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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맥거핀

'모자무싸' 황동만 안에 체호프의 바냐가 숨어있다

드라마 ‘모자무싸’의 황진만(박해준 분)과 황동만(구교환 분) 형제의 투 샷. [jtbc]

 

 

"인간은 햄릿형과 돈키호테형으로 나뉜다."

 

19세기 러시아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가 갈파한 발언입니다. 이는 최근 종영한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에서도 유효합니다. 용접공 시인인 황진만(박해준 분)과 20년째 영화감독 지망생인 황동만(구교환 분) 형제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기 때문.

 

진만이 햄릿형의 사색가라면 동만은 돈키호테형의 행동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드라마 후반 형 진만이 영화감독 데뷔 기회를 얻은 동만이 전전긍긍 안절부절하는 것을 보다 못해 밥상머리 교육을 시전하는 대사에서도 확인됩니다.

 

“인간이 영어로 뭐야?"

"휴먼(Human)?"

"뒤에 하나 더 붙잖아. 빙(Being). 휴먼 두잉(Doing) 아니고 휴먼 빙. 그냥 존재하라고, 가만히. 내가 뭘 했네 어쨌네, 정신없이 오락가락,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두잉’ 하지 말고, ‘빙’. 그냥 가만히.”

 “가만히가 얼마나 힘든 건데! 술 마시자 말고 가만히 있어보지, 그럼?” 

 

진만은 가만히 존재하는 휴먼-빙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햄릿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동만은 오락가락하는 휴먼-두잉이라는 점에서 돈키호테형이구요.

 

사실 진만은 가만히 존재하는 것조차 버거운 사람입니다. 어린 딸의 행방을 모르는 상태서 멋진 시구절이 떠올랐다가 메모하기 바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시인의 타이틀을 버리고 용접공으로 살아가죠. 심지어 그조차 견딜 수 없어 동만마저 차마 입으로 꺼낼 수 없는 불안을 빚어내는 원천입니다. 가만히 존재하는 휴먼-빙으로 남기 위해 매일매일 벅찬 내면의 투쟁을 벌이는 사람, 그가 바로 진만입니다. 욕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버거워 독살당한 아비의 복수를 완수한 뒤 기꺼이 죽음을 맞는 햄릿과 닮은꼴입니다.

 

반면 동만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끊임없이 분출하며 무모할 정도로 좌충우돌하는 행동가입니다. 영화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온갖 기상천외한 일들을 벌이기에 오히려 주변 창작들에게 무수한 이야기거리와 영감을 던져주는 숨겨진 뮤즈라는 걸 본인만 모릅니다. 진만이 언급한 휴먼-두잉이야말로 동만과 같은 돈키호테형 인간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찌질이 진만에게 '구원의 여인'으로 등장하는 변은아(고윤정 분)는 돈키호테의 '환상 속의 그대'인 둘씨네아 공주의 현실판이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만 역시 돈키호테의 닮은꼴입니다.

 

그럼 햄릿형인 진만과 돈키호테형인 동만이 서로를 연민하면서 공존공생하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 해답 역시 시인인 진만의 대사에서 발견됩니다. 시인지망생들을 위한 특강에서 "마지막 시집이 나온지 10년이 넘었는데 왜 시를 안쓰고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사느냐? 시쓰는 용접공이 더 있어 보여서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솔직이 말하면 시보다 용접이 좋습니다. 좋다기보다 적성에 맞습니다. 시를 쓸 때는 좌절과 자괴감의 연속이었지만 용접은, 지지고 있으면 그냥 일이 됩니다. 마음이 번다하지 않습니다. 용접봉을 놓고 돌아서면, 또다시 이 생각, 저 생각 어지럽게 올라오지만, 그래도 지지고 있는 동안은 올라오지 않습니다. 난생 처음 쉬는 것 같습니다. 일하는 데 쉬는 거 같습니다. 네. 시보단 용접이 좋습니다."

