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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포인트 시사레슨

분열생성이 초래하는 '작은 연못'의 비극

챗GPT의 도움을 받아 만든 작은 연못 두 마리 붕어의 분열생성 과정.

 

 

 

'분열생성(schizogenensis)'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세포가 둘로 분열해 증식한다는 생물학적 용어인 fission과 다른 개념입니다. 서로 다른 두 문화나 집단이 접촉하고 상호작용할 때, 갈등이 해소되기보다 오히려 서로의 차이점이 점점 더 증폭되면서 분열로 치닫게 돼 사회적 붕괴에 이를 수 있다는 개념,

 

영국 출신의 문화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이 서태평양의 파푸아뉴기니에서 석기시대 삶을 이어가던 이아트물족과 생활하면서 발견한 현상에 이름 붙인 것입니다. 1935년 영국 왕립인류학연구소 학술지인 ‘맨(Man)’에 발표한 ‘문화 접변과 분열생성(Culture Contact and Schismogenesis)’이란 학논문에서 처음 제시했고, 이듬해인 1936년 그 보고서격으로 발표한  '네이븐(naven)'이란 책에서 자세히 설명한 개념입니다.

 

이야트물족은 남녀의 성적 역할 구별이 심해 말투와 어휘, 태도까지 극단적으로 달랐습니다. 이는 남아와 여아가 처음엔 별 차이가 없다가 성차를 학습하면서 서로를 의식하면서 남아들은 남성적/비여성적인 것, 여아들은 여성적/비남성적인 것에 집착하면서 발생한 분열생성의 결과였습니다. 
 

이런 현상은 이웃한 집단 간에서서도 발견됐습니다. A집단과 B집단 사이에 처음엔 유별나지 않던 차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되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서로를 구별짓기 위해 작은 차이를 극단적으로 밀고가 결국에 공존하기 힘들 정도의 극단적 차별화를 초래하곤 했습니다.
 
이런  분열생성 현상은 비단 원시부족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닙니다. 영국인은 프랑스인과 최대한 달라지고 싶어하고, 프랑스인은 독일인과 최대한 달라지고 싶어합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인은 일본인과 최대한 달라지려 하고, 일본인은 중국인과 최대한 달라지려 하지 않는가요?
 
같은 한민족임에도 사회주의를 받아들인 북한과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남한의 차이는 또 어떤가요? 차라리 일본인이나 중국인과 살 수 있어도 남한사람 또는 북한사람과 함께 살기 힘들다 여기는 이들이 많지 않나요? 단순히 정치적 이념 차이가 낳은 결과로 설명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비춰보며 청개구리처럼 반대 성향으로 치달으려는 분열생성의 효과도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 합니다.
 
21세기 지구촌에서도 이런 분열생성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달 들어 이뤄진 독일 지방선거에서 극우와 극좌의 동시 약진이 발생했습니다. 중부 농업과 산업지역인 작센안할트주와 북부 해안과 호수지역인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에선 극우파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제1당으로 올라선 반면 중심부인 베를린에선 극좌로 분류되는 좌파당(Die Linke)이 제1당이 됐습니다.

 

농촌과 산업지역에선 극우가 발호하고 대도시에선 극좌가 득세하는 정치적 분열생성 현상은 미국에서도 관찰됩니다. 대서양과 태평양 연안 대도시에 사는 이들은 진보성향의 민주당을 선호하고 내륙의 농촌과 산업벨트 지역에 사는 이들은 보수성향의 공화당을 선호하는 현상은 이제 거의 상수가 됐습니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은 중부지역의 저소득층 백인을 뜻하는 힐빌리와 레드넥이 지지하는 트럼프가 됐는데 뉴욕시장은 도시생활자들이 지지하는 맘디니가 뽑히는 대조적 정치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뉴욕 출신의 도널드 트머프 미국 대통령과 우간타 출신의 인도계 무슬림으로 뉴욕시장이 된 조란 맘디니 [뉴스1]

 

 

한국 진보진영에선 냉전시대 레드컴플렉스로 인해 전통적 좌파가 발붙이지 못하던 미국과 독일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며 반기는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하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그렇게 반길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원이 집중된 대도시에 사는 '도시쥐'와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끼는 농촌과 중소도시에 사는 '시골쥐' 간의 분열생성이 심화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미국에서 버니 샌더스처럼 진보적 민주사회주의자가 주류 정치인이 되고 있다고 반색하는 동안 현실권력을 장악한 것은 그 대척점에 선 트럼프라는 역설적 현상이 벌어졌음을 잊어선 안됩니다. 좌우를 아우르되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공화주의자라면 이럴 때 정치적 균형감각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분열생성으로 인한 양극화의 위험을 경고하고 그것을 중화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베이트슨은 그런 분열생성을 통제하기 위한 노력을 이아트물족의 의례 중 하나인 '나벤(Naven)'으로 명명했습니다. 나벤은 종족 구성원 중 한 명이 큰 성취를 이뤘을 때 축하해주는 의례명입니다. 나벤이 벌어질 때 여성이 남성 복장, 남성은 여성복장을 하는 식으로 성, 연령, 지위에 따른 서로의 역할을 뒤바꾸는 유희가 펼쳐집니다. 그를 통해 서로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희화화함으로써 자기객관화를 유도합니다.

 

이아트물족은 나벤 외에도 여러 방법으로 분열생성의 부작용을 완화내지 중화시키는 집단적 지혜를 발휘합니다. 라이벌 관계에 놓은 두 집단 간 상호의존성을 강화해 공멸을 피하게 하거나 공통으로 맞서야 할 '제3의 적'을 제시하는 식입니다.

 

그럼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그 나벤은 뭐가 되야할까요? 시간이 갈수록 공고화되는 양당제의 폐해를 막기 위해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비례대표를 늘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권력의 집중을 억제하고 분산을 유도해야 합니다.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대통령중심제를 내각제로 전환하고 지방분권을 강화해야 하는 또다른 이유입니다.

 

그런 제도적 장치 뿐 아니라 일상적 문화에서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TV토론을 펼칠 때도 찬반토론 식으로 마주보고 하는 토론이 아니라 원탁에 둘러앉아 다양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 1년에 한 번씩 '나벤데이'를 지정해 서로 지위나 의견이 다른 사람끼리 역할을 바꿔 대면하게 함으로써 분열생성으로 치달으려는 승부욕을 억제시키고 자기객관화를 유도하는 건 어떨까요? 

 

중요한 것은 둘만 남겨놨을 때 서로를 닮기 보다는 서로 달라지려고 하는 바람에 시간이 갈수록 갈등과 불화가 커진다는 분열생성의 섬뜩한 결과는 김민기의 노래 '작은 연못'에도 생생히 담겨 있습니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에 예쁜 붕어 두 마리가 살았는데 서로를 못견뎌 싸우다가 한 마리가 죽은 뒤 연못 전체가 썪어 더러운 물만 고인 채 아 무것도 살지 않게 됐다는. 

 

숫자 2에 얽힌 이런 저주를 막는 방법은 노자의 '도덕경'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 만물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숫자는 2가 아니라 3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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