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4월 16일만 되면 세월호의 참극을 되새기는 노래를 올렸습니다.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첫구절인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을 되뇌며. 종교적 신앙을 잃고(不信), 생식의 기쁨을 잃고(不毛), 썩어서 사라지길 거부해 재생도 불가능한(不活) 서구문명의 비극성을 노래한 엘리엇의 시가 하필이면 한반도의 남녁에서 절절히 공명되는 서글픈 현실을 통탄하며.
4월 16일은 홍콩영화 '아비정전'에도 등장합니다. 영화 초반부 아비(장국영 분)는 서로 얼굴만 마주친 축구장 매표소 직원 수리진(장만옥 분)이 무료함을 달래고 있을 때 찾아와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여주며 부탁합니다. "초침이 한바퀴 도는 동안만 같이 시계를 봐주실 수 있을까요?"
수리진은 그 1분을 채우지 못해 여러 차례 초침 보기를 멈춥니다. 그때마다 아비는 "아직 1분을 못채웠네요, 다시 시작하죠"라면 다시 시계 보기를 종용합니다. 그렇게 두어번 실랑이를 벌이다 간신히 1분을 채웠을 때 아비는 이런 말을 남기고 돌아섭니다. "1960년 4월 16일 오후 2시59분부터 3시 사이에 당신과 나는 함께였습니다.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수리진의 영혼에 아비와 추억이 영원으로 각인되는 순간입니다. 영화 속에서 되풀이 해 흘러나오던 브라질 인디오 기타 듀오인 로스 인디오스 타바하라스의 'Always in My Heart'의 제목 그대로.
맥락은 전혀 다르지만 동시대를 사는 수많은 한국인들에게도 4월 16일이 영혼의 화인으로 남아있습니다. 정확히는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한 오전 8시48분부터 완전히 가라앉은 오전 10시 17분까지 단원고 학생들이 대다수이던 승객들이 구출될 것이라는 간절한 믿음이 처절히 배신당한 1시간30분의 시간. 그리고 그들 시신과 배가 인양되기까지 몇 개월간의 먹먹한 시간까지.
마치 엘리엇 자신의 비밀스러운 사랑의 추억과 서구문명의 비극성을 포개놓은 '황무지'가 대륙 저 너머 끝자락에 위치한 한국의 역사적 체험과 절절히 공명하듯이. 마치 '아비정전'의 주인공 아비 역의 장국영이 4월의첫날에 비극적 죽음을 맞음으로써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을 환기시키듯이. 또 바다 건너 보스턴에 있는 제가 4월 16일을 무심히 넘기지 못하듯이.
-2026년 4월 16일(밤새 비 내리고 맑아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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