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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안부곡

조르바의 춤은 전통무가 아니라 창작무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 아지막 장면에서 펼쳐지는 조르바의 춤. [20세기폭스사]

 

 

1996년 5월 2주간 유럽 배냥여행을 갔었을 때였습니다. 마지막 일정이 프랑스 파리였는데 일행 둘과 함께 아껴뒀던 여비를 탈탈 털어 맛있는 만찬을 먹기로 했습니다. 우연히 지나가다 발견한 소르본대학 인근의 그리스식당을 골랐습니다. 유럽에서 잘 접하지 못한 해물요리들이 군침을 돌게 했기 때문.

 

그런데 자리를 잡고 보니 대부분의 손님이 여성이더군요. 저희 바로 옆 테이블에는 할머니-며느리-손녀로 보이는 미녀 삼대는 유럽여행을 다니면서 본 여성들 중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세 사람은 개성이 다 달랐는데 할머니는 카트린느 드뇌브처럼 우아한 반면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손녀는 어린 시절의 소피 마르소처럼 청순했습니다. 슬쩍 물어보니 서투른 영어로 손녀의 생일파티를 위해 온 것이라고 하더군요.

 

'프랑스 미녀들을 보려면 그리스식당을 와야겠네'라고 생각하면서도 살짝 어리둥절했던 것도 사실. 그 이유를 식사 중간에 알게 됐습니다. 그 식당의 종업원들은 모두 남성들이었데 특정 시간이 되자 한꺼번에 군무를 추는 게 아니겠습니까? 안소니 퀸 주연의 '그리스인 조르바'의 마지막 장면에서 두 주인공이 함께 추던 춤.

 

식사 테이블 사이의 빈 공간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힘찬 군무를 췄고 손님들 사이에서 갈채와 환호가 터져나왔습니다. 1964년작인 이 영화 속 춤이 30년 뒤에도 힘찬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사실 조르바의 춤은 그리스 전통춤이 아니라 새롭게 창작된 춤입니다. 그리스 안무가 조르고스 프로비아스(Giorgos Provias)가 '기차는 8시에 떠나네'를 작곡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연주곡 'Zorba's Dance'에 맞춰 안무한 창작무입니다. 마치 한국의 전통무 취급받는 부채춤이 최은희의 제자였던 김백봉이 1950년 북에서 남으로 넘어온 뒤 안무한 창작무이듯이.

 

조르바의 춤은 비잔틴제국 시절 군대에 고기를 공급하던 푸주한들의 춤에서 발전한 하시피코(Χασάπικο)와 영화의 무대였던 시칠리아섬의 전통춤으로 발을 끌면서 춘다는 뜻의 시르토스(συρτός)의 춤사위를 차용하긴 했지만 시르타키(συρτάκι)라는 별도의 명칭을 지닌 차별화된 춤입니다. 영화에서 이 춤은 자유와 해방을 상징합니다. 샌님형 도덕군자로 영국인 피가 흐르던 배질(앨런 베이츠 분)이 조르바의 야생의 지혜를 받아들여 영혼의 자유를 획득하는 법열의 순간을 형상화하기 때문이죠. 그날 그 그리스식당에서 여성손님들의 표정에서도 그런 해방감이 느껴지더군요.

 

영국 극작가 피터 섀퍼 원작의 연극 '고곤의 선물'에 등장하는 발구르기춤 역시 해방과 희열의 춤이긴 하지만 전혀 다른 춤입니다. 연극의 주인공으로 역시 영국 출신의 극작가 에드워드 담슨은 그리스비극에 담긴 핏빛 복수의 정신을 찬미하며 아가멤논의 부인 클라이템네스트라가 딸의 복수를 위해 트로이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온 남편을 살해한 뒤 흥분상태에서 췄다는 춤을 춥니다.

 

출전을 위한 희생양으로 바쳐진 맏딸 이피게네이아의 복수를 완수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했다는 광기어린 해방감을 표현하는 춤이죠. '클라이템네스트라의 발구르기 춤(Stamping dance of Clytemnestra)'으로 명명된 이 춤은 오늘날에는 전승되지 않는 상상의 춤입니다. 싸움터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전사들이 발을 강하게 구르며 승리를 자축하는 춤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발을 끌면서 추는 조르바의 춤과는 다르다고 봐야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S0w3Wkric8&list=RDBS0w3Wkric8&start_radi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