 

 

가만히 존재하는 휴먼-빙을 추구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휴먼-두잉을 할 수밖에 없음을 설파하는 황진만. [jtbc]

 

 

시보다 용접이 좋다는 발언의 함의가 뭘까요?  진만 그 자신도 가만히 존재하는 휴먼-빙을 하기 위해서 뭔가를 계속 지지고 있는 휴먼-두잉을 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반대로 진만이 휴먼-빙, 동만이 휴먼-두잉으로 등장하는 대조적 장면도 나옵니다. 드라마 초반 집구석에서 영화만 보는 동만에게 진만이 "언제까지 집구석에서 놀건데?"라며 용접일 함꼐 하자고 독촉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때 진만의 답이 "노는 거 아니야. 다 생각하는 거야"이고 동만은 "그게 일이야? 일은 아침에 눈뜨고면 씻고 나가서, 어금니 꽉 깨물고 죽기살기로"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인간다운 휴먼-빙이 되려면 휴먼-두잉도 돼야 합니다. 햄릿의 사유와 돈키호테의 행위가 함께 할 때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휴먼-빙을 추구하는 진만과 휴먼-두잉에 충실한 동만을 대결 구도로 포착한 유명한 작품이 있습니다. '모자무싸'가 방영될 당시 LG아트센터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각각  '바냐 삼촌'과 '반야 아재'로 공연된 안톤 체호프의 희곡입니다. 그 작품 속에서 학문과 예술을 동경했지만 평범한 농사꾼이 돼버린 바냐가 바로 우리들의 돈키호테 황동만입니다. 반대로 바냐의 응원과 후원으로 예술전공 대학교수가 된 그의 매형 세레브랴코프는 속물화한 황진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연출가들은 바냐가 펼치는 장광설에 속아 넘어가기 일쑤. 바냐가 세레브랴코프에게 환멸을 느끼는 이유가 자신의 꿈과 이상이 투영된 세레브랴코프가 허영덩어리로 전락한 것에 대한 좌절과 분노 때문이라고 오해합니다. 아닙니다. 바냐의 누나가 죽은 뒤 매형이 새 장가 간 옐레나에게 홀딱 반해 세레브랴코프를 연적이라 여기게 됐기에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참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모자무싸'의 변은아는 진만과 동만이 동시에 사랑하게 되는 옐레나라고 풀어낼 수 있습니다.

 

체호프 연극 속 휴먼-빙이라 할 세레브랴코프는 연극 내내 이런 말을 떠들어댑니다. "여러분 우리는 일을 해야합니다, 일을 해야죠." 햄릿형 인간이면서 끊임없이 "일을 해야 한다"고 떠들어대는 게 "두잉하지 말고, 빙하라"면서 정작 자신은 "시보다 용접이 좋다", "일하는데 쉬는 것 같다"는 진만과 닯은꼴입니다.

 

그럼 동만처럼 휴먼-두잉이라 할 바냐는 어떤가요? 인생에서 꿈이건 사랑이건 아무 것도 이뤄낸 것이 없다는 열패감과 불안으로 좌충우돌하던 바냐가 영혼의 안식을 되찾기 위해 선택한 것도 결국 "일"입니다. 다른 등장인물들이 모두 떠나고난 뒤 바냐와 단 둘이 남은 바냐의 조카딸 소냐가 울먹이는 바냐를 달래며 하는 마지막 대사야말로 "일하는데 쉬는 것 같다"라는 진만의 대사와 기막히게 공명합니다.

 

"삼촌, 우리 힘을 내서 살아가요. 이 길고 긴 낮과 밤을 쉼 없이. 운명이 우리에게 내리는 시련을 참을성있게 견디며. 지금도, 늙어서도, 한시도 쉬지 말고 남을 위해 일해요....그래요, 이제 조금밖에 남지 않았어요. 삼촌. 머지않아 우리, 쉴 수 있어요. 우린 편히 쉬는 거에요."

 

 

 

러시아 연출가 레프 도진 연출의 '바냐 아저씨'에서 바냐와 소냐 [상트페테르부르크 말리극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