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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안부곡

죽기 전 최후의 한 끼 메뉴

 

 

죽기 전 마지막 메뉴와 술을 고를 수 있다면 무슨 메뉴를 고를 것이냐는 난제들 다 아시죠? 다들 답을 갖고 계시나요? 저는 셋 중의 하나를 고를 듯합니다. 홍어+탁주, 냉면+소주, 순대국+소주....

 

첫번째 홍어는 직장생활하면서 처음 접했는데 첫 만남에 바로 한국이 낳은 최고의 안주라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그 홍어엔 역시 탁주가 제격이죠. 두번째 냉면은 학창시절부터 좋아한 음식인데 대학 들어간 뒤 선주후면의 찌릿한 맛에 눈을 떴구요. 마지막 순대국은 역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최애 메뉴가 됐습니다. 냉면과 순대국은 돼지수육까지 곁들이면 완벽한 안주죠. 

 

30대부터 제 술친구들을 만나면 그런 얘기를 했어요. 칠순 넘어서는 호주머니 돈도 없을 터이니 점심 무렵 냉면집이나 순대국집에서 만나 한 잔씩 하고 일찍 귀가하자고. 시간이 흐르면서 홍어에 이어 냉면도 너무 비싼 메뉴가 돼 사실상 서민적 메뉴는 순대국만 남은 상황이 됐네요. 그래서 어쩌면 세 가지 메뉴 중 가장 전천후 메뉴일 순대국+소주가 제 마지막 한끼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랍스터, 샥스핀, 푸아그라, 트러플, 코코아크랩처럼 20세기까지만 해도 먹기 힘들던 산해진미의 맛에 눈을 뜨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와인, 위스키, 바이주, 사케까지 온갖 술도 즐길 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평생 가장 많이, 자주 먹은 소울 푸드의 힘을 이길 순 없더라고요. 결국 마지막 순간엔 평소 가장 즐겨 먹던 음식을 고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제 인생의 수많은 순간을 함께 한 음식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흑백요리사' 관련 오늘의 안부곡을 찾으려고 음식 관련 우리나라 노래도 찾아봤습니다. 의외로 이거다 하는 노래가 참 드물더군요. 특히 한국인의 소울 푸드 관련 진한 맛을 내는 노래가 참 드물었습니다. 히트곡은 몇 곡 있지만 솔직히 자두의 '김밥' 정도를 제외하면 제 취향의 노래는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버클리음대 1세대 유학생 뮤지션 중 한 명인 정원영의 '순대국'을 발견했습니다. 세려된 재즈와 시티팝 장르를 주로 개척해온 정원영이 순대국이란 서민음식을 이렇게 세련된 노래로 만들어줘 너무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치고 힘든 한국인에게 순대국이 왜 소울 푸드일 수밖에 없는지를 절절하게 그려낸 가사도 참 예술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특히 '작년 신인왕 기억 못 한다면/ 올바른 인생 사는 게 아니니'에서 빵 터졌습니다. 윗세대와 동세대 뿐 아니라 새롭게 치고 올라오는 젊은 친구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놓치지 않는 것이 제대로 된 어른이라는 메시지를 참 절묘하게 포착한 가사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젊은 것들을 보면 말세여, 말세"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면 당신은 올바른 인생을 사는 게 아닙니다. 반대로 그 친구들에게 비싼 한우나 홍어, 냉면은 못사줘도 순대국에 소주를 사주며 "쫄지 마, 겁 먹지 마, 힘을 내"라고 말할 수 있는 당신이 제대로 된 인생을 사는 겁니다.

 

마침 영하 12도의 강추위가 엄습한 오늘 천사표 처제가 형부가 순대국 덕후인 걸 알고 경기 안양시에 있는 순대국 맛집까지 가서 순대국과 순대를 포장해다 집앞까지 배달 해줬습니다. 덕분에 아내와 함께 소울풀한 저녁을 하면서 이 노래가 생각나 오늘의 안부곡으로 올려봅니다. 고마워, 처제!

 

 

얼굴에 웃음이 떠났다지만

걱정 마 곧 되찾을테니

시간은 꾸역꾸역 채워질 테고

다시 잰걸음에 맞춰 걷게 돼

 

들뜬 망상은 지긋이 누르고

말수가 줄은 건 기분 탓이니

그런 날엔 순대국 뜨거운 순대국

새벽달 느리게 길이 흐른다~

 

뒤꿈치 굳은살 갈라져가도

걱정 마 곧 새살 나올 테니까

폐 속으로 찬 공기 찾아들 때면

좋았던 기억 하나 붙잡으면 돼

 

작년 신인왕 기억 못 한다면

올바른 인생 사는 게 아니니

그런 날엔 순대국 진한 양념 순대국

새벽달 느리게 길이 흐른다~

 

참았던 가슴에 두 손 떨리고

고였던 눈물 흘러내려도

겁먹지 마 이 세상엔 허술한 방랑자뿐

천천히 걸어가렴 널 바라볼 테니

 

쫄지 마~ 그대로 괜챦아~

힘을 내~ 니 잘못 아니야~

겁먹지 마~ 늦어도 괜찮아~

힘을 내~ 널 기다릴거야~

 

얼굴에 웃음이 떠났다지만

걱정 마 곧 되찾을 테니

 

 

https://www.youtube.com/watch?v=3i00xGvgYVg&list=RD3i00xGvgYVg&start_radio=1

 

 

-2026년 1월 20일(영하 12도의 강추위로 엄습한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