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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일기

내란당 vs 내로남불당이 지배하는 한국정치

 

 
 
누군가 한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미국을 보게 하라. 차기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하면 국민 1인당 5000달러 씩 하사하겠다는 트럼프를 보며 우민에게 든 생각이다. 나랏돈을 자기 쌈지돈이라 생각하는 참주의 등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공화정이 스스로 무너지는 게 같은 양당제 체제 하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한 한국의 미래가 될 거란 우려 때문이다.
 
미국의 현행 정치제도는 250년 묵은 고목나무다. 고대 로마정의 집정관-원로원-민회를 대통령-상원-하원으로 변용하면서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과 존 로크의 자유주의를 함께 접목했다. 하지만 잘 뜯어보면 그 정치 체제를 관통하는 원리 중 하나가  'Winner takes all'의 승자독식 원리다.
 
행정부의 수장을 넘어 국가 전체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권력의 정점에 위치한 것 자체가 청동기시대 이후 주권을 독점했던 왕을 '임기제 왕'으로 대체한 것이다. 그 대통령을 뽑을 때 개별 주의 선거인단에서 1표라도 더 많이 가져간 후보가 그 주 몫의 선거인단 수 전체를 확보하도록 한 선거제도에서도 승자독식의 원리가 작동한다. 그래서 전체 국민 지지율은 떨어지는데도 확보한 선거인단 수만 더 많으면 대통령에 당선되는 일이 벌어진다. 그렇게 당선만 되면 트럼프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도 속수무책이다. 심지어 퇴임한 대통령은 처벌하지 않는다는 게 일종의 전통으로 굳어져 난공불락의 존재가 되고 만다.
 
250년 전 왕조체제가 세계적 유행일 때 유일한 공화제 국가를 출범시킨 미국의 고뇌가 어린 선택이었다. 하지만 왕조국가보다 민주공화정이 더 일반화된 오늘날에는 시대착오적 제도일 수밖에 없다. 250년이란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서다.  더군다나 그런 낡은 제도를 바꿀 의지와 용기가 민주-공화 양당 체제에선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양당 체제 하 대통령제는 번갈아 최고 권력을 맡게 해준다는 점에서 권력의 화수분과 같다. 상대당 출신 대통령의 패착이 곧 자신들의 집권이란 반사이익으로 이어진다. 감나무 아래서 감 떨어지기만 기다리면 된다. 4년~8년만 기다리면 절대반지를 자신들 손가락에 낄 수 있는데 왜 그런 땅 짚고 헤엄치기를 왜 포기하겠는가? 그렇기에 공화당은 막가파화하고 민주당은 내로남불화하는 것에 염증을 느낀 미국민이 트럼프라는 미친 광대를 뽑아 미국 정치 전체에 똥칠을 했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바뀔 생각이 없다.
 
신생독립국의 종신대통령이 돼 죽을 때까지 왕 노릇하려던 이승만의 야욕으로 미국식 대통령중심제가 이식된 한국은 어떠가? 250년 된 민주공화정이 저 모양 저 꼴인데 짧으면 40년, 길게 봐야 80년이 안되는 민주공화정이라고 용빼는 재주가 있을까? 한국에서는 '내란당'과 '내로남불당'이 서로 경쟁하는 척 하면서 더불어 해먹는 적대적 공생관계가 형성된지 오래다.
 
차이라면 퇴임 대통령도 처벌의 칼날을 피해갈 수 없다는 전통이 생겼다는 거 아닐까? 그로 인해 임기 후반 지지율 하락을 겪는 대통령들이 무리수를 남발케 해 미국과 달리 '불행한 대통령'만 양산하고 있다. 그러면서 최고권좌에 앉았던 사람이 현기증나는 추락을 겪는 것을 지켜보는 게 국가적 사육제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됐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것을 보고 짜릿한 쾌감을 느끼는 것은 집단적 병리현상에 가깝다는 게 우민의 판단이다.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오랜 역사와 거대한 땅덩어리에 짓눌린 미국과 한국은 다르다.  한국은 미국에 비하면 일천한 역사의 민주공화국이다. 게다가 뭐든 빨리빨리 잘 바꾸는 걸로 세계 1등하는 나라다. 경제시스템이니 IT시스템은 그렇게 잘 바꾸는 나라가 왜 정치제도는 못바꾼단 말인가?
 
그 최대 걸림돌은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통령제에 기생해 번갈아 권력을 나눠먹는 양당체제의 정치인들에게 정치개혁의 고삐를 넘겨주고 있기 떄문이다. 그들은 상대의 썪은 고기만 찾아다니 하이에나와 같다. 21세기 우리 국민에게 간절히 필요한 것은 산정 높은 곳에 올라 굶어서 얼어죽는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같은 정치인들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객관식 위주의 입시시험에 주관식을 적극 도입하자는 의견을 냈다. 좋은 발상이다. 입시문제의 객관식은 최소 사지선다라도 된다. 선거판의 객관식은 사실상 내란당 아니면 내로남불당의 양자택일이다. 저 놈이 싫으면 이 놈을 고르고, 다시 이 놈이 싫어지면 저 놈을 고르라는 식이다. 이것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선거판의 양자택일 객관식을 주관식에 가깝게 바꾸는 방법이 뭘까? 정치권력을 1인이 독점하는 대통령제를 권력분산 형의 내각제로 바꾸는 것이다. 왜 무능하거나 파렴치한 사람을 5년, 그것도 모자라 8년까지 대통령 해먹게 놔둬야 한단 말인가? 내각제를 채택하면 지지율이 떨어지면 지도자를 바로 교체할 수 있다. 잘 한다 싶으면 8년이 뭔가? 그 이상도 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내각제다.
 
한 선거구에서 1명만 뽑는 소선거구제도 동시에 여러 명을 뽑을 수 있는 대선거구제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썩은 고기나 남태는 하이에나 정치인들을 바로 바로 퇴출시키고, 눈덮힌 킬리만자로의 표범 같은 정치인들을 계속 공급해야 한다. 
 
미국과 한국의 정치인들은 그렇게 유권자에게 칼자루를 넘겨주기가 싫다. 감나무 아래서 감 떨어지기를 몇 년만 기다리면 되는데 왜 현행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를 바꾸겠는가? 그래서 개헌 얘기만 나오면 내각제 얘긴 쏙 빼고 대통령 중임제 타령만 하고, 선거제도 개혁 얘기만 나오면 중선거제나 대선거제를 할 듯하다가 위성정당을 만들어 물타기만 하는 거 아닐까?
 
정치인들에게 개헌을 맡기는 것은 생선전을 고양이에게 맡기는 것과 똑같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바꿔야 한다. 고양이들이 거는 최면에 걸려서 중임제 타령만 하고 앉았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한국의 오래된 미래가 미국이 되지 않으려면 국민이 주권자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줘야 하다. 바뀌지 않으면 중임제를 채택했지만 참주가 지배하는 현재의 미국 짝이 나고 말 것이다.
 
 
-2026년 9월 13일(구름 잔뜩 끼고 선선함)


#우민은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인 동시에 '또 하나의 백성(又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붙인 별호입니다. 우민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