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들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들은 노래였는데 반갑고도 여전히 새로운 느낌을 줬습니다.
클로드 를르슈 감독의 1981년 영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원제 Les Uns et les Autres)'의 삽입곡이죠. 국내에선 극장 개봉된 적은 없고 1984년 KBS를 통해 4회에 걸쳐 나눠 방영돼 영화가 아니라 미니시리즈로 한동안 오해했었죠. 2차 대전 전후 프랑스, 독일, 미국. 러시아 예술가 가족의 파란만장한 삶을 파노라마처럼 펼친 영화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음악만큼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20세기 프랑스 영화음악의 쌍두마였던 프랑시스 레와 미셸 르그랑이 함께 음악을 맡아 주옥 같은 선율의 음악으로 영화를 수놓았기 때문입니다.
1932년생으로 지금은 고인이 된 두 사람은 영화 삽입곡에서 노래도 직접 불렀습니다. 미셸 르그랑은 록발라드였던 '세상 끝의 향기(Un Parfume de Fin du Mond)'를 힘차게 혼자 소화해냈고, 프랑시스 레는 이 노래, '내 추억의 발라드(Ballade pour Ma Mémoire)'를 릴리안 다비(Lilliane Davis)와 함께 감미롭게 노래했죠.
겨울밤 문득 이 노래가 생각나 불어 가사를 찾아서 번역해봤습니다. 번역해놓고 보니 감미로운 내용이 아니더군요. 상징적 내용이 가득한 시를 방불케했고 또 슬픈 내용이었습니다. 특히 영화에 등장하는 예술가 가족들 사연 중에서 가장 슬픈 프랑스 뮤지션 가족의 이야기와 기막히게 공명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치독일군에 의해 수용소로 끌려가는 유대인 부부가 아기만이라도 목숨을 구하길 바라며 기차길에 몰래 버려둡니다. 수용소에서 홀로 살아남은 채 돌아온 바이올리니스트 엄마 안느(니콜 가르시아 분)가 그 아기 로베르를 되찾기 위해 여생을 기차역 주변을 맴도는 길거리 악사로 살아갑니다. 로베르는 장년이 돼서야 비로서 친모인 안느의 정체를 알게 되는데 정작 안느는 치매에 걸려 아들의 존재도 기억도 못하는 애절한 사연이 펼쳐집니다.
여성 화자와 남성 화자가 나눠 부르는 노래는 기억/추억의 불확실성을 이야기합니다. '어느 거리에서였죠/ 아니면 별빛의 한 조각에서 였을까요?'라고 시작하는 첫구절부터 우리를 당황하게 만듭니다. 거리와 별빛의 한 조각이 어떻게 대구를 이룰 수가 있을까요?
'거리=현실, 별=꿈/환상'의 이분법에 의거한 시적인 표현으로 봐야 합니다. 프랑스어 'un bout d’etoile'은 별의 조각 이란 뜻 말고도 별똥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어느 거리에서 당신을 만났는데 그 순간 별똥별이 떨어졌던 것도 같다는 낭만적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이어 추억은 시간의 야자수 나뭇잎을 스쳐가는 바람 같은 것이어서 결코 붙잡을 수 없고 돌이킬 수도 없다고 노래합니다. 그리곤 가질 수 없었던 것을 나열합니다. 장거리주자의 심장과 석양, 바이올린...
장거리주자의 심장은 실제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죠. 석양은? 존재하지만 실제론 소유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보입니다. 누구나 볼 순 있지만 누구도 자기 것이라 할 수 없는 것. 그럼 바이올린은? 내가 갖고 있지 않거나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회한을 표현할 수단에 대한 은유 아닐까 합니다.
그 다음 가사에서 '내 추억의 발라드'의 구체적 내용이 등장합니다. 기차에서 이별한 사랑, 5년 뒤 그 사랑이 잉태한 아이가 있었음을 알게 됐다는 고백의 삽입입니다.
