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쇼팽)가 왜 중요하냐고요? 우리에게 우리 자신에 관해서 애기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욕망에 관해서요. 그것이 때로는 우리에게 분명하지 않거든요. 제 생각에 그래요. 그것은 때로 우리가 가질 수 없는 욕망이죠. 우리를 넘어선 것이랄까요."
-존 쿳시의 소설 '폴란드인' 중에서
'폴란드인'은 쿳시에게 두번째 부커상을 안겨준 '추락'만큼 잘 읽힌다. '추락'이 대학교수와 어린 여제자 간 '저주받은 사랑'의 후폭풍을 보여준다면 '폴란드인'은 70대 남자 피아니스트와 50대 유부녀의 '금지된 사랑'의 실체에 대한 X레이 사진을 보여준다.
부커상 2회 수상에 노벨문학상까지 휩쓴 남아공 출신 소설가 쿳시는 "모든 글은 자서전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추락'이 오랜 세월 대학교수로 일했던 자신이 젊은 여제자와 사랑에 빠졌을 경우를 상상한 것이라면 '폴란드인'은 70대가 된 자신이 50대 유부녀와 불륜이라 손가락질 받을 사랑에 빠지는 것을 상상한 것 아닐까?
소설의 3분의 2 대목까지 마치 홍상수의 영화를 보는 듯 킥킥거리며 읽게 된다. 쇼팽의 모국인 폴란드 출신의 남자 피아니스트(타이틀 롤)가 스페인 바르셀로나 연주회에 왔다가 음악회 후원자 중 하나인 사업가의 부인 베아트리스를 딱 한 번 만난 뒤 사랑에 빠졌다며 줄기차게 구애를 퍼붓는다. 나이차가 너무 많아 매몰차게 거절당하면서도 리스트를 닮아 건장하고 막스 폰 시도를 닮은 이국적 풍모 남성의 애정공세에 넘어가지 않을 여자가 얼마나 될까?
'폴란드인'은 우리가 익숙히 아는 사랑 얘기가 덧칠된 프레스코화 같다. 스페인 마요르카섬에서 사랑의 도피를 감행했던 젊은 쇼팽과 늙은 조르주 상드의 상황을 전복한다.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짝사랑인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사랑도 변주한다. 예술가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는 구원의 여성상으로 포착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인생 후반기 벼락처럼 찾아든 낭만적 사랑을 노래한 '매디슨카운티의 다리' 떠올리 수도 있다. 하지만 천하의 쿳시가 그런 하이틴로맨스 중년판을 되풀이할 리 만무하다. '폴란드인'은 정확히 그 대척점에 선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폴란드인은 쇼팽을 바흐처럼 연주하는 이성적 남자다. 피아노 연주에만 몰두한 초탈한 삶을 살았고 비쩍 마른 수도사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이 쿳시 자신을 연상시킨다. 그럼에도 말년에는 단테와 쇼팽, 그리고 어쩌면 괴테를 사로잡은 사랑의 환상에 굴복해 소질도 없는 사랑의 시를 써대는 구제불능의 예술가다.
그런 폴란드인 영혼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구원의 여성'으로 낙점된 베아트리스는 반대로 세속적 삶에 통달한 여인이다. 사랑의 불길에 활활 타올라 재가 되는 걸 주저하지 않는 삶보다는 마른 장작이 될지언정 볕 잘 들고 바람 잘 통하는 곳을 떠날 생각없는 꾀바른 여인네다. 그런 그녀에게 브라질로 사랑의 도피를 떠나자는 폴란드인의 밀어가 통할 것인가?
소설을 관통하는 대사는 어쩌면 두 사람이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눌 때 등장하는 맨 앞의 인용문일지도 모른다. 폴란드인에게 쇼팽의 음악은 그 자신의 억눌린 욕망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다. 그 거울을 명경지수로 삼기 위해 그토록 쇼팽의 음악을 객관화하려 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노년에 이르러 그 명경지수에 비춰진 자신에게서 뭔가가 빠져있음을 깨닫는다. 영혼을 태워도 아깝지 않은 사랑이다.
반면 쇼팽 음악을 그 자신에게 결여된 낭만적 사랑의 대리충족물로 삼는 베아트리스에게 중요한 것은 거울이 아니다. 그 거울에 비춰지는 자기 자신이다. 베아트리스에게 쇼팽의 음악이 도락인 것처럼 폴란드인과의 관계 또한 그렇다. 고목나무처럼 시들어가는 자신에게 다시 새순이 돋고 꽃이 핀다는 잠시 잠깐의 환상과 위로가 되어주는. 쇼팽의 음악을 감상적으로 해석하는 베아트리스가 쇼팽을 분석하는 폴란드인보다 그들의 관계를 더 냉철하게 분석하는 이유다.
소설은 말한다. 사랑은 환상이라고.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남녀의 동상이몽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 허망한 불꽃이 타고 남은 자리에는 반드시 재 이상의 뭔가가 남는다. 낭만, 추억, 회환, 예술... 그것을 뭐라 부르던 분명한 것은 사랑의 환상이 없없다면 결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란 점이다. 철학자 김영민 한신대 교수가 '사랑, 그 환상의 물매'에서 갈파했듯이 "사랑은 그 열정의 기울기(물매)에 따른 사소한 차이들의 나르시시즘”이며 "현실의 물매가 환상을 낳고, 그 환상의 물매는 사랑을 번성케 하는 법”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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