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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안부곡

86년 묵은 저주를 깬 주술 같은 노래

야구 소재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날 미치게 하는 남자'의 벤(지미 펠론 분)과 린제이(드류 베리모어 분), [20세기 폭스]

 
 
보스턴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메이저리그 야구장인 펜웨이 파크로도 유명합니다. 물런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지만 1912년 완공된 야구장. '그린 몬스터'로 불리는 좌측 펜스의 높은 담장으로도 유명합니다. 바로 1901년 아메리칸리그 최초 8개팀 중 하나로 창단된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
 
야구팬으로서 어찌 팬웨이 파크를 찾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제 오후 보스턴 미술관 전시품들을 둘러보고 가까이 위치한 펜웨이 파크를 들릴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컨디션 난조에 저도 감기 기운이 있어 슬쩍 곁눈질만 하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바닷가에 위치해서 그런지 보스턴은 날씨가 변화무쌍하더군요. 오전에 비가왔다가 오후에 쨍하고 해가 나서 반팔 티셔츠, 반바지 차림으로 바닷가 러닝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갑작스러운 추위가 몰아닥치면서 땀에 젖은 몸이 결국 감기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바람막이 잠바라도 걸치고 나갔어야 했는데 비 온 뒤 갠 날씨만 믿었던 저의 패착.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보스턴 레드삭의 응원가로 유명한 '테시(Tessie)'를 들으며 마음을 달랬습니다. 이 노래는 야구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응원가 아닐까 싶습니다. 86년 묵은 '밤비노의 저주'를 꺤 주문 같은 노래니까요.
 
원곡은 1902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The Silver Slipper'의 삽입곡. 뮤지컬은 금성에서 건너온 6명의 외계인이 지구에서 겪는 좌충우돌을 그린 코믹 SF작품입니다. 그 삽입곡인 '테시'는 테시라는 이름의 앵무새에게 여성 주인이 '나에겐 오직 너밖에 없단다'라며 푸념하는 노래. 테시는 에스터(Esther),  테스(Tess), 데레사(Theresa) 내지 테라사(Teresa) 같은 여러 여성이름의 애칭이기도 합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전신인 보스턴 아메리칸스의 팬클럽인 '로열 루터스(Royal Rooters)'가 1903년 유행하던 이 노래를 응원가로 채택하게 됩니다. 원래는 앵무새인 테시를 보스턴 야구팀을 응원하는 젋은 여성으로 둔갑시키면서 상대팀 선수들을 공격하는 내용으로 가사를 자유자재로 바꿔 불렀다네요.
 
그 1903년은 보스턴이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해였는데  '테시'도 이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노래의 전설은 전해줍니다. 당시  9전 5선승제이던  월드시리즈에서 보스턴이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게임 스코어 1대 3으로 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로열 루터스는 원정경기에서 전용 밴드까지 고용해 상대팀인 파이어리츠 선수들이 진절머리를 칠 정도로 '테시'를 불러제꼈고 5차전부터 8차전까지 싹쓸이 승리의 발판을 가져오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후 레드삭스(1908년 개명)는 1918년 우승까지 네 차례 더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메이저리그 최강팀으로 군립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월드시리즈에선 더 이상 '테시'가 울려펴지지 않게 됩니다. 1918년 로열 루터스 전용석을 구단이 다른 팬들에게 판매하자 팬클럽 회원들이 도심 난동을 부린데다 1차 대전 발발과 팀 성적 부진이 겹치면서 팬클럽이 사실상 해체됐기 때문. 여기에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에 방출한 사건 이후 생겨난 '밤비노의 저주'로 86년간 월드시리즈 우승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2004년 '밤비노의 저주'를 물리치는 데는 '테시'의 부활도 한 몫을 했습니다. 매사추세츠주 출신의 아이리시 펑크록 밴드 드롭킥 머피스(Dropkick Murphys)가 이 노래를 리메이크해 발표했고 그해 말 월드시리즈에서 공식 응원가로 불리면서 86년만의 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됩니다. 뉴욕 메츠에게 3연패했던 보스턴 레드삭스가 이후 기적적인 4연승 끝에 우승을 일궈낸 것.
 

드롭킥 머피스가 발표한 '테시' 뮤직비디오와 그 뮤직비디오에서 테시 역을 맡은 콜린 라일리 [보스턴 레드삭스 홈페이지]

 

뮤직비디오에서 테시 역을 맡은 콜린 라일리.

 
레드삭스 열혈 팬과 그런 그를 사랑하게 된 여성의 사랑을 그린 할리웃 영화 '날 미치게 하는 남자'(원제 Fever Pitch, 2005)의 엔딩 씬은 2004년 레드삭스의 기적적 우승 장면이 오버랩됩니다. 그때도 이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고등학교 교사인 주인공 벤(지미 팰런 분)은 인생의 유일한 낙이 삼촌이 유산으로 물려준 보스턴 레드삭스 평생 회원권으로 펜웨이 파크에서 열리는 홈경기 전체를 직관하는 것. 매 경기 지정석 티켓 2장이 나오기에 친구와 지게 인 중 누구랑 볼 것인지 정교한(?) 일정을 짜는 게 한 해에 가장 중요한 행사일정도죠.
 