여기서 이뤄지지 못한 사랑은 장거리주자의 심장과 같죠. 현실에서 내가 갖지 못한 것이죠. 그 사랑의 결실이지만 5년 뒤 그 존재를 알게 된 아이는 석양과 같습니다. 존재하지만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는 아름다움입니다. 그 아이와 추억을 공유하지 못하는 슬픔을 표할 길 없는 것은 슬픔을 연주할 바이올린이 없는 상태와 같습니다.
그 다음 갑자기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의 삐걱대는 장화소리'에 대한 추억의 비약이 이뤄집니다. 어리둥절합니다. 갑자기 왜 산타가 등장하는 걸까요?

어린 시절 산타에 대한 추억은 실재하지 않는 것, 환상에 대한 추억입니다. 그 실재하지 않는 것이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낸다? 아이의 환상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산타 흉내를 내는 존재, 어쩌면 아버지의 개입을 말해줍니다.
얼핏 따뜻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들리지만 노래 전체의 맥락에서 보면 서글픈 추억의 환기입니다. 아버지의 부재를 겪은 아이가 결코 소유할 수 없는 추억의 소환이기 때문입니다.
'산타 흉내를 내는 아버지'는 라캉이 말한 '라멜라(lamella)'를 떠올리게 합니다. 라멜라란 ‘존재하지는 않지만 고집스럽게 존속하는 것'입니다. 상상계의 산물이기에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음에도 마치 현실에 존재하는 것처럼 현실에 달라붙어있는 것을 말하죠. 정신분석학에선 라멜라를 ‘복합환영물’이라고 부릅니다.
복합환영물이란 환상이 작동하는 상상계와 이성이 지배하는 상징계가 만나는 접점에 존재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무의식적 진실이 출몰하는 실재계와 상관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존재와 비존재, 논리와 환상이 결합돼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실재가 이런 게 아닐까 하고 흉내 내는 것. 실재인 것처럼 위장된 환상입니다. 그래서 실재의 그림자라고도 부르죠.
지젝은 라멜라의 대표적 예로 영화 '에일리언'에 등장하는 공포스러운 외계 생명체 에일리언을 거론했죠. '언데드'의 영화적 상상력의 산물인 좀비도 라멜라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실재의 특징 중 하나가 섬뜩함이죠. 그래서 에일리언과 좀비처럼 섬뜩한 존재가 복합환영물의 특징이라고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마 산타클로스 역시 상상계와 상징계의 접점에 존재하는 복합환영물이라는 점에서 '순화된 라멜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흥미로운 점은 그 순화된 라멜라의 흉내를 내는 것이 상징계를 대표하는 아버지라는 데 있습니다.
상상계에 근접한 라멜라로서 산타는 결코 우스꽝스러운 장화소리 같은 것을 내는 존재가 아닙니다. 늘 완전범죄를 저지르는 존재처럼 선물 외에는 흔적도 소리도 남기는 법이 없죠. 하지만 상징계와 결합하는 순간 삐그덕 소리를 내는 실수투성이 존재로 전락합니다. 그와 함께 산타는 환상의 산물이라는 것이 들통 나며 더이상 라멜라로 존재하지 못하게 됩니다.
'산타 흉내를 내는 아버지'는 그래서 산타라는 환상을 존속시키는 라멜라인 동시에 그 정체가 탄로나는 순간 산타라는 환상을 파괴합니다. '내 추억 속의 발라드'에서 노래되는 산타 역시 낭만적이고 따뜻한 존재가 아니라 환상 파괴자의 면모를 지닙니다. 추억의 착종으로 인해 자신의 아이에게 그런 환상파괴자조차 될 수 없게 됐다는 현타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내 추억의 발라드'는 이렇게 '기차-아이-부재-기억'의 구성으로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 속 에피소드와 공명합니다. 영화 속 엄마와 아기의 사랑-상실-부재-망각의 드라마가 헤어진 연인에게서 태어난 아기의 존재를 뒤늦게 발견한 드라마와 등치되면서 신화적 원형에 대한 향수로서 노스탈지아를 발생시킵니다.
