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월의 마지막 월요일 대학동기들과 부여로 역사여행을 떠났습니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인 사비성의 유적과 유물을 둘러보면서 '부여 필견 3종 세트'를 발견했습니다. 부여의 삼장부에 위치한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부여박물관 단독 전시실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백제금동대향로 그리고 백제의 최후를 기리는 부소산성 뒤 백마강변의 낙화암입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인 정림사지 오층석탑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국사교과서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석탑은 부여 시내 한복판에 위치해 있더군요. 목탑에서 석탑으로 전환기의 탑이라 생각보다 컸지만 후대의 석탑보다는 안정감이 떨어져보였습니다. 대신 옛스러우면서 소박한 고졸미(古拙美)에서 훨씬 더 앞섰습니다.
익산 미륵사 석탑이 규모가 더 크고 목조탑 양식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정림사 석탑이 그 후대의 탑이란 학설이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정림사석탑이 더 오래된 양식으로 보였습니다. 백제 30대 국왕인 무왕(581경~640) 때 조성된 미륵사 석탑의 균형미가 더 뛰어납니다. 또 정림사는 사비성 한복판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사비로 도읍지를 옮긴 백제 26대 국왕 성왕(504~554) 때 조성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그 명칭과 연관돼 있습니다. 관광 안내문에는 정림사(定林寺)라는 독특한 사찰명의 유래에 대한 설명이 없더군요. 정(定)은 불교에서 괴로움을 없애고 올바른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8정도(八正道 ) 중에서 '정정(正定)'과 관련한 개념으로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혀 삼매경에 드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정림(定林)은 깊은 명상에 잠긴 숲을 의미합니다.
실제 국내 다른 사찰 중에 定林寺라는 명칭은 존재하지 않지만 중국과 일본엔 여럿 있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림사는 중국 남조의 하나인 양나라 수도 건강(현재의 난징)에 있던 왕실사찰입니다. 불교에 심취했던 양나라 창업군주 양무제(464~549)가 조성한 사찰로 중국 선종의 시조로 꼽히는 달마선사를 초빙해 가르침을 받은 사찰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또 달마가 입적한 곳으로 전해지는 중국 하남성 삼문혀시 영보현에 후대에 세워진 사찰도 역시 정림사입니다.
웅진(공주)과 사비 시대 백제는 중국 남조의 영향을 짙게 받았습니다. 특히 백제 성왕은 웅진시대의 무령왕과 더불어 불교를 통해 백제부흥을 꾀한 호국불교의 왕이었습니다. 그의 왕명에 '거룩할 성(聖)'이 들어간 것을 유교적 성군으로 해석하는 것은 후대의 착종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독실한 불교신자로 불교를 국가종교로 공인한 쇼토쿠태자의 한자 묘호가 성덕(聖徳)인 것처럼 종교적 이유가 더 크다고 봐야합니다.
백제 성왕은 중국 양무제보다 한세대 뒤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중국에서 가장 독실한 불교왕으로 꼽힌 양무제의 영향을 짙게 받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양나라처럼 백제의 수도 한복판에 세워진 정림사라는 왕실 사찰이 이를 증명해주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백제가 남긴 가장 오래된 탑은 미륵사 석탑이 아니라 정림사 석탑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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