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릭 사티는 19세기말과 20세기초 활약한 프랑스 작곡가죠. 은둔과 신비의 작곡가로 불리는데 단순한 피아노 선율에 숨을 죽이게 만든느 곡을 여럿 남겼습니다. 프랑스 가곡 중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나는 당신을 원해요'(Je Te Veux)와 고대 스파르트의 전사들이 알몸으로 추던 춤에서 영감을 받은 짐노페디(Gymnopédies) 연작(3편)과 영지주의(gnosticism)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노시엔(Gnossiennes) 연작(6편) 같은 피아노 소품이 유명합니다.
일본계 독일 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는 맨발의 연주자로도 유명하죠.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난치병에도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친다지요. 제 귀에는 사티의 피아노곡처럼 숨 죽여 귀 기울여 듣게 되는 소품 연주에서 더 빛을 발하지 않나 합니다.
오늘처럼 겨울햇살이 신비하게 비치는 날에는 사라 오트가 연주한 에릭 사티의 그노시엔 3번이 어떨까합니다. 그노시엔은 사티가 새로운 유형의 음악이란 뜻으로 창안한 용어입니다. 서양인들이 말하는 동양적 선율을 바탕으로 느리지만 깊은 명상에 빠지게 만드는 음악.
후대의 음악학자들은 그 어원에 맞춰 두 갈래 해석을 펼칩니다. 하나는 그리스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크레타섬의 미노스왕의 미궁에서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고 미궁 탈출에 성공했던 것을 기념하는 춤을 지칭하는 같은 프랑스 단어 그노시엔에서 따왔다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신비롭고 계시적이며 밀교적인 지식을 뜻하는 그리스어 '그노시스(γνῶσις/gnosis)'에서 기원한 영지주의적 음악이란 해석입니다. 이 곡이 발표될 무렵 사티가 프랑스 영지주의 단체인 장미십자단의 작곡과 지휘를 맡았던 점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이들 해석은 그냥 해석일 뿐입니다. 짐노페디가 스파르타의 춤과 연관되기에 그 10년 뒤 발표된 그노시엔은 크레타-아테네로 이어지는 춤과 연관됐을 것이라 보거나, 단순하면서도 신비한 선율에서 영지주의와 연관성을 찾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보다는 서양음악의 원초적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거기서 새롭게 재구성해낸 미니멀한 현대적 음악 장르의 하나로 받아들이기를 사티는 원하지 않았을까요? '근원으로 돌아가라'는 라틴어 경구 '아드 폰테스(Ad Fontes)'의 힘과 매력은 이 짧은 피아노곡에서도 명징하게 드러납니다. 공자가 말한 온고지신(溫故知新)과 연암 박지원이 말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새로운 것은 옛 것을 곱씹고 음미할 때 파생되는 법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GC_-GcMHIY&list=RDVGC_-GcMHIY&start_radio=1
-2025년 11월 30일(맑고 비교적 따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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