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민은 몇 년 전부터 매년 연말 '올해의 책'을 다섯 권씩 꼽아왔다. 그해 읽은 책 중에서 지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서다.
2024년 '베스트 5' 중에는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이란 책이 들어있었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서기관까지 승진했던 문체부 공무원 출신의 노한동 씨가 한때 최고의 행정력을 자랑하던 한국 공직사회가 왜 그렇게 무사안일과 무능함에 젖은 조직이 됐는지를 뼈 아프게 내부고발한 책이다.
책은 그해 크리스마스가 넘어 출간됐기에 우민도 당시엔 중간까지만 읽어보지 못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부랴부랴 '올해의 책'에 포함시킨 이유가 있었다. 제3세계 빈국에서 출발해 70여년만에 선진국에 올라선 한국이 급속히 몰락하고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그 짧은 세월 동안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 세 마리 토끼를 잡아낸 '다이내믹 (dynamic) 코리아'가 '스태틱 (static) 코리아'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위기감의 원인을 그 책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한때 한국 공직사회가 그토록 면피정신에 투철한 조직이 된 것은 공무원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어쩌면 더 유능하고 똑똑하다. 다만 그 유능함과 똑똑함을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쓰기보다 자기 보전과 출세를 위해 쓰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물론 그런 그런 선택은 공무원 자신들이 원한 게 아니다. 그들이 처한 생태계에 적응하기 위해 '최소 비용, 최대 효율'에 입각한 '합리적 선택'의 산물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뭔가 일을 벌이려하면 정치권은 물론 조직 내에서 온갖 압박과 견제가 들어오기에 차라리 '하던 대로' 안주하면서 '세금 루팡'으로 사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
뭔가를 하려고 노력하다가 그렇게 한두 번 치이다보면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신 바쁘긴 하지만 헛짓거리에 가까운 '가짜노동'에 찌들어 살면서도 '철밥통' 지키기 위해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산다는 설명이다.
공무원들의 그 뻔한 수법 중 하나가 '위원회 만들기'다. 위원회는 공무원이 해야할 일을 민간에 위탁하면서 그에 수반되는 책임까지 모면하게 해주는 치트키다. 위원들을 선정할 때 자신들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앉힌 뒤 뒤에서 교묘히 조종해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낸다. 대신 공무원들은 위원회를 구성하고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척 코스플레이만 하면 된다.
공무원들은 그런 가짜노동으로 꼬박꼬박 월급에 연금을 챙기는 동안 국민은 공무원 월급에 그들 병풍 역할을 해줄 위원회 활동비까지 추가 부담하는 봉이 되고 있다. 국민 처지에선 세금낭비, 시간낭비지만 공무원들을 그를 통해 월급과 면피 알리바이를 챙기면서 세월까지 낚을 수 있는 일석삼조의 필살기가 됐다. 책에 따르면 한국은 2024년 6월말 기준 그런 행정위원회가 590개에 이르는 '위원회 공화국'이 됐다. 그 대부분인 550개는 단순 병풍 역할에만 충실한 자문위원회다.
우민은 주변 사람들에게 조선이 왜 망했는지 아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일본의 제국주의 침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조선은 20세기 초 외부 타격에 의해 수수깡처럼 무너지기 전 19세기 100년간 서서히 진행된 내부 부패로 기둥뿌리가 썪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부패(curruption)'가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친 축적으로 인한 '부식(dacay)' 내지 '내파(implsion)'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다.
19세기 조선은 왜란이나 호란 같은 큰 외침을 겪지 않았다. 16~18세기 조정을 물들였던 사색당파 투쟁도 잠잠했다. 임금들의 치세 기간도 비교적 길었다. 그럼에도 일본이 툭 건드리자마자 주저앉은 이유를 알아야 한다.
조선이 그렇게 무너져 내린 건 당파싸움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당파싸움마저 무력화시킨 세도정치 때문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는 게 우민의 판단이다.
조선 초만 하더라도 건국공신 중심의 관학(官學)세력에 맞서는 사림(士林)세력이 존재했고, 사림세력이 권력을 장악한 선조 이후에도 동인과 서인이 경쟁했다. 이는 다시 남인과 북인,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어 서로를 견제하며 정권교체라는 게 이뤄졌다. 하지만 영정조 시대를 거치며 노론 세력을 중심으로 한 경화세족(京華勢族)이 권력을 장악했다.
정조가 죽은 1800년 이후 노론 시파를 중심으로 몇 개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정치가 고착됐다. 능력과 성과보다는 가문과 연줄을 중시하고, '좋은 게 좋다'는 끼리끼리 문화로 공직사회 전체에 부패가 만연했다. 그 결과, 국가를 쇄신할 내적 동력까지 갉아먹었다. 유능한 인재 대신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예스맨들이 국가의 실핏줄을 장악하면서 시스템 전체가 괴사하고 만 것이다.
다이내믹 코리아가 스태틱 코리아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19세기 조선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 핵심은 공직사회가 '고인 물'이 되어 썪어가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은 그를 위해 많은 시사점과 해법을 던져주는 책이라고 우민은 생각했다. 내심 저자인 노한동 씨가 언론사의 고정 필자가 돼 정부 조직의 구태의연한 행태를 비판하고 변화의 바람을 몰아주기도 기대했다.
하지만 언론의 관심은 지난해 상반기 서평과 인터뷰로 잠깐 반짝했을 뿐이다. 이후 노한동의 이름은 한국 언론에서 깨끗이 사라졌다. 새해 신문사들이 칼럼 필진을 발표할 때 그 이름을 볼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어디서도 그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내부고발자라는 이유로 정부의 압력에 의해 기피인사가 된 건 아닐까? 혹은 그런 안팎의 시선 때문에 본인 스스로 부담이 돼 원고 청탁을 거절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검열 효과로 봐야하지 않을까?
한국이 19세기 조선의 길을 밟지 않기 위해선 제2의 노한동, 제3의 노한동이 계속 나와야 하건만 그 첫 싹부터 짓밟힌 건 아닐까하는 걱정이 앞서는 요즘이다. 어리석 백성의 쓸데 없는 근심이기를 바랄 뿐이다.
-2026년 2월 11일(흐리지만 영상의 기온을 되찾음)
#우민은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인 동시에 '또 하나의 백성(又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붙인 별호입니다. 우민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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