잘 나가는 비즈니스 컨설턴트인 린제이(드류 베리모어 분)는 야구문외한이지만 그런 순수함을 간직한 벤과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모든 게 야구 중심으로 돌아가는 벤의 라이프 스타일을 견딜 수 없어 야구팬들이라면 질색하는 그 유명한 대사를 시전하게 됩니다. "야구야, 나야. 둘 중 하나만 선택해." 고심 끝에 사랑을 택하기로 한 벤은 울며 겨자먹기로 친구에게 회원권을 팔아넘기려 합니다. 그 모습을 외야석에서 목도한 린제이는 벤의 사랑을 확인하고 야구장을 가로질러 달리는 스트리킹을 펼친 끝에 벤의 회원권 판매를 막습니다.
 
너무 뻔한 장면이지만 야구팬들에게 얼마나 감동적 장면인지 모르실 겁니다. 그렇게 레드삭스 회원권을 지킨 벤과 린제이 부부는 결국 레드삭스가 밤비노의 저주를 깨고 기적적 우승을 거두는 장면을 직관하는 지복을 맛보게 되니까요. 그떄 흘러나오는 노래가 바로 드롭킥 머피스의 '테시'. 영화에선 명시적 언급이 나오진 않지만 린제이가 바로 응원가 속 테시의 현현임을 암시한다고 풀이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드롭킥 머피스의 '테시' 뮤직비디오에도 테시 역을 맡은 여성이 등장합니다.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청소하는 볼걸 복장의 테시 역을 맡은 콜린 라일리라는 여성인데 테시를 실존 인물화한 최초의 사례라고. 따라서 드류 베리모어는 그 두번째에 해당하는 셈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공교롭게도 둘의 이미지가 엇비슷하지 않은가요?
 
원래 'Fever Pitch'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팀인 FC 아스널의 열혈팬이 1989년 18년만의 리그 우승을 목도하는 내용을 다룬 자전적 넌픽션을 극화한 영국 영화(1997). 이를 미국적 상황에 맞춰 번안하면서 86년간 우승을 맛보지 못한 보스턴 레드삭스 열혈팬 이야기로 바꾼 것이 '신의 한 수'가 돼 원작보다 엄청나게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영화 촬영에 들어갈 때만 해도 시즌 도중이었기에 설사 우승 못해도 팬심은 영원하다는 내용의 대본을 준비했는데 촬영 막판 레드삭스가 기적적으로 우승하는 바람에 엔딩 장면까지 수정한 결과 대박이 났기 때문.
 
드롭킥 머피스가 개사한 가사 중 1절에 등장하는 스탈, 디닌과 영은 레드삭스 초창기 전성기를 이끈 전설적 선수였던 강타자 제이크 스탈, 우완투수 빈 디닌,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상 이름의 주인공인 사이 영을 지칭합니다. 3절 가사 중 '3루에서 헌팅턴까지 이어지는 길'과 후렴구에 등장하는 '너프 세드 맥그리비'는 로열 루터스의 정신적 지주였던 인물과 관련된 내용. 바로 '3루(The 3rd Base)라는 이름의 술집을 운영하던 마이클 B 맥그리비. 맥그리비의 애칭이 너프 세드인 것은 술집을 찾은 팬들간 격론이 과열됐다 싶으면 손으로 바 바닥을 내려치며 '이제 그만(Nuff [enough] said)'이라 외친 것에서 유래했다고. 또 헌팅턴은 1912년 펜웨이 파크가 완공되기 전까지 보스턴 레드삭스 홈구장의 명칭입니다. 
 

'날 미치게 하는 남자'에서 남자친구가 레드삭스 평생 회원권을 파는 걸 막으려 펜웨이 파크에서 스트리킹 쇼를 펼치는 란제이 역의 드루 베리모어. [20세기 폭스]

 
 
 
[Verse 1]
Tessie is the Royal Rooters rally cry
Tessie is the tune they always sung
Tessie echoed April through October nights
After serenading Stahl, Dinneen and Young
 
테시는 로열 루터스의 구호
테시는 그들이 늘 부르던 노래
테시는 4월부터 10월까지 밤마다 메아리쳤지
스탈, 디닌, 영에게 세레나데를 부른 뒤

[Verse 2]
Tessie is a maiden with a sparkling eye
Tessie is a maiden with a love
She doesn’t know the meaning of her sight
She’s got a common full of love
 
