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8년 집권 이후 16년간 장기 집권해오던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정부가 13일(현지시간) 사실상 선거혁명에 의해 축출됐습니다. 공산독재에서 해당된 동유럽을 다시 권위주의 세력의 둥지로 만들어가던 '동유럽의 푸틴' 또는 '헝가리의 트럼프'로 불리던 의회 독재 권력이 무너져내린 것입니다.
어찌 아니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고른 곡이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2번'입니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과 더불어 헝가리 집시음악을 대표하는 클래식곡입니다.
민족주의가 분출한 19세기는 헝가리 집시음악이 주목을 받은 세기였습니다. 독일 출신인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모음곡은 브람스가 헝가리 집시 무곡들을 채집해 정리한 총 21곡을 말합니다. 흥겨운 바이올린 연주곡으로 유명한 5번이 가장 유명하며 대부분 2,3분짜리 짧은 곡입니다.
독일계지이마 헝가리에서 태어났고 헝가리인이라는 정체성이 강했던 리스트는 헝가리 민족음악으로서 1개 악장으로 이뤘졌지만 자유분방한 변주가 가능한 광시곡(랩소디)라는 형식을 창안해 19개곡을 작곡했습니다. 헝가리무곡보다는 길어서 최대 14분이 넘는데 연주시간이 9분여 되는 2번이 가장 유명합니다.
두 곡 중 무슨 곡을 고를까 하다가 리스트의 곡을 골랐습니다. 클래식팬들은 그의 이름을 프란츠 리스트라고 독일식으로 부르지만 한국처럼 성이 앞으로 오는 헝가리식 표기로는 리스트 페렌체로 표기해야 합니다. 리스트가 독일어만 할 줄 알았고 헝가리어를 할 줄 몰랐다는 한계도 있지만 프랑스인 아버지를 둔 프레데리크 쇼팽이 어머니의 나라인 폴란드를 사랑했기에 폴란드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꼽히는 것과 닮은꼴로 존중해줄 필요가 있지 않나 합니다. 알파벳 표기만 보면 쇼팽의 폴란드식 발음은 '호펜'이지만 프랑스 발음을 존중해 폴란드에선 프리데리크 쇼펜으로 발음한다고 합니다.
1810년생인 쇼팽과 1811년생인 리스트를 생각해보면 현재 폴란드와 헝가리의 정치적 명운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동유럽국가인 폴란드와 헝가리는 둘 다 의원내각제국가임에도 공산정권의 사슬에서 벗어난 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의회권력을 장악한 극우 민족주의 세력이 장기 집권하며 독재로 흐른다는 비슷한 정치적 행보를 보였습니다.
폴란드의 경우 반공투사 출신의 야로스와프 카친스키가 이끄는 법과정의당(PiS)이 2015년 재집권한 이후 입법부 독재의 길을 걷다가 2023년 말 선거혁명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졌습니다. 헝가리는 그보다 연원이 더 깊어 1998년 역시 반공투사 출신인 오르반 빅토르의 집권 이후 16년간 동유럽 극우의 본산지로 불렸습니다. 오르반은 '동유럽의 푸틴' 내지 '헝가리의 트럼프'로 불릴 정도 투표 조작 논란 속에서도 번번이 선거에 승리해았는데 이번에 그 아성이 꺠진 겁니다.
오르반의 측근이었던 마자르 페테르가 중도좌파 성향의 신생 정당 티서(TISZA)을 창당해 오르반 정부이 친러반EU 노선에 반기를 든 것과 장기 집권으로 인한 부정부패와 경제난에 염증을 느낀 헝가리 국민들이 1989년 민주화 이후 최고 투표율(77%)을 기록한 결과입니다. 티서는 헝가리어로 '존중과 자유당(Tisztelet és Szabadság Párt)'의 줄임말. 또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를 관통하는 두나강(다뉴브강) 다음으로 긴 제2의 강이자 헝가리 민족의 영혼의 강으로 불리는 티서강의 이름을 딴 정당명.
푸틴과 트럼프의 노골적 선거개입에도 민주주의 회복에 나선 헝가리 국민들의 결단과 용기를 치하하는 의미로 피아노 연주자도 헝가리 출신 20세기 피아니스트를 골라봤습니다. 헝가리 공산화 이후 정치범으로 몰려 4년형을 살다 풀려나 1956년 헝가리 봉기로 혼란한 시기 프랑스로 망명한 치프러 죄르지(Cziffra György), 1921~1994)가 연주한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2번'입니다. 클래식팬들에겐 역시 프랑스식 이름인 조르주 치프라로 알려진 피아니스트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bV0E7qRh0Y&list=RDVbV0E7qRh0Y&start_radio=1
-2026년 3월 14일(흐린 뒤 맑은 미국 보스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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