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안부곡

한국적 '월광 야상곡'은 물망초에 뿌리를 두고 있나니...

물망초 [https://commonbynature.com]

 
 
한국 대중가요의 효시로 꼽히는 노래가 '낙화유수'라는 건 상식이죠. 정작 그 노래를 들어본 분은 많지 않을 듯. 저를 포함해 대부분 사람은 남인수의 동명곡(1942)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정숙이 부른 노래더군요. 1927년 개봉한 동명의 무성영화 삽입곡으로 1929년 정식 레코드 취입이 이뤄졌다고.
 
가요사가 이영훈 씨에 따르면 경남 진출 출신의 조선 최고의 변사이자 영화감독 및 제작자까지 겸했던 김서정(본명 김영환)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토대로 영화 각본을 쓰고 노래의 작사 작곡까지 맡았다고 합니다. 노래를 부른 이정숙은 감독을 맡은 이구영의 여동생이었다고.
 
언론사 선배이자 얼친인 이영훈 씨 덕에 처음으로 노래를 들어봤는데 신카나리아가 '강남달'이란 제목으로 발표한 곡과 동일곡이더군요. 훗날 박인수의 '낙화유수'가 워낙 크게 히트하자  '강남달이 밝아서 님이 놀던 곳'으로 시작하는 첫소절을 따서 '강남달'로 불리게 됐다고. 
 
강남달이 밝아서 님이 놀던 곳
구름 속에 그의 얼굴 가리워졌네
물망초 핀 언덕에 외로이 서서
물에 뜬 이 한밤을 홀로 새우나
 
멀고 먼 님의 나라 차마 그리워
적막한 가람가에 물새가 우네
오늘 밤도 쓸쓸히 달은 지노니
사랑의 그늘 속에 재워나주오
 
강남에 달이 지면 외로운 신세
부평의 잎사귀에 벌레가 우네
차라리 이 몸은 잠들리로다
님이 절로 오시어서 깨울 때까지
 

낙화유수 [https://stockcake.com]

 
 
제가 흥미롭게 본 구절은 따로 있었습니다. '물망초 핀 언덕에 외로이 서서'라는 세번째 소절입니다. 대중가요는 물론이고 한시나 시조 포함해 물망초가 등장한 최초의 노랫말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망초를 '물가에 피는 망초'로 여기시는 분이 많습니다. 아닙니다. '나를 잊지 말라'는 勿忘草라는 한자어입니다. 꽃말을 따서 Forget-me-not으로 불린 유럽산 하늘색꽃의 번역어입니다. 한자어라는 것에 우리나라 자생꽃으로 여길 수 있는데 20세기초 관상용으로 일본을 거쳐 한국에 수입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외래종입니다.
 
그 인상적인 번역어로 인해 20세기초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일종의 문학적 수사로 많이 등장했습니다. 영화 '낙화유수'는 가난한 화가와 사랑에 빠진 진주 기생이 애까지 낳았지만 화가 집안의 반대에 부딪히자 논개처럼 진주 남강에 투신자살한 비극적 사랑을 그린 작품. 1898년생인 김서정이 바로 그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였다고.
 
그럼 20세기초 관상용으로 수입된 외래종이 과연 1898년 전후 진주 남강에 피었을까요? 아닐 겁니다. '낙화유수' 영화와 노래가 발표된 1927년에도 진주 남강 주변에 물망초가 피었을지도 의문입니다.. 그보다는 '나를 잊지 마세요'는 그 문학적 상징성을 살리고자 '물망초 핀 언덕에 외로이 서서'라는 구절을 넣지 않았을까요?
 
물망초가 들어간 노래 중에 제가 좋아하는 노래는 따로 있습니다. 1966년 발표된 '님이 오시는지'(박문호 작사, 김규환 작곡). '물망초 꿈꾸는 강가를 돌아'로 시작하는 가곡입니다. 이 노래 가사를 쓴 박문호 씨는 한의사였다는데 시인이라 할만큼 고운 가사와 풍부한 상상력으로 달빛 아래 숨죽여 님 발자욱 소리에 귀 기울이는 한국적 연가의 전통을 확립합니다. 향남이 가사를 쓴 '비의 나그네'(1972)와 박주연이 가사를 쓴 '그댄 왠지 달라요'(1987)로 이어지는 '월광 야상곡'의 전통입니다.
 
그 월광 야상곡의 전통이 '나를 잊지 말아주세요'라는 꽃말을 지닌 물망초에 응축돼 있다고하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또한 그 전통의 뿌리가 강남달과 물망초로 대표되는 한국 최초의 대중가요 '낙화유수'로부터 연원했다고 한다면 아전인수일까요? 바리톤 최현수가 부르는 '님이 오시는지'를 들으면서 응답해주시기를...

 

 

물망초 꿈꾸는 강가를 돌아
달빛 먼 길 님이 오시는가
갈숲에 이는 바람 그대 발자췰까
흐르는 물소리 님의 노래인가
 
내 마음 외로워 한 없이 떠돌고
새벽이 오려는지 바람만 차오네
백합화 꿈꾸는 들녘을 지나
달빛 먼길 내 님이 오시는가
 
풀물에 베인 치마 끌고 오는 소리
꽃향기 헤치며 님이 오시는가
내 마음 떨리어 끝없이 헤매고
새벽이 오려는지 바람이 이네
바람이 이네
 
 
https://www.youtube.com/watch?v=m6ZHunprMkQ&list=RDm6ZHunprMkQ&start_radi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