영화의 원제인 Les Uns et les Autres는 '이런 사람들 저런 사람들'로 번역될 수 있죠. 특별한 삶을 산 것 같은 예술가의 삶도 웅숭깊게 들여다보면 우리네 삶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거리의 진열장들이 서로 닮아있다'는 노래가사가 이를 직접적으로 환기시켜줍니다. 동시에 사랑-상실-부재-망각의 드라마가 엄마와 아기뿐 아니라 아빠와 아기로 변주될 수 있을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여기서 왜 이 노래가 신비로운 릴리안 다비와 조금은 떨리는 프랑시스 레의 남녀 이중창으로 불리는 지도 깨닫게 됩니다. 다비의 목소리는 어머니이자 환상으로서 별빛의 한 조각이라면 레의 목소리는 아버지이자 차가운 현실로서 거리를 대변합니다. 우리의 기억/추억은 그 둘이 교차하는 것 다시 말해 환상과 상징의 접점으로서 라멜라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과연 실재하는지조차 의문시되는 바람 같은 것이 되고 맙니다.
그렇기에 '내 추억의 발라드'의 메시지는 ‘있었던 것, 더 이상 없을 것, 떠나가는 모든 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로 귀결됩니다. 가버린 것, 사라지는 것은 결코 기억과 추억으로 건져낼 수 없다는 겁니다. 그것은 엎어진 물 또는 흘러내리는 모래를 손가락으로 쥐어잡으려는 것처럼 허망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노래가 진정 슬픈 이유입니다.
Il y avait une rue
어느 거리에서였죠
Ou etait-ce un bout d’etoile,
아니면 그게 별빛의 한 조각이었나?
J’me souviens plus.
기억이 불분명하네요
La memoire
추억들
Ce n’est que du vent
그건 바람에 불과하죠
Qui secoue les feuilles
잎사귀를 흔들고 지나가는
de nos palmiers du temps
우리들 시간의 야자수 잎사귀를
Les vitrines,
진열장들
Ça ressemble,
서로 닮아있었어요,
Oui, il me semble,
네, 제겐 그렇게 보여요
A tout ce que je n’ai pas eu
내가 갖지 못한 모든 것들
Le coeur coureur de fond.
장거리주자의 심장
Coucher le soleil, violon
석양, 바이올린
J’ai pris tout ce qu’il y avait
거기 있던 모든 걸 받아들였어요
Il y avait, y’aura plus
있었던 것, 더 이상 없을 것
Tout ce qui part, faut bien le dire,
떠나가는 모든 건, 분명히 말하지만
Ne revient plus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Ça devrait te faire penser
그게 당신을 생각나게 할 거에요
A ce que t’as laisse dans le train
당신이 기차에 두고 간 것이
Mais tu sais dans 5 ans
하지만 당신은 5년 뒤 알게 되죠
Il y aura un enfant
한 아이가 있을 거란 걸
Et le fil qui le retient au cerf-volant
그리고 그 아이와 연을 이어주는 실도.
J’ai pris ce qu’il y avait
거기 있던 모든 걸 받아들여요
De la neige sur les hottes
눈이 내렸죠, 산타의 선물자루 위로
Du Père Noël a fait un drôle de bruit de bottes
산타는 우스꽝스러운 장화 소리를 냈었죠.
Il y avait, y’aura plus
있었던 것, 더 이상 없을 것
Tout ce qui part, faut bien le dire,
떠나가는 모든 건, 분명히 말하지만
Ne revient plus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YlyHPQmVBwU&list=RDYlyHPQmVBwU&start_radio=1
-2025년 12월 18일(다시 추어지고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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