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주일간 보스턴 체류를 끝내고 떠나는 4월 20일 오늘은 보스턴마라톤대회가 열리는 날. 세계 러너들의 꿈의 코스인 보스턴 마라톤대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연례 마라톤대회로 벌써 130회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월요일에 열리는 걸까요? 4월 세번째 월요일이 보스턴이 주도인 매사추세츠주와 메인주, 최근 들어 코네티컷 주까지 뉴잉글랜드 지역으로 꼽히는 3개주에 적용되는 주공휴일인 '애국자의 날(Patriot's Day)'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비공휴일로 지정한 9.11 추모기념일인 '애국자 날(Patriot Day)'과 전혀 다른 기념일입니다.
그럼 보스턴이 위치한 매사추세츠주와 과거 그 주의 일부였다가 떨어져 나간 메인주 그리고 인근 코네티컷주 3개 주는 왜 이날을 '애국자의 날'로 기념할까요? 미국 독립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렉싱턴-콩코드 전투가 벌어진 1775년 4월 19일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보스턴은 영국군의 주둔지였고 렉싱턴과 콩코드는 보스턴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인근 도시였습니다.
그럼 보스턴마라톤 대회는 왜 하필 이날 열릴까요?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근대 올림픽이 개최되면서 마라톤대회가 널리 알려지게 되자 이를 참관하고 온 보스턴 육상인들이 그리스 마라톤 전쟁의 승전보를 알린 전령과 렉싱턴-콩코드 전투 당시 영국군의 침공을 알린 전령 폴 리비어의 유사성에 착안해 1897년 4월 19일 제1회 보스턴 마라톤대회를 개최했기 때문입니다. 폴 리비어는 미국독립운동 비밀결사인 '자유이 아들들(Sons of Liberty)' 소속으로 보스턴에 살던 은세공업자였는데 영국군이 진격을 개시하자 밤새 말을 달려 이 소식을 전파해 미국 민병대 승리의 초석을 깔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마라톤의 출발점인 올림픽은 여러 사정으로 못 열리거나 개최가 뒤로 밀린 경우가 있었지만 보스턴마라톤대회는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열렸다는 것. 1918년 1차 대전이 발발했을 때는 군인들이 군사 우편을 전달하는 릴레이 방식으로 개최됐고,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일 때는 오프라인 대회는 취소하는 대신 가상대회를 개최하며 단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고. 쉼 없이 달리는 마라톤 정신에 가장 투철한 대회로 꼽히는 이유입니다.

보스턴에서 또 배운 것은 'Wicked Smaht'라는 독특한 표현입니다. 뮤지컬 '위키드'로 유명해진 wicked는 본디 사악하다는 뜻인데 보스턴을 중심으로 한 뉴잉글랜드 지역 사투리에선 very 또는 really라는 부사로 쓰인다고 합니다. 사악하다는 뜻을 아주 오래 묵은 지혜를 온존 했기에 정말 대단하다는 의미로 전환한 표현 아닐까 합니다. 또 똑똑하다는 Smart의 r발음 대신 h발음이 들어가는 '스맣트'로 발음한다고. 미국 영어에서 fucking에 해당하는 표현을 영국 영어에서 Bloody로 표현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는 보스턴에 있는 이공계 명문대인 MIT의 청소부가 엄청한 수학천재로 등장하는 영화 '굿 윌 헌팅'(1997)에서 천재로 분한 멧 데이먼을 자랑하는 벤 애플렉의 대사를 통해 미국 전역에서도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처음 들으면 악마와 거래를 통해 보통 인간의 간지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똑똑해졌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보스턴 기념품 가게를 찾을 때 보스턴과 하버드 로고 다음으로 Wicked Smaht 로고가 많이 보이는 이유였습니다. 영화팬인 저도 참을 수 없어 하나 구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보스턴미술관의 작품들을 둘러보다가 키키 스미스라는 미국 현대 조각가의 작품을 접하고 '릴리스(Lilith)'라는 존재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히브리전설에 따르면 아담이 이브보다 앞서 알게 된 첫 번째 짝이었던 여성이라고 합니다. 아담과 잠자리할 때 여성 상위를 주장하는 등 톰보이 기질을 보이다 에덴동산을 버리고 달아났다고. 스미스의 조각작품 속 릴리스는 높은 곳에 거꾸로 붙어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형상인데 '딱'이다 싶었습니다.
릴리스는 이후 에덴동산 밖에서 자식을 낳고 살았는데 천사들이 "에덴동산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후손을 끊어놓겠다:고 협박하자 "그럼 나도 아담과 이브 사이에 태어난 아기들을 죽여버리겠다"라고 해서 산모와 아기의 안전을 위협하는 트릭스터로 각인됐다고 합니다. 세상 모든 팜 파탈의 원조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당차고 반항적 여성의 원형인 셈이니 그 또한 wicked smaht에 부합하지 않나요? 전통적으론 사악한 마녀 취급을 받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봤을 땐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아실현을 이룬 당찬 여성.
보스턴 북쪽 해안도시인 세일럼은 마녀의 도시로 유명합니다. 세일럼은 1692년 마녀재판으로 200명에 가까운 여성들이 마녀로 지목돼 수감되고 19명은 교수형, 1명은 고문으로 숨진 비극적 사건이 발생한 도시입니다. 그래서 세일럼은 '마녀 박물관'을 세우며 마녀도시라는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해내고 있습니다. 이 역시 wicked smaht에 딱 부합합니다.
