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콜로라도주에 기반을 둔 기후책임연구소가 펴낸 탄소 배출 주요 기업 보고서에 따르면 1988년 이래 세계 100대 화석연료 회사가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70%에 책임이 있다. 더 분명히 말한다면 그 가운데 8개 기업-1위부터 순서대로 보면 사우디 아람코, 세브론(미국), 엑손모빌(미국), BP(영국), 가즈프롬(러시아), 로열 더치 셸(영국과 네덜란드), 이란 국영석유공사, 페맥스(멕시코)-이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와 시멘트 생산에서 나오는 전세계 온실가스의 20%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뿐 아니라 이들 8대 기업은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기업이기도 하다. 이들 기업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의 희생으로 부자가 됐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기후변화가 분명해도 같은 방식으로 사업을 지속하기를 원한다.'
-캐서린 헤이호의 '세이빙 어스' 220~221쪽
현재의 지질학적 시대를 '인류세(Anthropocene)'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은 1880년대 산업혁명 이후 인류에 의한 온실가스 발생으로 지구 생태계 전체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출신으로 미국 텍사스테크대 석좌교수인 캐서린 헤이호가 쓴 이 책은 기후변화가 더이상 가설이 아니라 반박하기 힘든 과학적 현실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기후위기에 봉착한 우리(Us)를 구하기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결사적으로 줄이는 것이 지구(Earth)를 구하는 길이라며.
현재의 기후변화에 인류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기후변화를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계속 딴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케이호 교수는 기후변화 수용 태도로 다섯 개 그룹의 사람을 나눌 수 있다고 소개한다. 각성그룹(26~31%), 우려그룹(28~33%), 신중그룹(20%), 비참여그룹(7~12%), 무시그룹(7%)이다. 이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사람들이 무시그룹인데 어떤 말로도 설득이 안된다.
정확히 말하면 설득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기후변화에 반하는 내용만 찾아서 집요하게 질문을 던졌다가 그에 대한 해명과 반박으로 말문이 막히면 또 다른 질문거리를 던지며 도망다니면서 자신이 믿는 바가 진실이라고 외치고 또 외치는 사람들이다.
비단 기후변화뿐 아니라 현실에서 많이 마주치는 사람들이다. 사이비 종교에 홀린 사람, 포퓰리스트 정치인에게 취한 사람, 자신만이 옳고도 바르다고 믿기에 오류를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7%밖에 안된다면 오히려 다행 아닐까?
기후변화에 대응함에 있어서 이들 벽창호들을 붙잡고 씨름해봐야 시간낭비다. 90%가 넘는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행동에 나서야 한다. 기후변화(climate changer)가 아니라 기후행동(climate action)이 화두가 돼야 한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서 전 인류가 나서야 하고 바로 나부터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을 더이상 미룰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독실한 크리스찬인 케이호 교수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지구를 맡겨 다스리도록 했기에 위탁관리자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청지기 정신(stewardship)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기후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에선 이를 '수탁자의 선관의무'라는 어려운 용어로 번역했는데 청지기 정신이라는 쉬운 용어가 더 낫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케이호 교수는 죄책감과 죄의식 때문에 행동에 나설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맨 앞의 인용문 내용이 보여주듯 지구온난화는 개인적 차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다. 한국사회에서 인구에 많이 회자된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는 자본주의의 문제가 온실가스 배출만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례도 드물지 않을까. 정확히 말하면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지구화'인 셈이다.
인류세 시대 제일 돈 많이 벌어온 기업들이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이다. 심지어 이들 기업은 20세기 중반부터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내부 보고서를 쥐고 있었음에도 그 책임을 희석시키거나 외부에 전가하기 위해 온갖 책략을 펼쳐왔다는 것도 드러나고 있다. 이들 기업은 무시그룹이나 비참여그룹 사람들을 배후 조종해 지구온난화가 근거없는 가설이며 그걸 이용해 돈벌이하기 위한 사기극이라는 언론플레이를 펼쳐 왔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한국 속담을 적용하면 '지구온난화의 짐은 인류 전체가 떠안는데 돈은 화석연료 회사들만 번다'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야바위 돈벌이의 비윤리성은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사람들이 떠앉게 되는 손실이 더 크다는데 있다.
대부분의 잘 사는 나라는 북반구 온대지역에 위치한다. 그래서 기후변화를 더위나 추위, 홍수, 가뭄으로만 겪는다. 아열대 지역에 위치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발디딜 곳을 잃거나 기아와 질병 같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겪게 된다.
그렇다면 구조적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왜 개개인이 기후행동에 나서야 할까? 저자는 현재 인류의 삶이 화석연료에 깊숙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단숨에 바꿀 수는 없으며 그런 상황에서 구조적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선 나부터 변화하는 모습을 선제적으로 보여줘야 구조적 변화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책임 공방을 벌이며 삿대질할 시간을 아껴 나부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7%의 무시그룹과 그 배후에 숨은 세력을 제외한 사람들을 제압하고세상을 바꿀 수 있는 첩경이라는 논리다.
이는 마르크스혁명이 왜 실패했는가 인류역사를 되돌아보면 더욱 설득력이 있다. 마크르스는 자본주의체제의 구조적 문제를 날카롭게 꿰뚫어 봤다. 그래서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바꾸느냐가 중요하다"는 명언을 남겼다. 이는 기후변화에서 기후행동으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와 기막히게 공명한다.
문제는 구조만 고치면 인간은 따라서 변할 것이라는 너무도 단순한 해법을 들고나온 데 있었다. 그 대안으로 제시된 공산주의 체제는 인간본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탁상공론에 머물렀다. 그걸 현실화하겠다는 현실 사회주의체제가 자본주의 뺨치게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디스토피아만 초래한 이유다.
세상을 바꾸려면 단순히 구조만 바꾸선 안된다. 자발적 의지로 사람들 스스로 바뀌어 최종적으로 구조를 바꾸는 경로를 취해야 한다. 기후행동이 중요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나 자신부터 바뀌어야 한다. 나 자신의 변화가 주변사람의 변화를 이끌고 그것이 모여 구조를 바꿀 수 있다.
다만 기후행동의 딜레마는 그러기에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그러니 주저할 시간이 없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기후행동에 나서야 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고기보다 야채 중심의 식단을 지키는 것도 기후행동이다. 화석연료 기업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온실가스 배출에서 음식쓰레기가 8%, 가축사육이 14%를 차지한다.
요즘 같은 혹서기에 반바지에 소매 없는 티, 샌들 차림으로 에이컨 사용을 자제하고, 자동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역시 기후행동의 실천이다. 이익의 사유화라는 손쉬운 돈벌이의 유혹에 넘아가지 않고 '손실의 지구화'에 동참하지 않는 것 그게 바로 기후행동의 본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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