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동계올림픽은 이탈리아의 두 도시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밀라노와 코르티나담페초입니다. 밀라노는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롬바르디아주의 주도이자 이탈리아 경제 수도로 불릴만큼 부자 도시로 유명합니다.
반면 코르티나담페초는 그렇게까지 유명한 도시는 아닙니다. 1956년에 이어 동계올림픽을 두번째로 개최하는 도시라곤 하지만 유럽인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세계인들에겐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알프스 산맥이 위치한 이탈리아 북동부 돌로미티 지역의 인구 6000가량의 작은 산골 관광도시니까요.
돌로미티는 이탈리아 알프스(전체 알프스의 27%를 차지)가 위치한 지역입니다. 이탈리아는 총 20개주로 구성돼 있는데 트렌티노알토아디제(Trentino-Alto Adige), 베네토(Veneto), 프리울리베네치아줄리아(Friuli-Venezia Giulia) 3개 주에 걸쳐 있는 꽤 큰 산악지대입니다. 코르티나담페초는 그중 중심부이자 가장 면적이 넓은 베네토 주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베네토주의 주도가 유명한 항구도시 베네치아입니다.
돌로미티라는 이름은 알프스 산맥의 일부를 이루는 석회암 산맥의 이름에서 딴 것입니다. 한국의 금강산과 비슷하게 삐쭉 솟구친 독특한 돌산들이 아름다운 풍광을 이룹니다. 얼핏 들으면 한국어로 '돌로 된 뫼터'쯤으로 들리는 그 지명은 그럼 이탈리어일까요? 아닙니다. 프랑스 지질학자 데오다 그라테 드 돌로미외(Déodat Gratet de Dolomieu, 1750–1801)의 이름을 딴 겁다.

돌로미외는 1791년 이 산맥의 주요 암석이 석회암 중에서도 알루미늄 성분이 풍부한 백운석(돌로마이트)이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그 이듬해인 1792년 스위스 박물학자 니콜라 테오도르 드 소쉬르가 그 이름을 따서 그 광물을 돌로마이트라고 명명합니다. 그러다 19세기 중반부터 그 암석으로 이뤄진 산맥 전체를 영어로 돌로마이티(Dolomite), 독일어로 돌로미텐(Dolomiten)으로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
당시 돌로미티 지역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영토로 남티롤로 불렸습니다. 그러다 1919년 1차 대전 종전과 함께 이탈리아 영토가 되면서 돌로마이트의 이탈리아어 발음인 돌로미티(Dolomiti)로 불리게 된 겁니다.
그럼 돌로미외의 발견이 있기 전까지는 뭐라고 불렸을까요? 독일어로는 '블라이헤 베르게(Bleiche Berge)', 이탈리아어로는 '몬티 팔리디(Monti Pallidi)'로 불렸습니다. 둘 다 '창백한 산'을 뜻합니다. 돌로미티 산맥의 돌산들이 새벽과 석양에 장미빛, 오렌지색, 붉은색, 보란색으로 물드는 '엔로사디라(Enrosadira)' 현상을 펼치는 이유도 창백한 돌산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왜 몬티 팔리디나 블라이헤 베르게라는 독자적 지명을 놔두고 돌로미티라는 영어 표현을 쓰게 된 걸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19세기 내내 유럽 대륙에 지질학 열풍이 불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구의 나이가 얼마이냐를 알아내기 위한 종교적 열정, 1812년 영국에서 시작된 미스터리한 고대생명체(공룡)의 화석 발굴 열풍, 산업혁명기에 접어들면서 그 동력이 된 석탄과 철광 발굴이 뗴돈을 벌게 해준다는 경제적 동인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19세기 일반인들에게 가장 핫한 과학은 지질학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의 필자인 빌 브라이슨의 표현을 빌리면 이렇습니다.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지질학은 19세기 사람들을 흥분하도록 만들었고,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어떤 과학 분야도 그런 적이 없었고, 그런 일이 다시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실제 지질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찰스 라이엘이 1830~33년 3권으로 나눠 발표한 '지질학의 원리'는 초판 1500권만 찍었지만 순수 과학 서적으로는 이례적으로 라이엘이 숨진 1875년까지 11판 1만5000권이나 팔렸습니다. 영국 스타 물리학자 스티브 호킹이 쓴 '시간의 역사'의 19세기판이라 할 만한 베스트셀러였던 셈입니다.
따라서 돌로미티 산맥의 암석이 다른 알프스 지역의 암석과 차별된 암석으로 이뤄져 있다는 지질학적 발견이야말로 19세기 유럽에선 가장 핫 뉴스가 될 수밖에. 그래서 '창백한 산'이라는 문학적 지명을 과감히 버리고 낯설지만 신선한 돌로미티라는 지명을 적극 받아들인 것 아닐까요? 19세기는 민족주의가 분출하던 시기였음에도 그 민족주의적 열정을 지질학적 발견이 가져다 준 희열이 이긴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그 돌로미티 지역의 한복판에 위치한 코르티나담페초(Cortina d'Ampezzo)도 독특한 지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코르티나(cortina)는 좁은 울타리나 마당을 뜻합니다. 반면 암페초(ampezzo)는 현대 이탈리아어의 조상어라 할 라틴어로 '넓고 트인 곳', '넓은 골짜기'를 뜻합니다. 따라서 코르티나담페초는 가파른 산세로 이뤄진 돌로미티 산악지대에선 드물게 넓은 분지가 형성된 곳에 들어선 작은 마을이란 묘한 뜻을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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