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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안부곡

"어쩌면 내가 틀릴 수도 있어요"

 

1953년 쳇 베이커(왼)와 제리 멀리건이 연주하는 모습 ©Bob Willoughby

 

 

색소폰 연주자 제리 멀리건과 트럼펫 연주자 챗 베이커가 1953년 발표한 이 재즈연주곡의 제목은 21세기에 더 의미삼장하게 다가섭니다. 어쩌면 내가 틀릴 수도 있어요(I May Be Wrong).’

 

경향신문의 한 기자칼럼을 읽고 이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극우’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의 대화 내용을 분석했더니 거짓말과 헛소문, 적의로 가득찬 허위조작정보가 사실처럼 공유되고 있었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없더라는 취재경험담을 털어놓은 칼럼이었습니다.

 

예컨대 이들은 정신건강증진법 일부 개정안이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에 나간 이들을 정신병원에 감금하는 법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해당 입법예고를 클릭해 보기만 해도 단순 자구 수정임을 알 수 있는데 말이다. 최근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의 장기이식법 개정안을 두고 “강제로 장기를 적출하려 한다”는 음모론을 퍼뜨려 입법을 좌초시킨 이들도 비슷한 무리일 것이다.

 

칼럼은 허위조작정보에 빠지고 퍼뜨리는 것은 인지능력이나 문해력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신념에 따라 입맛에 맞는 사실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임을 지적합니다. “특정 성향이나 신념이 강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상반되는 정보는 사실이라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생각에 부합하는 허위정보는 쉽게 믿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는 설명은 미국 노스이스턴대 저널리즘스쿨 정묘정 교수의 설명. 또 해당 채팅방 참여자들이 "사실 아주 비판적이고 분석적이며 팩트를 중요하게 생각한지만 그런 비판적·분석적 능력을 적이나 비판 대상에게만 사용하고 자신이 속한 집단에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김현 연세대 디지털사회과학센터 연구교수의 분석.

 

이런 상황에선 내가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하는 ‘지적 겸손’을 갖추는 게 더 필요하다. 김현 교수의 이런 결론은 이 연주곡의 제목 그대로입니다.

 

맑시즘을 전체주의라고 비판했다 하여 한국에선 툭하면 우파라 공격받는 오스트리아 철학자 카를 포퍼의 통착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당신도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것이 과학과 지성의 징표인데 막시즘은 스스로의 이론을 과학으로 절대시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상대방을 지능이 떨어진 존재로 비하하는 것은 비단 극우 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진보연하는 한국 지식인들도 엄청나게 많이 저지르고 있는 잘못입니다. 특히 맑시즘을 과학이라 우상시한 한국 좌파의 전과 역시 어마무시하게 큽니다. 둘 다 지적 오만함의 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건만 누가 누구더러 괴물이라 손가락질한다는 말인가요?

 

자신의 신념은 과학적이고 상대의 신념은 비과학적이라는 좌파의 근본적 오만함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쏙 빼놓고 극우만 괴물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이 어떻게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요? 상대의 변화를 원하다면 먼저 나부터 변화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윈-윈의 길을 모색하는 것임을 잊어선 안됩니다. 

 

I May Be Wrong은 1929년 발표된 아주 오래된 팝송이 원곡입니다. 주디 갈란드나 도리스 데이, 빙 크로스비, 페리 코모 등이 줄줄이 리메이크한 노래 제목엔 괄호 안에 들어가는 내용이 더 있습니다. (But I Think Youre Wonderful)입니다. 눈치 채셨겠제민 '내 눈에 콩깍지가 끼어 잘못 본 것일 수 있겠지만 당신는 너무도 멋있는 거 같아요'라는 달달한 사랑 노래입니다.

 

그런 달달한 노래를 연주곡으로 바꾸는 순간 마법같은 변화가 발생합니다. 여전히 경쾌한 리듬과 유머러스한 선율이 어우러지면서 일종의 겸손함이 강조됩니다.  그래요, 나는 한치 앞도 못보는 멍청이에요, 그건 인정할게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래도 당신이 너무 좋은 걸 어떡해요? 라고. 그래서일까요? 괄호 속의 부제가 빠지고 어쩌면 내가 틀릴 수도 있어요’만 남았을 때 훨씬 더 근사한 곡이 됐습니다. 

 

다들 따라서 한 번 외쳐봐요. 그래요, 제가 틀릴 수 있어요, I May Be Wrong!

 

 

https://youtu.be/207vlZgs4mc?si=tP3M-KpdemOl9E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