테시는 반짝이는 눈을 가진 아가씨
테시는 사랑을 품은 아가씨
그녀는 자신의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만
그녀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네
 
[Verse 3]
And sometimes when the game is on the line
Tessie always carried them away
Up the road from third base to Huntington
The boys would always sing and sway
 
때로는 승부가 갈리는 순간
테시는 언제나 팀을 승리로 이끌었지
3루에서 헌팅턴으로 이어지는 길 위에서
소년들은 늘 노래를 부르며 몸을 흔들었어


[Chorus]
Two, three, four
Tessie, Nuf Ced McGreevey shouted
We’re not here to mess around
Boston you know we love you madly
Hear the crowd roar to your sound
Don’t blame us if we ever doubt you
You know we couldn’t live without you
Tessie, you are the only only only
See Dropkick Murphys Live
Get tickets as low as $91
 
둘, 셋, 넷
테시, '너프 세드' 맥그리비가 외쳤다네
우린 장난치러 온 게 아니야
보스턴, 우리가 널 미치도록 사랑한다는 거 알잖아
네 음악에 맞춰 함성 지르는 군중의 소리를 들어봐
우리가 널 의심한다고 해도 우리를 탓하지 마
네가 없으면 우린 살 수 없다는 거 알잖아
테시, 넌 유일한, 유일한, 유일한 존재야

[Verse 4]
The Rooters showed up at the grounds one day
They found their seats had all been sold
McGreevey led the charge into the park
Stormed the gates and put the game on hold
 
어느 날 루터스가 경기장에 나타났지
자신들의 좌석이 모두 매진된 걸 발견했어
맥그리비(McGreevey)가 앞장서서 펜웨이 파크 안으로 돌진했고
입구를 뚫고 들어가 경기를 중단시켰지


[Verse 5]
The Rooters gave the other team a dreadful fright
Boston’s tenth man could not be wrong
Up from third base to Huntington
They’d sing another victory song
 
루터스는 상대 팀을 끔찍하게 겁에 질리게 했어
보스턴의 열 번째 선수는 틀릴 리가 없지
3루에서 헌팅턴까지
그들은 또 다른 승리의 노래를 불렀지

[Chorus]
Two, three, four
Tessie, Nuff Ced McGreevy shouted
We’re not here to mess around
Boston, you know we love you madly
Hear the crowd roar to your sound
Don’t blame us if we ever doubt you
You know we couldn’t live without you
Tessie, you are the only, only, only
 
둘, 셋, 넷
테시, '너프 세드' 맥그리비가 외친다네
우린 장난치러 온 게 아니야
보스턴, 우리가 널 미치도록 사랑한다는 거 알잖아
네 음악에 맞춰 함성 지르는 군중의 소리를 들어봐
우리가 널 의심한다고 해도 우리를 탓하지 마
네가 없으면 우린 살 수 없다는 거 알잖아
테시, 넌 유일한, 유일한, 유일한 존재야

[Verse 5]
The Rooters gave the other team a dreadful fright
Boston’s tenth man could not be wrong
Up from third base to Huntington
They’d sing another victory song
 
루터스는 상대 팀을 끔찍하게 겁에 질리게 했지
보스턴의 열 번째 선수는 틀릴 리가 없어
3루에서 헌팅턴까지
그들은 또 다른 승리의 노래를 불렀지

[Chorus]
Two, three, four
Tessie, Nuff Ced McGreevy shouted
We’re not here to mess around
Boston, you know we love you madly
Hear the crowd roar to your sound
Don’t blame us if we ever doubt you
You know we couldn’t live without you
Tessie, you are the only, only, only

둘, 셋, 넷
테시, '너프 세드' 맥그리비가 외쳤다네
우린 장난치러 온 게 아니야
보스턴, 우리가 널 미치도록 사랑한다는 거 알잖아
네 음악에 맞춰 함성 지르는 군중의 소리를 들어봐
우리가 널 의심한다고 해도 우리를 탓하지 마
네가 없으면 우린 살 수 없다는 거 알잖아
테시, 넌 유일한, 유일한, 유일한 존재야

[Outro]
Don’t blame us if we ever doubt you
You know we couldn’t live without you
Boston, you are the only only only
Don’t blame us if we ever doubt you
You know we couldn’t live without you
Red Sox, you are the only only only
 
우리가 당신을 의심한다고 해도 우리를 탓하지 마
당신 없이는 우리가 살 수 없다는 걸 알잖아
보스턴, 당신은 유일한 유일한 유일한 존재
우리가 당신을 의심한다고 해도 우리를 탓하지 마
당신 없이는 우리가 살 수 없다는 걸 알잖아
레드삭스, 당신은 유일한 유일한 유일한 존재
 
 
https://www.youtube.com/watch?v=zn5VPXYMIGc&list=RDzn5VPXYMIGc&start_radio=1

 

-2026년 4월 18일(흐린 뒤 점차 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