보스턴을 무대로 무고한 여성을 마녀로 몰고 가는 집단적 광기를 비판한 '주홍글씨'의 저자인 너대니얼 호돈이 바로 그 세일럼 출신입니다. 심지어 호돈의 증조부인 존 호손이 바로 마녀재판 판정을 내린 악명 높은 판사였습니다. 너대니얼 호돈은 그 부끄러움으로 Hathorne이란 성씨에 w를 추가한 Hawthorn으로 성씨를 바꿨을 정도. 호돈 역시 저주받은 혈통을 농익은 성찰의 힘으로 극복했다는 점에서 wicked smaht에 부합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보스턴은 청교도의 도시인 동시에 미국에서 가톨릭 색채가 가장 짙은 도시이기도 합니다. 가톨릭 신도가 압도적인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대거 이주했기 때문. 보스턴을 대표하는 프로 농구 구단 보스턴 셀틱스가 고대 아일랜드인을 뜻하는 켈틱인들을 뜻합니다. 또 첫 아일랜드계 및 첫 가톨릭신자 미국 대통령인 케네디의 홈타운도 보스턴이죠. 그러 이유로 영화 '스포트라이트'(2017)가 묘파하듯 아일랜드에서처럼 가톨릭 사제들의 어린이 성추행의 죄악을 묵인해 온 사악함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보스턴은 가장 오래된 근대국가로서 미국의 오랜 전통을 상징하는 도시입니다. 다시 말해 전통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과오를 간직한 도시란 소리. 동시에 '스포트라이트'에서 보여주듯 그런 해묵은 과오를 스스로의 고발로 극복한 도시라는 점에서 너더니엘 호돈의 전통을 물려받은 도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붉은 벽돌 건축으로 상징되는 구도심과 대학가의 오래된 전통의 건축과 사우스 보스턴으로 상징되는 세련된 현대적 건축이 공존하는 꾀바른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Wicked Smaht City라고도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미국 건국설화에 비견되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사악한 존재로 규정됐던 ‘사악한 서쪽 마녀(Wicked West Witch)’ 엘파바가 '위키드'를 통해 겉모습과 달리 진실과 정의의 수호자로 재탄생하는 역설적 지혜가 구체적 현실에서 발효된 도시.
그 도시를 떠나며 다시 그 도시 이름을 딴 밴드 '보스턴'의 대표곡 중 하나인 'More Than Feeling'을 올립니다. 보스턴을 둘러보고 느낀 Wicked Smaht라는 표현이야말로 감정 그 이상의 뭔가를 담고 있다는 생각에...
1976년 발표된 보스터 데뷔앨범 수록곡이자 롤링 스톤지 선정 '역대 가장 위대한 500곡'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곡이죠. 흥미로운 점은 보스턴의 벰버는 모두 보스턴 내지 매사추세츠 출신이지만 정작 밴드의 리더인 톰 숄츠만이 유일한 예외.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 도로시의 고향인 캔자스주처럼 미국 중부에 위치한 아이오아주 출신. 이를 발견했을 때 마음 또한 More Than a Feeling 아닐까요?

I looked out this morning and the sun was gone
Turned on some music to start my day
I lost myself in a familiar song
I closed my eyes and I slipped away
오늘 아침 창밖을 내다보니 해가 사라졌네
음악을 틀며 하루를 시작해
그러다 익숙한 노래에 넋을 잃었네
눈을 감고 상상의 세계로 빠져드네
It's more than a feeling
(More than a feeling)
When I hear that old song they used to play
(More than a feeling)
I begin dreaming
(More than a feeling)
'Til I see Marianne walk away
I see my Marianne walkin' away
그건 감정 그 이상이었지
(감정 그 이상이야)
예전에 자주 듣던 그 옛 노래를 들을 때면
(감정 그 이상이야)
꿈꾸기 시작해
(감정 그 이상이야)
마리안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일 때까지
나의 마리안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여
So many people have come and gone
Their faces fade as the years go by
Yet I still recall as I wander on
As clear as the sun in the summer sky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사라졌지
세월이 흐르며 그들 얼굴은 희미해지지만
난 그렇게 떠돌면서도 여전히 기억해
여름 하늘의 태양처럼 또렷이
It's more than a feeling
(More than a feeling)
When I hear that old song they used to play
(More than a feeling)
I begin dreaming
(More than a feeling)
'Til I see Marianne walk away
I see my Marianne walkin' away
그건 감정 그 이상이었지
(감정 그 이상이야)
예전에 자주 듣던 그 옛 노래를 들을 때면
(감정 그 이상이야)
꿈꾸기 시작해
(감정 그 이상이야)
마리안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일 때까지
나의 마리안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여
When I'm tired and thinking cold
I hide in my music, forget the day
And dream of a girl I used to know
I closed my eyes and she slipped away
She slipped away
지치고 마음이 차가워질 때면
음악 속에 숨어 하루를 잊곤 해
예전에 알던 그 소녀를 꿈꾸며
눈을 감았더니 그녀는 사라져 버렸어
그녀는 사라져 버렸어
It's more than a feeling
(More than a feeling)
When I hear that old song they used to play
(More than a feeling)
I begin dreaming
(More than a feeling)
'Til I see Marianne walk away
그건 감정 그 이상이었지
(감정 그 이상이야)
예전에 자주 듣던 그 옛 노래를 들을 때면
(감정 그 이상이야)
꿈꾸기 시작해
(감정 그 이상이야)
마리안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일 때까지
나의 마리안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여
https://www.youtube.com/watch?v=zOILAZHf2pE&list=RDzOILAZHf2pE&start_radio=1
-2026년 4월 20일(보스턴마라톤이 열리는 날 다행히 비가 그치고 맑아졌지만 영상 2도의 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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