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맞이꽃과 야래향이 다른 꽃이라는 글을 많이들 좋아해주시네요. 특히 리샹란의 야래향은 많이들 들어보셨는데 김정호가 부른 '달맞이꽃'을 처음 들어봤다는 분들이 계서서 달빛 교교한 밤에 짙은 향기와 함께 피는 이들 꽃만큼이나 대조적인 두 곡을 소개하려 합니다.
중국어 발음 '예레이샹'으로도 유명한 야래향은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 모두 일본인이면서 중국인 행세 하며 중화권 스타로 인기를 누렸던 리샹란(본명 야마구치 요시코)의 대표곡의 하나입니다. 1944년 발표된 이 노래는 중국과 동남아에서 대동아공영권을 설정하겠다는 일본 침략야욕을 미화하고 고무하는 노래였습니다. 영어로는 보통 Chinese violet으로 표기되는 야래향은 동남아와 중국 남부 아열대와 열대지역에서 자라는 대표적 덩굴식물로 작은 꽃이 송이송이 열리지만 잎은 하트 모양으로 둥글고 큽니다.
가사를 음미해볼까요? 남풍이 불어오는 밤 밤꾀꼬리 우는데 잠들어 있는 다른 꽃들과 달리 야래향만이 홀로 진한 꽃향기를 풍기며 피어 유혹한다는 내용이죠. 그 야래향 꽃을 들고 치파오 복장의 중국 여성이 간드러진 목소리로 "당신을 그리워합니다"라고 노래합니다. 사랑을 속제국 일본의 손길을 닿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중국과 동남아국가를 야래향에 빗대 대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한때 중국 최고의 히트곡이었지만 중국공산당의 집권 이후 금지곡이 됐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ZCHk-McCws&list=RDfZCHk-McCws&start_radio=1
리샹란은 1945년 일본 패망 후 중국 현지에서 체포돼 사형선고까지 받아다 우여곡절 끝에 풀려난 뒤 일본으로 돌아와 야마구치 요시코라는 본명으로 다시 활동하며 전성기 못지 않은 인기를 계속 누리다 참의원(일본의 상원의원 격) 의원까지 지냈습니다.
노래의 선율이 워낙 매력적이라 1970년대 대만 가수 등려군이 리메이크한 노래가 중국에서도 다시 크게 인기를 얻습니다. 등려군 노래를 좋아하는 중국남녀의 사랑을 그린 진가신 감독의 '첨밀밀'(1996)에도 등장하죠. 한국에서도 야래향이란 제목의 트로트곡으로 여러 차례 리메이크됐는데 야래향의 중국어 발음 '예라이샹'이 되풀이 되는 걸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Sou6nrhZqM&list=RDkSou6nrhZqM&start_radio=1
영어로 보통 evening primrose로 표기되는 달맞이꽃은 야래향과 달리 꽃은 컵 모양으로 크지만 잎은 가늘고 긴 북미 원산의 식물이죠. 19세기경 일본을 거쳐 국내에 전파돼 야생에서도 자생합니다. 이 달맞이꽃에 대한 노래 중에 지중 작사 김희갑 작곡의 노래가 있습니다. 1972년 시각장애 가수인 이용복이 처음 발표한 노래인데 1975년 김정호가 판소리 창법으로 소화한 절창이 있습니다.
서른세살에 폐결핵으로 요절한 김정호는 타고난 소리꾼이었습니다. 외조부가 월북한 전설의 명창 박동창이고, 모친인 박숙자는 이청준의 소설 '서편제'의 주인공 송화의 모델이었다고 하죠. 노래를 들어보시면 진성으로 고음을 소화하는 김정호의 창법에서 서편제의 향기를 맡으실 수 있습니다.
노랫말을 비교해보면 야래향이 사랑하는 님을 유혹하는 노래라면 달맞이꽃은 응답받지 못하는 그리움과 가디람의 한이 절절히 배어나는 노래입니다. ' 서산에 달님도 기울어/ 새파란 달빛아래 고개 숙인/네 모습 애처롭구나'라는 후렴구에서 피를 토할 듯한 김정호의 절창이 빛을 발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lINac-Hh9g&list=RD9lINac-Hh9g&start_radio=1
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됐나
달밝은 밤이오면 홀로피어
쓸쓸히 쓸쓸히 미소를 띄는
그 이름 달맞이 꽃
아아 아아 서산에 달님도 기울어
새파란 달빛아래 고개 숙인
네모습 애처롭구나
얼마나 그리우면 꽃이 됐나
한새벽 올때까지 홀로피어
쓸쓸히 쓸쓸히 시들어 가는
그 이름 달맞이 꽃
아아 아아 서산에 달님도 기울어
새파란 달빛아래 고개 숙인
네모습 애처롭구나
-2025년 8월 11일(구름 살짝 끼고 선선한 바람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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