인데 절차적 과정에서도 그렇지만 사후적 결과로서도 그러하다.
 
콘클라베가 종교영화라고 빋는 사람들에게는 그 바람이 신의 계시로 받아들여질 것이다하지만 이 영화가 정치영화라고 여기는 필자와 같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모든 유권자들의 집단무의식 속에 잠재된 정치적 원형을 일깨우는 자연적 촉발물이다

그 둘을 아우르는 용어가 에피퍼니다신적 계시의 현현을 뜻하는 신학 용어인 동시에 신앙과 상관없이 불현 듯 찾아오는 깨달음의 순간을 지칭하는 예술 용어이기 때문이다그 에피퍼니는 다시금 장미 대선의 가능성을 맞게 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묻는다언제까지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골라야 하는 외부성의 정치에 언제까지 휘둘릴 것이냐고?
 
에드워드 버거 감독은 풀샷으로 인물이 잘 구별되지 않는 사실적 영상을 펼쳐내며 그런 에피퍼니의 순간을 기막히게 형상화해 냈다주연을 맡은 레이프(랄프가 아니다!) 파인즈와 스탠리 투치존 리스고이사벨라 로셀리니(그렇다, ‘블루 벨벳의 바로 그녀가 완고한 수녀로 분해 못 알아 볼 뻔했다등의 영기 앙상블도 일품이다심지어 막판 반전에 담긴 메시지는 여성 성노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아노라와 트랜스젠더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에밀리아 페레즈’ 만큼이나 파격적이고 진보적이다그래서 영국아카데미에서는 작품상 등 4관왕에 올랐지만 미국 아카데미에서는 각색상 수상에 그쳤다필자는 미국 아카데미보다 영국 아카데미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2025년 3월 8일(흐린 봄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