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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안부곡

끝에서 돌아보는 인생이 진짜다

[김창완밴드]

 

 

나이가 들어간 우리 가요 중 가장 유명한 곡은 아마도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아닐까요? 청춘의 모퉁이를 돌아설 나이에 누구나 한 번쯤 읇조려보게 되는 노래. 1964년생인 김광석이 서른되던 1994년 발표한 곡.

 

어쩌면 그 '서른 즈음에'에 필적할 라이벌곡이 등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21세기 노년의 전환점 같은 칠십이 됐을 때 음미할만한 노래. 김창완밴드의 'Seventy'. 1954년생인 김창완이 일흔을 살풋 넘긴 2026년에 발표한 곡입니다.

 

김창완이 누군가요? 1981년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으로 시작하는 '청춘'을 노래하던 조숙한 청년 가객. 그렇게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을 읊으며 처연히 세월을 초월한 것 같던 그가 40여 년의 세월이 지난 뒤 '일흔 살이 이렇게 가까운지 몰랐네'라 한탄합니다.  '내 시간이 얼마일까 생각하니/ 장미 열번 필 수 있나 봄눈 열 번 볼 수 있나'라 읊조리며.

 

노래는 단순한 기타 선율에 맞춰 '그대에게 줄 수 있는 내 사랑이 얼마일까/ 내 시간이 얼마일까 생각하니'라는 나즈막한 고백으로 시작됩니다. 칠순의 가수라기엔 여전히 청년의 목소리처럼 들립니다. 그러다 80년대를 풍비했던 올드 록 밴드 '저니'와 '유럽'을 연상시키는 영롱한 키보드 연주가 얹어진 록사운드를 통해 칠순의 김창완이 여전히 로커임을 일깨워줍니다. 간주와 간주 사이를 '늘 가던 길에 칠십년이 있었네'와 '못 가본 길에 칠십년이 있었네'가 교차합니다. 

 

1977년 산울림 결성과 함께 시작된 한국적 록사운드는 그의 나이만큼 무르익을 때로 무르익었음을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 70대에 은발을 휘날리며 노래와 연주를 들려주는 '할배 로커'를 보유한 나라가 됐다는 행복감에 젖습니다.

 

칠순의 나이에 대해선 예부터 공자와 두보가 남긴 표현이 인구에 회자되곤 했죠. 공자는 일흔 살이 됐을 때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됐다( 從心所欲不踰矩)"라 했고, 두보는 "칠십까지 사는 인생은 예로부터 드물다(人生七十古來稀)"라는 싯구를 남겼습니다. 전자에서 '종심'이란 표현이 나왔고 후자에서 '고희'라는 표현이 나왔습니다.

 

오늘날 칠순을 넘기는 사람은 예전 환갑을 넘기는 사람보다 많습니다. 따라서 드물다는 뜻의 고희도 어울리지 않고, 성현의 곁지에 해당하는 종심은 더더욱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가는 언저리를 뜻하는 서른 무렵과 비슷하게 장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으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서른이 청춘의 열병을 핑계로 대는 것이 어색해지는 나이라면 칠순은 인생을 갈무리하고 마무리하는 것을 더이상 외면하기 힘든 나이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해 개봉한 팔순과 칠순 노인 3인방이 주인공인 영화 '사람과 고기'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끝에서 돌아보는 인생이 진짜다. 중간에 뭔 일이 있던 그건 중요하지 않다."

 

청년 시절 어떤 방황을 했느냐, 중장년에 어떤 성취를 이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남지 않은 시간을 정말 좋아하는 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쓸 수 있느냐 아니냐로 갈린다는 뜻일 겁니다. 동백과 봄눈, 모란과 장미를 열 번 남짓밖에 볼 수 없는 시간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쓰실 건지 생각해보셨나요?

 

김창완은 노래합니다. "미운 마음 용서하고/ 아이처럼 기뻐하며 사랑하자"고.

 

 

 

그대에게 줄 수 있는 내 사랑이 얼마일까

내 시간이 얼마일까 생각하니

장미 열 번 필 수 있나 봄눈 열 번 볼 수 있나

헤어보니 부질없이 눈물 나네

낙엽 지는 그 어느 날 들려오는 목소리는

가슴 속에 묻어 뒀던 다정한 말

모든 슬픔 사라지고 미운 마음 용서하고

아이처럼 기뻐하며 사랑하자

 

(간주)

 

일흔 살이 이렇게 가까운지 몰랐네

언덕 내려가 빵집을 지나 동네입구 널려 있는 술집들처럼

늘 다니던 길에 칠십년이 있었네

 

일흔 살이 이렇게 가벼운지 몰랐네

떠가는 구름 해질녘 풍경 가로등 밑 흘러가는 발걸음처럼

내가 걷던 길에 칠십년이 있었네

 

(간주)

 

일흔 살이 이렇게 허무한지 몰랐네

이룬 것 없이 욕심만 커져 여기저기 기웃대는 구경꾼처럼

못 가본 길에 칠십년이 있었네

 

일흔 살이 이렇게 덧없는지 몰랐네

새하얀 낮과 새카만 밤을 무심하게 흔들리는 시계추처럼

꿈속을 걷다 칠십년이 흘렀네

 

(간주)

 

꿈속을 걷다 칠십년이 흘렀네

늘 다니던 길에 칠십년이 있었네

 

 

https://www.youtube.com/watch?v=uj-aZv6mb9Q&list=RDuj-aZv6mb9Q&start_radi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